우린 안맞어, 궁합보자 → 우린 심리검사하자, mbti로

변희원 기자 2020. 5.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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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1030의 사주팔자 MBTI 성격 검사
일러스트=안병현

유재원(26)씨는 1년째 만나는 남자 친구와 다투는 일이 잦아지자 상대에게 MBTI 성격 검사를 받도록 했다. 유씨는 진로 문제 때문에 고등학교와 대학 졸업 전 이 검사를 이미 두 차례 받았다. 남자 친구의 성격 유형은 ISTJ(세상의 소금형·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 유씨는 "그럴 줄 알았다. 나는 두 번의 검사에서 모두 ENFP(스파크형·재기발랄한 활동가)가 나왔다. 어쩐지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고 했다.

20년 전이었다면 유씨는 남자 친구를 끌고 사주 카페에서 궁합을 봤을 가능성이 크고, 10년 전이었다면 타로 카페에 갔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진로·취업·연애 등의 고민거리가 있을 때 점집이나 타로 카페 등을 찾았던 20~30대가 최근에는 성격 검사를 받고 있다. 과거에는 소개팅에서 별자리나 혈액형 등을 물어보며 상대방을 탐색했다면, 최근에는 그 질문이 MBTI 유형으로 대체됐다. 이들은 자신과 타인의 성격 유형을 간단명료하게 파악하길 원한다. 2020년의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 중반~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Z 세대를 아울러 일컫는 말)에게 성격 유형은 혈액형이자 별자리이고, 사주팔자며 타로카드다.

사주팔자랑 혈액형 대신 MBTI?

MBTI 검사 결과를 새겨주는 티셔츠. “직장, 학교, 동아리, 모임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자기 성향을 보여줄 수 있는 셀프 아이덴티티 티셔츠로 더욱 쉽게 나를 알려보자”는 광고 문구를 내걸었다. 일부 인기 유형은 품절됐다. / 카카오메이커스

성격 검사는 성향 검사, 심리 검사라고도 한다.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많이 이용하는 성격 검사는 MBTI이다. 올해 들어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MBTI를 밝혔고, SNS나 유튜브에서는 MBTI 유형별 공부법, 연애 방식,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콘텐츠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정 상황을 내놓고 MBTI마다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 분석하기도 한다. '성적표를 받았을 때 MBTI별 반응' '애인이 바람 피우는 걸 알았을 때 MBTI별 반응'이란 식이다. MBTI 유형에 따라 어울리는 반려견이나 패션을 추천하는 글도 있다.

MBTI는 '마이어스 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개발자인 모녀의 성에서 따왔다. 모녀 개발자가 칼 융의 성격 유형 이론에 근거해 성격을 분류했고, 세계 2차대전이 일어나자 "인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MBTI를 발표했다. MBTI는 네 가지 지표, ▲에너지의 방향 ▲인식 유형 ▲판단 기능 ▲생활양식을 설정하고 지표마다 상반된 두 가지 성향을 알파벳으로 표현한다. ▲외향형(E)과 내향형(I), ▲감각형(S)과 직관형(N), ▲사고형(T)과 감정형(F), ▲판단형(J)과 인식형(P)으로 구분하고, 여기에서 나올 수 있는 조합은 총 16가지다. 예를 들어 ISTJ라면 '내향형+감각형+사고형+판단형'이다. 박경렬(27)씨는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단체로 MBTI 검사를 받았기 때문에 나와 친구들은 이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지난해 구직 활동 할 때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서 이 검사를 다시 했다. 자소서에 MBTI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거기서 나온 긍정적인 부분을 인용하긴 했다. 나를 설명할 때 편리하게 쓸 수 있다"고 했다.

한국MBTI연구소에 따르면 MBTI가 국내에 들어온 지 30년이 됐다. 본지 기사에서 MBTI가 언급된 것은 2000년부터, 활발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2015년쯤이다. 2010년 전후로 서울 강남 엄마 사이에서 자녀의 공부 방법이나 진로를 정하기 위해 MBTI 검사를 하면서 유행했다고 한다. MBTI가 인기를 끌자 에니어그램(9가지로 성격을 분류한 검사), 버크만 진단(생활양식도해), STRONG(진로탐색검사) 등 다른 성격·성향 검사도 함께 알려졌다. 가장 최근 인기를 끈 것은 '꼰대 성향 검사(KKDTI)'다. '망원동 나르시시스트'부터 '종잡을 수 없는 조커' '만취한 장비'까지 8가지 꼰대 유형이 있다. 유쾌한 작명과 한국 상황에 맞춘 검사 덕분에 지난 4월 유행하기 시작해 한 달 만에 200만명 가까이 이 검사를 받았다. 회사에서 동료와 꼰대 성향 검사를 한 정수영(38)씨는 "꼰대 레벨 2에 해당하는 '투머치토커 훈장님'이 나왔는데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팀 내에서 재미로 팀장 이하만 검사를 해봤고, 부장에겐 이런 게 있단 걸 알리지 않았다. 결과 때문에 기분 나빠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 나, 나! 나를 이해해줘요

성격 검사가 10~30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은 '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 세대는 자신에 좋아하는 것에 기꺼이 지갑을 열 정도로 자기에 대한 관심이 높다. 나를 이해하고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크다"고 했다. 정보가 많은 데다 물건을 사거나 진로를 정할 때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를 알아야 한다'는 의식이 더욱 강해지기도 하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알아야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로나 인간관계 등 고민이 생기면 성격 검사를 받거나 심리 검사 카페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세정(32·가명)씨는 "MBTI는 과학이다. MBTI 성격 유형을 보면 내가 왜 친구들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지, 공무원 시험을 왜 그만뒀는지 설명이 된다. 그래서 쓸데없는 고민이나 자책을 줄이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 사회의 인간관계에 변화가 생기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도 반영된다. 안범현 한국MBTI연구소 교육부장은 "수직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이해할 필요도 없고, 아랫사람 역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나 성향을 내세우지 않았다. 요즘 수평적 인간관계가 많아지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시키고자 하는 시도를 많이 한다"고 했다. 자신의 MBTI 유형을 새길 수 있는 티셔츠가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성격 검사가 유행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SNS다. 예전에는 연구소나 센터, 상담 카페에 직접 가서 검사지에 응답하거나 우편으로 검사지를 주고받았다면 지금은 이 검사가 다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결과도 바로 나온다. 특히 SNS를 통해 전파가 되는 성격 검사의 경우, 무료인 데다 검사 시간이 짧기 때문에 10~20대가 선호하는 편이다.

성격 검사 네 군데서 받아보니

지난 19~20일 이틀에 걸쳐 ▲온라인 유료 MBTI 검사 ▲서울 역삼동에서 에니어그램을 기반으로 한 성격 검사 ▲서울 성수동에서 버크만 검사 ▲서울 삼성동에서 컬러를 통한 성격 검사 등 네 번의 심리 검사를 받았다. 네 번 모두 일관성 있는 대답을 하려고 했으며, 검사 결과는 전반적으로 비슷하게 나왔다. 이쯤 되면 성격 검사를 신뢰할 만도 하지만, 검사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여러 의문이 생겨났다.

에니어그램을 기반으로 한 첫 검사 결과를 듣고 '꽤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 결과가 비슷했던 나머지 검사에서도 이는 마찬가지. 성격 검사가 정교하고 과학적으로 설계됐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예를 들어 '많은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피곤해진다'는 문항에 '네' 혹은 '매우 그렇다'라고 답할 경우 '당신은 혼자 있는 것을 원하는 성격'이란 결과가 나온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다' 수준의 당연한 진단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회의가 생겼다.

응답자의 태도 때문에 검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합니까?'라는 문항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불의를 보고도 지나친 적이 대부분이지만, 검사 때는 이 문항에서 주저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고 답변하고 싶은 유혹에 빠졌기 때문이다. 내 실제 모습과 내가 바라는 내 모습 사이에 괴리가 있고,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을 성격 검사에 반영할 수 있다. 성격 검사에 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지, 얼마나 정직하게 답변하는지에 따라 검사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동귀 교수는 "MBTI나 에니어그램은 심리학 연구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검사 도구다. 개발된 지 오래됐고 많은 사람이 검사에 참여했기 때문에 자료도 많이 쌓였다. '엄정한 도구냐'라는 데 대해선 학자 간에도 이견이 있지만, 신뢰도나 타당도를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 교수가 인정한 성격 검사의 효용은 바로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주 싸우는 부부가 성격 검사를 했더니 성향이 다르게 나왔어요. 그 결과를 보고 '남편이나 아내가 지금까지 일부러 나를 괴롭힌 게 아니었구나, 나랑 달라서 그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죠. 그 생각만으로도 분노가 잦아들기도 한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은 집중해서 한다"… 누군들 다를까?
성격검사, 어디까지 믿을수있나

서커스에서 사람 성격을 맞히는 재주로 유명한 바넘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위대한 쇼맨’. / 20세기폭스

"엔프피(ENFP·재기발랄한 활동가)입니다. 직장 동료는 전부 J(철저한 사전계획)이고 P(자유롭고 즉흥적)는 아무도 없으며, 그중에서도 N(미래 이상적)은 거의 없고 S(실제 경험 중시)밖에 없네요. 제가 진짜 원하는 것을 말하면 미움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다수에게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단 느낌이 들어요."

국내에서 회원 수가 가장 많은 성격 검사 카페 'MBTI&HEALTH 심리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이 카페에서는 가족 관계, 연인 관계, 사회생활을 성격 유형으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뤄진다. 이처럼 MBTI를 비롯해 성격검사를 신뢰하는 이들 중 일부는 자신에게 일어난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성격 유형에서 찾으려고 한다. 성격 검사,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성격 검사의 맹점으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이 바넘(Barnum) 효과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성격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심리적 경향을 뜻한다. 미국 출신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은 19세기 서커스의 선구자로, 영화 '위대한 쇼맨'의 주인공이었다. 그가 이끌던 서커스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그 안에서 바넘의 역할은 사람의 성격을 맞히는 것이었다. 1948년 심리학 교수 버트럼 포러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성격 검사를 하고 응답자 모두에게 같은 진단 결과를 줬다. 진단 결과는 "당신은 자기 비판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을 믿기 전에 그들이 했던 말과 행동에 대해 곰곰이 생각합니다"와 같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뻔한 얘기였다. 결과의 정확도를 0~5점으로 매기라고 하자 학생들은 결과가 정확하다면서 평균 4점이 넘는 점수를 줬다. 1950년대 중반에 심리학자 폴 밀이 이 실험 결과에 바넘 효과란 이름을 붙였다.

앞서 언급했듯, 기자가 체험한 네 번의 성격 검사 결과가 비슷하게 나왔다. 여기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문장이 '당신이 좋아하는 일은 집중해서 한다' '내가 선택한(좋아하는) 소수 사람과의 관계가 돈독하다' 등이다. 얼핏 맞는 것 같지만, 특정인만 가진 성향이랄 수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집중해서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는 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하지 않느냐. 성격 검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난다. 심리학회에서 검증한 심리 검사를 받고, 전문가에게 결과 해석을 들어야 한다. 엄정한 기준에 못 미치는 심리 검사는 친구들끼리 재미나 농담 수준으로 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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