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시화기행>시인이 선망하고 화가가 질투한..'佛 예술혼' 장 콕토

기자 2020. 5. 2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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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내 귀는 소라 껍데기’. 39 5×49 5㎝, 종이에 먹과 채색, 2020
김병종 ,‘내 귀는 소라 껍데기’. 39 5×49 5㎝, 종이에 먹과 채색, 2020

(32) 파리에서 망통까지

고교시절 처음 접한 장 콕토의 시집 “나 있는 데로 오라”고 속삭이는 듯 그의 시는 낯선 이미지의 어휘들을 결합시켜 ‘제3의 언어’로 탄생시켜 실험영화의 계보를 잇는 영화감독 연극사에서 뺄 수 없는 극작가까지 인상파·야수파·입체파·초현실주의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화가의 삶도

그리하여 허위허위 그 길 아닌 길을 나서긴 했지만 진정 그날은 언제일까. 어느새 석양인데 그냥 후, 하고 토해낸 숨결 하나로도 오색 무지개처럼 허공에 펼쳐 놓을 그날이. 말(言)과 색(色)을 허공에 던져놓고 그냥 황홀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날이. 정말 그랬다. 내 나이 열일곱 살 무렵에 불쑥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훌쩍 큰 키에 (실제로 큰 키는 아니었던 것 같다)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높은 코와 움푹 들어간 파란 눈. 외계인 같은 그 남자. 그런데 토해내는 말마다 허공에서 빛을 발하며 혹은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저희끼리 부딪혔다.

장 콕토.(사진) 시인이자 극작가, 영화감독이자 화가였던 사람. 바야흐로 고등학생이 돼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던 그 시절. 친구들은 우르르 법대, 상대, 의대 쪽으로 몰려가는데 가슴 저 깊은 데서 아무래도 그 길은 아닌 것 같다고 고개를 저을 무렵 눈에 띈 것이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지다시피 한 장 콕토 시집. 인천 배다리 헌책방에서 사서, 내 책상에 정물처럼 놓여 있던 그 시집에 눈길이 닿는 순간, 그 책은 “이리로 와봐, 나 있는 데로”라며 소곤대는 것 같았다. 그 시인이 학교를 무지하게 싫어해 때려치워 버렸다는 것도 매력이었다. 차 한잔을 마시면서 시 한 편을 썼다고 전해지는 그 남자. 그런데 그 시라는 것이 전혀 낯선 이미지의 어휘들을 순간적으로 결합시켜 제3의 언어로 탄생시켰대서 뭇 시인 지망생에게 선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줬단다.

그런가 하면 거실이며 침대 머리맡에 화구들을 두고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잠들기 전 시 쓰기가 지루해질 때 역시 차 한잔의 시간에 쓱쓱 그림을 그렸다는 사람. 그런데 그 대충 그린 그림이 또한 수준급이어서 화가들의 질투를 받을 정도였단다. 피카소, 사티, 디아길레프와의 ‘회화 4인전’은 그해의 주목할 만한 전시였다고 할 정도. 이렇게 해 그려진 그림이 수천 점. 엄청난 양의 그림을 그리고 저 유명한 ‘색채론’을 쓴 괴테가 했다는 말. “좋은 삶? 쓰기보다는 그리는 삶”을 실천한 사람이라고 할 만했다. 어쨌거나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다 불쑥 눈에 들어온 장 콕토 시집. 이후로는 ‘성문종합영어’도 ‘수학1의 정석’도 짜증 나고 지겨운 책일 뿐이었다. 푸르른 나이의 문학 소년을 단박에 사로잡아버렸던 그 마성의 언어가 내뿜는 아우라에 비하면 당시 필독서였던 참고서들은 내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대였던 셈이다.

장 콕토. 한 예술가의 삶이 얼마나 현란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주인공이었다. 우선 시(詩). 그의 시어들은 지금 봐도 아방가르드니 당시에는 오죽했겠는가. 한결같이 말에 색이 묻어 있었다. 머리 싸매 말을 골라내지 않고 그냥 떠오른 것을 토해낸 듯 생명력으로 퍼덕였다.

우리에게는 ‘윤동주가 사랑했던 시인’ ‘에디트 피아프를 끝까지 보살폈던 시인’ 정도로 알려졌지만 그의 재능은 사실 당대의 화가, 시인, 작가, 연극인, 무용가, 영화배우들의 질시와 사랑을 받을 정도였다. 왜 아니었겠는가. ‘불길한 심장’ ‘에펠탑의 신부’ ‘나의 육체를 무두질해주오’ ‘엉덩이가 파란 원숭이’ ‘브라질산 머리핀’ ‘가엾은 잠’ ‘포르투갈산 굴은 바닷속을 걸어온 당나귀의 귀’ ‘분수 꼭대기의 춤추는 달걀’ ‘기분 좋은 지옥’ ‘치아가 빛나는 흑인 잠수부’ ‘다리를 강간하다’ ‘첼로보다 아름다운 마차’ ‘푸른색은 그 땅에서 온다’ ‘난폭한 치료’ 한결같이 낯선 오브제들을 연결시켜 회화적 이미지로 빚어내는 독특한 수법이다. 그 비상한 시어(詩語)들 또한 하나하나가 그림이 된다. ‘곡예사’ ‘나팔연습’ ‘엉겅퀴꽃’ ‘먼지와 나비’ ‘일사병’ ‘붉은 길’ ‘황금시곗줄’ ‘구슬과 칼’ ‘벨벳’ ‘버팔로’ ‘아편’ ‘증기선’ ‘투우사’….

그림은 또 어떤가. 인상파와 야수파와 입체파. 초현실주의와 다다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한다. 그래서 어느 한 경향만 파먹어 들어가며 평생을 보내는 화가들을 그는 측은하고 따분하게 바라볼 정도였다. 망통의 장 콕토 미술관에 가면 비로소 우리는 시인 장 콕토가 동명이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가 장 콕토의 세계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뿐인가? 영화감독 장 콕토. 그가 만든 영화 ‘시인의 피’는 실험영화의 계보를 이뤘을 만큼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그의 영화 ‘오페라하우스’ 3부작 중 하나인 ‘시인의 피’는 다분히 자전적인데, 시인은 육체의 붉은 피뿐만 아니라 영혼의 하얀 피도 흘리는 존재임을 명시한다.

게다가 희곡, 뭐니 뭐니 해도 그는 극작가였다. ‘지붕 위의 황소’는 역시 아방가르드 연극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리고 사랑과 우정 사이. 장 콕토는 수많은 여성 예술가와 교류하면서 파리 문화 예술사교계의 별이었다. 실제로 그는 여성 화가나 무용가, 시인 등을 주제로 한 시를 발표하기도 하는데 화가 마리 로랑생에 대해서는 “입체파나 야수파 사이의 작은 암사슴이여, 그대는 덫에 걸렸다”라고 썼다. 주지하다시피 에디트 피아프의 천재성을 누구보다 먼저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 역시 그였다. 오죽하면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그 충격으로 쓰러져 다음 날 숨을 거두게 됐을까.

천재였으면서 단 한 번도 천재연하지 않았던 그는 그러나 주변의 천재를 알아보고 그가 누구든 사랑하고 아끼며 예찬했던 사람이었다. 진정한 프랑스의 예술혼이자 권화(權化)였다.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佛 프로방스 망통에 이름 딴 미술관… 유화 등 2000여점 소장

화가 장 콕토와 ‘장 콕토 미술관’

“내 귀는 소라 껍데기, 파도소리를 듣는다”의 시인 장 콕토(1889∼1963, Jean Cocteau)는 전후 전방위 예술가로 이름이 높았다.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 극작가 등으로 활동하면서 화가로서도 유명했다.

프랑스 프로방스의 망통에는 17세기 성채 안에 그의 이름을 단 미술관(사진)이 있다. 유화, 수채화, 드로잉, 파스텔화에 도자기, 모자이크, 타피스리까지 화가로서의 그의 전모를 볼 수 있는 미술관으로 그의 작품 2000여 점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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