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하자전쟁] ③한 때는 동지, 지금은 적.. 하자 점검 대행업체 등장에 난감한 건설사

연지연 기자 2020. 5. 20.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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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사장님은 GS건설에서 일했고, 여러 도급업체를 운영한 경험도 있어요."
"현장 경험만 20년이 넘는 사람들이 의기투합했습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무엇보다 꼼꼼합니다."

지난 3월 한 신축 아파트의 입주자 세미나 현장. 하자 점검 대행업체(사전점검 대행업체)들이 영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풍부한 현장 경험과 꼼꼼한 하자 체크가 이들이 내세운 무기였다. 열화상 카메라로 단열이 잘 됐는지를 측정하고, 라돈 측정기로 라돈 수치를 파악하는 등 전문 장비를 활용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자도 잡아준다고 했다.

이들은 하자보수 사항을 사진을 곁들인 보고서로 정리해준다. 한 집당 하자보수 항목이 50~70개는 나오기 때문에 보고서 두께도 꽤 되는 편이다. A 하자 점검 대행업체 관계자는 "항목별로 사진을 찍어놔야 나중에 하자보수 처리가 제대로 됐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모델하우스와 다르게 시공됐는 지도 매의 눈으로 찾아준다. 실제 시공 품번이 다른 지는 입주자들이 잘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이들은 신축 아파트의 사전점검날 입주자와 함께 해주고, 평당 1만원 가량을 받는다. 전용 면적 59㎡(26평)짜리 집을 계약하면 약 26만원, 전용면적 84㎡(35평)짜리 집을 계약하면 35만원 선이다. 이날 하자 점검 대행 서비스를 계약한 입주자는 "요즘엔 이런 서비스도 있구나 싶다"면서 "부담스러운 가격도 아닌 데다 세입자가 하자보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경우도 걱정돼 업체를 썼다"고 했다.

◇ 하자보수 전문가 대동하는 입주자들

2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하자 여부 등을 점검하는 사전점검 행사에 상당수 입주 예정자가 하자 점검 대행업체를 대동하고 있다. 대행업체 직원들의 구성을 보면 면면이 화려한 경우도 많다. 건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건설회사 직원, 건설사 현장소장에 때론 변호사,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는 이들까지 있다. A 하자 점검 대행업체 관계자는 "건설사에 오래 근무하다 퇴직하고 인생 이모작으로 나와 창업한 경우도 꽤 많다"고 했다.

과거엔 입주 예정자들이 집을 둘러보면서 눈에 띄는 하자 몇 개만 잡아내곤 했지만, 요즘엔 점검 대행업체를 끼다보니 하자보수 접수 건이 크게 늘었다. 점검 대행업체는 하자를 최대한 많이 잡아 입주자에게 전달한다. 하자를 꼼꼼히 잡아준다더라는 입소문이 최고의 마케팅 수단이기 때문이다.

B 하자 점검 대행업체 관계자는 "예전엔 업체가 많지 않았는데, 이 사업이 돈이 된다는 소문에 요즘 업체 수가 많이 늘었다"면서 "입주자 카페에 후기가 잘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더 꼼꼼하게 하자를 잡아줘야 한다"고 했다.

점검 대행업체는 라돈측정기, 열화상기 등을 동원해 입주예정자들이 쉽게 알 수 없는 내용을 짚어주는 데다 입주예정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부분도 하자보수 대상이라고 짚어준다. 건설사의 하자보수 대응방식이 잘못됐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서울 서초구의 한 신축 아파트 입주자 최모(45)씨는 사전점검 대행업체 덕분에 아파트의 안방 창틀 아래 부분의 마감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는 점을 알았다. 이 대행업체는 사전 점검 서비스를 통해 "창틀 아래 빈 공간을 제대로 메우지 않고 보이는 곳만 백시멘트로 막아두면 나중에 곰팡이가 생기기 쉽다"면서 "하자보수를 요청해야 한다"고 했다.

최씨는 "전문가들이 첨단장비를 활용해 점검하는 것이 건설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내가 점검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면서 "아파트 가격이 한 두푼도 아닌데 꼼꼼하게 점검해 완벽한 상태로 인도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한 땐 업계 동지, 이젠 반갑지 않은 건설사들

건설사들은 당연히 사전점검 행사에 등장한 하자 점검 대행업체가 반갑지 않다. 과거엔 그냥 넘어갔던 하자도 입주자들이 수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하자가 발생할 수 있고 고치더라도 미진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특히 하자 점검 대행업체가 등장한 이후로 입주자들이 너무 깐깐하게 구는 경우도 많다는 게 건설사들의 생각이다. 마루의 작은 패임이나 벽지가 살짝 들뜬 것, 작은 기스 등은 그냥 넘어갈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 아파트 현장 직원은 "하자보수 신청내역서를 보면 한 세대당 평균 100건은 훌쩍 넘는다. 1000세대가 입주하는 단지라면 하자보수만 10만건이 접수되는 셈"이라면서 "예전엔 그냥 넘어가던 부분도 하자로 접수되니 버거운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불필요한 갈등만 더 커진다는 주장도 있었다. 입주자들의 편의를 고려해 가장 덜 불편한 하자보수법을 제시하는데도 하자 점검 대행업체 이야기만 듣고 무조건 다 뜯어고치라고 하거나, 새것으로 갈아끼우라고 하는 입주자도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하자 점검 대행업체가 중간에 껴서 불필요한 소송전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면서 "애초부터 잘 지으라는 지적엔 할 말이 없지만, 이들이 소송 브로커로 역할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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