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 만난 사람] 소설가 이문열 "반세기 허덕인 질문 '神'..장황·공허는 들어내고 싶었다"

김유태 2020. 5. 1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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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이후 지금까지, 소설가 이문열(72)의 이름이 발음되면 세상은 대번에 둘로 쫙 쪼개졌다.

신의 아들 예수와 같은 날 태어난 진정한 사람의 아들 아하스 페르츠를 상상한 뒤 성경을 비틀어 '믿기 위한 신(神)'으로서의 종교를 의심한 이 소설은 신과 인간을 고뇌하며 존재의 본질을 회의한, 초판 이후 300만권 이상 팔린 불세출의 대작이었다.

다시 소설 '사람의 아들'로 잠시 돌아가 아하스 페르츠를 만난다면 어떤 질문을 나누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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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사람의 아들' 5번째 개정판 출간한 소설가 이문열
입대전 습작이 300만명 만나
부채의식 커 혈육 같은 작품
고약한 악인으로 기억될망정
비루·비굴하게 살다가긴 싫어
이문열 문학관? 남우세스러워
'글'이 있어 삶이 최악은 면해
점점 명사·고유명사에 약해져
입력 괜찮은데 출력 어렵달까
첫 출간 후 40여 년간 300만부 이상이 판매된 스테디셀러 `사람의 아들`의 5번째 개정판을 출간한 이문열 소설가를 최근 경기 이천 소재 그의 집필실에서 만났다. 그는 "일흔이 넘으니 이제 매달 300매 쓰기도 힘이 든다"고 털어놨다. [이승환 기자]
세기말 이후 지금까지, 소설가 이문열(72)의 이름이 발음되면 세상은 대번에 둘로 쫙 쪼개졌다. 한쪽은 탐서(耽書)의 매혹에 무릎 꿇고는 저 이름에 초월의 권능을 부여했고, 다른 한쪽은 눈을 부라리며 저 이름에 속죄(贖罪)의 당위를 요구했다.

그러나 양쪽 모두의 극렬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1979년작 장편 '사람의 아들'만큼은 양자 간 동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신의 아들 예수와 같은 날 태어난 진정한 사람의 아들 아하스 페르츠를 상상한 뒤 성경을 비틀어 '믿기 위한 신(神)'으로서의 종교를 의심한 이 소설은 신과 인간을 고뇌하며 존재의 본질을 회의한, 초판 이후 300만권 이상 팔린 불세출의 대작이었다.

"이번 생의 마지막 개정판"이라며 5번째 개정판을 새로 출간한 이문열 작가와 경기 이천 소재 그의 집필실 부악문원 타원형 탁자에서 마주 앉았다. 소설 바깥 얘기는 하지 않기로 애초에 서로 약조하고, 세 시간짜리 경어의 대화에서 분량 관계상 알맹이만 골라 문어체로 옮긴다.

―소설 '사람의 아들' 구판(舊版)과 신판을 한 탁자에서 보니 40년을 가로지르는 느낌이다.

▷중편을 장편으로 늘려 '꼴'을 갖춘 게 1987년인데, 개정판을 또 냈다. 마지막이다. 장황하고 공허한 문장을 손봤고 액자소설임을 고려해 서체를 달리했으며 미주(尾註)를 각주로 배치해 이해도를 높였다. 오래 붙잡아서 그런지 혈육 같은 책이다.

―지금이야 대표작이지만 습작 시절 쓴 작품으로 더 유명했다.

▷대학 자퇴하고 고시 포기하고 소설 습작하다 군대 가려니까 막 허망한 거다. 문학 한다고 헤맸는데 이룬 게 없었으니…. 중편 공모를 한다길래 써둔 원고를 들추니 '그해 겨울'(소설 '젊은 날의 초상' 제3부)과 '들소' 같은 게 나오긴 했는데 안되겠다 싶어 결심한 입대 기념작이 이거였다. 응모 당시 제목은 '인자(人子)'였다.

―문학사상사 중편 공모였고, 예심 명단에 없어 낙심했다 들었다.

▷돼먹지 않은 자만심으로 가득한 시절이라 기대감이 컸다. 5개월 만에 휴가 나와 문예지를 찾아보니 예심 명단에 이름조차 없었다. 중국 두보의 시에 '말을 하고도 사람을 놀라게 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쉬지 못한다(語不驚人 死不休)'란 표현을 곱씹었다(웃음).

―그러나 이 소설은 등단 1년 차 이문열에게 '오늘의 작가상'까지 안기며 스타로 만들었다.

▷그래서 부채의식이 가장 큰 소설이다. 시간적 총량으로도 '사람의 아들'이 가장 오래 걸렸다.

첫 출간 후 40여 년간 300만부 이상 판매된 스테디셀러 `사람의 아들`의 5번째 개정판을 출간한 이문열 소설가를 최근 경기 이천 소재 그의 집필실에서 만났다. 그는 이번 개정이 "아마도 마지막 개정판일 것"이라며 웃었다. [이승환 기자]
―입대 직전 짧은 기간에 방대한 종교 소설이 가능했나.

▷주일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마태복음 3장을 몽땅 외워 암송대회 1등도 해봤다. 성경도 대여섯 번 통독했고 깊게 읽어도 구약은 한 달, 신약은 보름이면 읽어냈다. '밑천'이 있었다.

―대학 중퇴의 20대 청년이 써둔 습작품이 세기가 지나도 신학대 필독서로 읽힌다. 왜 그때 신이었을까.

▷성년이 될 즈음,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 첫 장에서 '영원한 방랑자'의 각주에 전설 같은 인물 '아하스 페르츠'란 이름이 짧은 행적과 함께 독일어 철자로 표기돼 있었다. 아하스 페르츠와의 만남을 다룬 나만의 서사시를 19세쯤에 써뒀었다. 신앙은 내게 오랜 질문이었다.

―종교란 허상일까.

▷엘리아데는 신이 원망과 공포의 구체화임을 간파했다. '사람의 아들'은 저 엘리아데에의 감동으로부터 나왔다. 바다의 무서움이 포세이돈을 낳았고 태양의 부재(不在)가 무서워 태양신이 만들어졌다. 원망과 공포가 개념을 입으면 숭배의 대상이 되고 이게 다신교가 된다. 기능의 조합이 이뤄지면 다음 단계는 신의 육화(肉化)와 인격화다.

―허위를 고발하려 했던 건지.

▷허위까진 아니어도 끈질긴 물음이었다. 하나의 종교에는 수백 개의 신이 있고 종교는 상호 간 그림자를 가진다. 불교도 기독교도 신이 사람으로부터 잉태되어 고통을 맛본 뒤의 이야기 아닌가. 인간은 신성(神性)을 필요로 한다. 신성이 육신을 벗으면 그다음 단계는 이데올로기다. 그게 우리의 세계다.

―소설 내부로 좀 더 깊게 들어가보자. 실천신학도 민요섭은 왜 신을 그리려 소설이란 형식을 택한 걸까.

▷정확히는 아하스 페르츠 전기(傳記)에 가깝지만 그가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슬퍼하기도 하니 소설이기도 할 것이다. 그 질문은 질문 자체에 답이 있다.

―신의 대척점을 논한다는 것은 오히려 신을 강력하게 느껴서는 아닌가.

▷곤혹스러운 질문인데 내 대답은 이거다. '난 유신론자다. 그러나 필요해서 믿게 되었다. 신이 없는 세상과 신이 있는 세상 가운데 신을 희망하므로 유신론자다.' 신은 있는 게 좋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신을 찾을 수 있을지 확신은 없다.

`사람의 아들` 초판 인지에 사용했던 이문열 작가 도장. 수십만 부를 저 도장 하나로 찍어 지금은 테두리가 다 닳았다. [이승환 기자]
―'사람의 아들' 초판 인지에 쓰려고 도장을 팠는데 책이 너무 팔려 도장 테두리가 닳았다고 들었다.

▷여기, 이 도장이다. 이 나라에서 도장을 제일 잘 찍는 사람이 누군지 아나. 바로 내 아내다(웃음). 같이 찍으면 5000부에 10시간 걸리는데, 열흘 걸려 5만부를 찍은 적도 있다. 즐거운 노동이었다.

―5년 전 인터뷰에서 1980년대를 정의하는 소설을 집필하겠다고 했고, 현재 소설 제1부만이 '둔주곡 80년대'란 제목으로 잡지 신동아에 발표됐다. 현재 연재 중단 상태다.

▷맥이 빠져 못 쓰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화음처럼 그리려고 했다. '엉킴'은 언젠가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통합도 조화도 쉽지 않아 보인다. 승패만 남았다. 사회라는 것도 언제나 자유로운 것이 아니고 어떤 예측이 현실로 결정되기 전에 쓰는 건 반동의 증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니 더 어려워진다.

`사람의 아들` 초판 인지에 사용했던 이문열 작가 도장. 예서체로 작가의 본명 `이열(李烈)`이 적혀 있다. 인주가 굳어 열리지 않아 온수에 담가 겨우 열었다. [이승환 기자]
―집필 중단인지.

▷포기할 수 없어도 고민은 된다. 그리고 체력도 문제다. 과거엔 한 달에 300매는 거뜬했다. 그런데 60매 초반, 70매 초반…. 일흔 넘으니 이문열도 진짜로 나이가 든 거다.

―필력에 가당치 않은 겸허다.

▷지식이라는 게 1000만권의 책을 이해하더라도 하나의 개념을 담은 하나의 단어를 모아낼 수 없다면 그건 찾을 길이 도저히 없어져버린 개념이다. 뜻은 명확한데 표현할 단어 하나가 나오지 않아 더뎌진다. 입력엔 별문제가 없는데 출력이 어렵달까. 명사에 약해지고 고유명사에는 더….

―'은퇴'와 이문열은 멀어 보인다.

▷써야 한다. 쓸 것이고….

―작가의 삶에 후회는 없는지.

▷대학 시절, 사범대 문학회에서 내 글을 읽고 감동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감동했더니 친구가 그때 그러더라. '인마, 그게 운명의 첫 키스란 거다. 너 그러다 작가(作家) 된다.' 말이 씨가 됐다. 돌아보면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설가가 '되어져버린' 기분이 든다. 허우적거리던 삶에서 힘 안 들이고 안착해 쉴 수 있는 섬처럼 보였다. 문학이란 섬으로 나는 가고 있었던 것이다. 힘든 일도 있었지만 글이 있어서 삶이 최악은 면하지 않았는가 싶다. 이번 생은 이렇게 살기로 했다(웃음).

―경북 영양군에 '이문열 문학관'을 짓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살아 있는데 남우세스럽게…. 요청이 와서 '해봐라' 이 정도였는데…. 시비 거는 사람도 있더라. 뜨악한 심정으로 보고 있다. 작가의 문학관은 건물이 아니라 작품 아니겠나. 말을 아끼련다.

―두 질문이 남았다. 다시 소설 '사람의 아들'로 잠시 돌아가 아하스 페르츠를 만난다면 어떤 질문을 나누겠나.

▷'방랑하는 유대인, 죽지 못한 자여. 당신은 정말로 존재했는가. 그리고 정말 당신의 그런 세상이 있더냐?'

―마지막 질문이다. 두려운 게 뭔가.

▷글쎄…. 죽음은 두렵지만 아직 시간이 더 있는 것 같으니 죽음의 허무만큼은 대답을 유보하겠다.

다만 죽음 앞에서 두려움보다는 억울함이 없지 않다. 그건 어떤 치욕의 감정이다. 연루되고 싶지 않았던 일에 확정적으로 개입돼 버린 것과 같은, 말끔히 털지 못한 그 무엇이 남게 될 것만 같아서다. 그러나 성질 나쁜 포악한 악인으로 죽을지언정 비루하게, 비굴하게 살다 죽었다는 말만큼은 정말 듣기 싫다. 그게 나의 마지막 두려움이라고 해야 할까.

▶▶ 이문열 소설가는…

△1948년 종로 출생, 본명 이열(李烈) △1965년 안동고 중퇴 △1970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중퇴 △1977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입선('나자레를 아십니까')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새하곡') △1979년 오늘의 작가상('사람의 아들') △1982년 동인문학상('금시조') △1984년 중앙문화대상('영웅시대') △1987년 이상문학상('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992년 현대문학상('시인과 도둑') △1992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황제를 위하여') △1992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수훈 △1998년 21세기문학상('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 △1999년 호암예술상('변경') △2009년 대한민국예술원상 △2012년 동리문학상('리투아니아 여인') △2015년 은관문화훈장

[이천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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