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9] 제주 빙떡
빙떡은 메밀가루로 만든 제주 음식이다. 빙떡 외에도 제주에서는 메밀저배기, 해녀의 허기를 달래주던 몸국, 고사리 육개장, 꿩메밀칼국수, 돌래떡 등이 메밀가루를 사용한다. 저배기는 수제비의 제주 말이다.
메밀은 거칠고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로 제주에서는 일찍부터 식량 작물로 재배했다. 제주 신화의 곡물 여신 '자청비'가 오곡 씨앗을 다 가져왔는데 깜박 잊고 메밀을 가져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시 하늘로 올라가서 가져온 탓에 파종 시기가 늦었지만 수확은 다른 곡물과 같이 할 수 있도록 했다. 생육 기간이 짧은 탓이며, 이모작도 할 수 있다.
요즘 메밀로 만든 옛날 제주 음식을 찾기 어렵지만 빙떡만은 오일장 어디서나 한두 집은 볼 수 있다. 대정 오일장 구석에서 빙떡을 만드는 할망을 만났다. 먼저 무쇠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무른 메밀 반죽을 얇게 펼쳐 전병을 부친다〈사진〉. 그 위에 준비해온 무나물을 소로 넣고 돌돌 마니 끝이다. 간단하다. 빙빙 돌려서 만든다고 해서, 무나물이 빨리 상하기에 겨울에 먹었다고 '빙떡'이라 했다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멍석처럼 말아서 만든다고 해서 '멍석떡'이라고도 했다. 전병에 넣는 소는 무를 채 썰어 삶고, 다진 마늘, 다진 파, 깨소금, 참기름, 소금 등을 넣어 만든다. 제주 무의 달짝지근하면서 담백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전병을 얇고 심심하게 만들어야 한다.
심심한 맛 때문에 간장에 찍어 먹거나 옥돔 구이와 함께 먹기도 했다. 옛날에는 팥이나 콩나물을 넣기도 했다. 보통 보리밥은 반찬으로 자리젓이라도 놓고 먹어야 했지만 빙떡은 그 자체로 끼니가 해결되었다. 빙떡 할망에게 2000원을 주고 세 개를 사서 점심을 대신했다. 부족함이 없었다. 맛있게 먹는 내가 애잔해 보였는지 할망이 “제주 무는 달아가지고, 설탕 넣은 것 같아요” 하며 하나 더 먹으라고 건네주었다. 빙떡은 본향당(마을 제사)부터 집안 제사까지, 결혼식에서 생일까지 제주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빠지지 않는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 단순한 방식으로 만들어지지만 꼭 제주를, 아니 제주 사람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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