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의료진에 엄지척' #덕분에챌린지, 手語에서 나왔답니다

조인원 기자 2020. 5. 1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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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가 100일 넘게 지속되며 국민들에게 익숙해진 것 중 하나는 매일 질병관리본부의 발표자 옆에 나란히 서서 열심히 손짓하고 있는 사람, 바로 수어통역사다. 과거엔 TV화면 구석 작은 원 안에 등장했지만 이젠 현장 발표자 옆에 서서 수화통역을 한다. 외국에 비해 한참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지난해 12월 2일 정부 청사에서 하는 공식 브리핑때부터 수어통역을 시작했다. 재난관련 공식기자회견엔 이번 코로나 사태가 처음이다. 매일 보니 이젠 낯설지 않게 된 것이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왼손을 바닥에 펴고 오른손 엄지로 치켜들며 의료진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는 ‘#덕분에챌린지’도 ‘존경합니다’를 뜻하는 수어에서 나왔다.

국내 첫 정부 공식 현장 수어통역을 했던 2019년 12월 2일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사가 김진곤 대변인의 설명을 동시통역하고 있다./신현종 기자
한손을 펴고 다른 한손의 엄지를 들어올리면 "존경합니다"라는 수어, 최근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의료진을 향한 #덕분에챌린지에 사용되었다./ 조인원기자

-수화가 아니라 수어

과거에 ‘수화(手話)’라고 불렀지만 이젠 ‘수어(手語)’가 공식명칭이다.수어는 공식명칭인 ‘수화언어’의 준말이다. 2015년 12월 31일 국회에서 통과되고 2016년부터 시행된 ‘한국수화언어법’은 농인들의 수어가 음성언어인 한국어와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법으로 청각장애가 있는 농인들은 동등한 정보제공의 권리를 사회에 요구하고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의 공식 브리핑에서 수어통역도,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미루던 정부 부처를 향해 이 법을 근거로 시민단체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했기에 가능해진 것이다.

또 청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을 합쳐 ‘농아(聾啞)’라고도 했다. 과거엔 농인(聾人)을 ‘귀머거리’, 아인(啞人)을 ‘벙어리’라는 말로 불렀지만 언제부턴가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로 인식되면서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농인이라는 용어는 일반화되고 있는 반면, 자주 사용하지 않는 ‘아인’ 이란 단어는 언어장애인으로 쓰고 있다. 농아와 반대말로 듣거나 말하는 데 문제가 없을 땐 ‘청인’이라는 말을 쓴다.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목소리를 직접 못 듣기 때문에 말하는 훈련이 되지 않아 말을 해도 정확한 발음을 못하는 것이다. 많지 않지만 훈련이 되면 잘하는 사람들도 있다.

2019년 정부에 등록된 청각장애인은 27만 7천여 명. 그중 89%가 후천적 청각장애인이다. 열명 중 아홉 명은 청각장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4억 6천 6백만명의 청각장애인이 있다고 추정했다.

'서울'(왼쪽)과 '밭'을 뜻하는 수어. 서울은 한자의 서울 京(경)자에서 유래했고, 밭은 田(전)의 모습을 닮았다. 국어 단어처럼 수어도 한자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인원기자

-수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외국인들과 말이 제대로 안 통하면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듯이 처음 수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홈사인(home sign)’은 가족 중에 청각장애가 있는 식구와 소통하기 위해서 집안에서 해왔던 제스처가 민간 수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집안에서만 쓰는 몸짓을 다른 사람들은 알 리 없었다. 문화마다 다르고 나라마다 수어가 기본적으로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 때인 1913년 서울 종로에 구빈기관인 제생원이 설립되고,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5년제 직업교육을 하면서 일본식 수화를 기반으로 시작된게 현재 우리나라 수어의 기초가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구어가 변하듯이 수어도 크게 변했고 연구자들은 한국 수어에서 일본식 수어가 50% 정도만 남았다고 보고 있다. 음성언어가 변하듯 수어도 변한다. 어르신들이 10대나 20대 언어를 이해 못하듯이 어르신 농인들은 ‘ㅎㅎㅎ’나 ‘ㅋㅋㅋ’ 처럼 젊은 농인들의 수어를 못 알아들을 때도 있다.

중지를 펴서 한손을 올리면 형이 되고 내리면 동생이다. 수어로 또다른 중지를 편 모습의 의미는 산(山)을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어권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면 상대를 모욕하는 욕설이 된다. 수어도 문화나 나라별로 다른 뜻을 갖고 있다./ 조인원기자

-영어 수화는 국어 수화와 같을까, 다를까?

수어는 문화권마다 다르다. 숟가락으로 먹는 우리와 나이프로 먹는 손 모양이 다르듯이. 우리는 가운데 손가락(중지)을 펴고 둘째(약지)와 넷째 손가락을 반만 접으면 남자 형제를 비교할 때 쓰거나, 메 산(山)이 된다. 한자의 산을 닮았다. 그러나 영어권 국가에서 중지를 펴고 다른 손가락을 접는 것은 ‘fuck you’처럼 상대를 모욕하는 욕설의 의미다. 영어권 수어로 산은 파도가 물결치듯 손으로 산의 모양을 그리는 것이다. 집도 우리는 삼각형 지붕을 손으로 보이지만 영어권에서는 사각집 모양을 그린다. 동서양 문화의 뚜렷한 차이가 수어에도 반영된다.

수어 "안녕하세요"

-코로나가 가져온 역설

수어통역사로 20년 넘게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김철환(54ㆍ사진ㆍ’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활동가)씨는 “코로나 때문에 수어가 잘 알려진 것은 고맙지만, 코로나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이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하는 사례들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병원들이 코로나 감염 우려 때문에 청각장애인과 동반한 수어통역의 자제를 요청하고, 수어통역 없이 농인들과 소통이 안 되는 병원들은 아예 진료를 거부하는 제보가 계속 들어오는 실정이다. 김 씨는 “글씨로 쓰거나 스마트폰 영상으로 수어통역을 대신해서 진료를 받을 수 있음에도, 소통 불편을 이유로 진료 받을 권리를 거부당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지난 4월 이란에서는 코로나에 감염된 농인 2명이 수어통역을 못하고 병원을 찾다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사망한 일도 있었다.

수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뜻

-수어를 모를 땐 어떻게 소통하나?

얼마나 수어 단어를 알아야 농인들과 소통할까? 제대로 수어를 하려면 6,7천개 단어를 알고 이것에서 파생된 단어들을 알아야 하지만 최소 1백~2백 개 정도만 알아도 소통이 가능하다. 종이에 글씨를 써서 소통하면 어떨까? 짧은 단문 정도는 가능하지만 쓰는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수어를 몰라도 농인들과 어느 정도 소통할 수 있다. 수어는 음성언어와 다른 체계로 이뤄졌기 때문에 볼펜이라는 수어를 모르면 엄지손가락으로 볼펜 누르는 시늉을 하면 통한다. 영어로 말할 때 단어가 생각 안 나면 유사한 몸짓을 하면 상대가 이해하는 것과 같다.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천천히 말을 하면 농인들은 상대의 입모양을 보고 이해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농인 친구나 가족들을 배려해 입모양으로 대화한다. 그런 점에서 스마트폰은 화상으로 수어 통화가 가능하게 해준 신기술인 셈이다.

수어로 한손을 주먹쥐고 다른 손을 펴서 돌리면 "사랑합니다"라는 뜻이다./ 조인원기자

비장애인들은 시청각에 모두 의존하지만,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은 대신에 시각적으로 정보를 잡아내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서 대체로 관찰력이 좋다. 농인들은 그래서 상대와 소통할 때 눈을 마주치면서 손뿐만 아니라 몸 전체와 입모양, 얼굴 표정으로 대화한다. 그래서 수어통역사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대신에 역동적인 몸짓으로 수어를 하는 것이다.

글ㆍ사진ㆍ영상=조인원 기자 / 도움=김철환 수어통역사겸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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