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을 기다렸다" 55일만에 봉쇄풀린 파리, 명품매장에 긴 줄

파리/손진석 특파원 2020. 5. 1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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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0시를 기해 프랑스에서 봉쇄령이 대폭 해제됐습니다. 55일만에 자유를 얻었습니다. 식당·술집·카페·대형 쇼핑몰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열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는 이동 증명서 없이도 거주지에서 100㎞까지는 제약 없이 이동할 수 있게 됐습니다.

봉쇄령이 풀린 순간은 파리 북서쪽 교외도시 클리시의 한 미용실에서 맞았습니다. 영업 개시가 가능해진 순간부터 손님을 맞고 싶다며 이날 0시1분에 문을 연다는 미용사가 있다는 소식에 만나러 갔습니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한밤중인데 정말로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더군요. 올해 마흔 아홉의 카린 그랑제라는 미용사였습니다.

프랑스에서 봉쇄령이 대폭 해제된 11일을 맞아 이날 0시1분에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은 프랑스 미용사 카린 그랑제씨/손진석 특파원

그랑제씨의 스토리를 기사로 서울에 송고하고 나서 낮에 파리 중심 상권인 샹젤리제에 가봤습니다. 꽤 많은 인파가 거리에 몰려나왔습니다. 다들 표정이 밝아보였습니다. 쇼핑객뿐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나온 젊은이, 유모차를 밀고 나온 여성 등이 눈에 띄었습니다. 벤치에 앉아 있던 한 젊은 여성은 “봉쇄령이 풀리니까 날씨도 좋고 그래서 무작정 나와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체감상 절반 정도입니다.

봉쇄령이 해제되자 자전거를 타고 개선문 앞에 나온 파리 시민들/AFP 연합뉴스

해외 관광객은 여전히 입국이 안되고 있지만 문을 연 상점들에는 사람들이 북적였습니다. 루이뷔통 매장 앞에는 길게 줄을 섰습니다. 자라(ZARA) 가게 앞에도 입장을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가게 입구에는 마스크를 쓴 보안 요원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평소보다 적은 손님을 내부로 들여 보냈습니다. 마스크를 안 쓴 손님은 입장 불가인 상점들이 여럿이었습니다.

샹젤리제의 루이뷔통 매장에 들어가려고 줄을 선 사람들/손진석 특파원
샹젤리제의 자라 매장에 들어가려고 줄을 선 사람들/손진석 특파원

명품 가게들 중에서는 아직 문을 안 열지 않은 곳도 제법 있었습니다. 내부 수리중이거나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1899년 개업해 올해 121년을 맞은 유명한 식당인 ‘푸케(Le Fouquet's)’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습니다. 이곳을 비롯해 식당·카페들은 여전히 굳게 문이 닫혀 있습니다. 언제 영업을 재개할 수 있을지 아직 기약이 없습니다.

올해 개업 121주년을 맞은 샹젤리제의 유서 깊은 식당 푸케. 셔터가 내려져 있다/손진석 특파원
식당과 카페는 아직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노천에 있던 의자를 내부에 들여다 놓고 문을 잠근 곳이 많다/손진석 특파원

세계 최대 명품기업 LVMH(루이뷔통모에헤네시그룹)가 운영하는 화장품 유통 매장 세포라에 들어갔습니다. 입구는 물론이고 매장 내부 곳곳에 손 소독제를 비치해놨습니다. LVMH가 화장품 생산 라인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손 소독제입니다. 직원들은 밝게 인사를 합니다. 다른 상점들도 대부분 입구에 손 소독제가 비치돼 있었습니다.

화장품 유통매장 세포라의 샹젤리제점. 손 소독제가 매장 곳곳에 비치돼 있다/손진석 특파원

봉쇄령은 풀렸지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은 지하철입니다. 좁은 객차 안에서 다른 사람과 몸을 맞대야 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습니다. 그리고 파리와 근교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이동 증명서를 필참하도록 했습니다. 출근을 한다는 등 꼭 필요한 이동만 하라는 것입니다. 지하철역 입구에서는 경찰이나 RATP(파리교통공사) 보안요원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의 역내 진입을 막거나 이동 증명서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근무중인 RATP(파리교통공사) 보안요원들.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의 역내 진입을 막았다/손진석 특파원

돌아오는 길에 센강을 봤더니 강둑에 많은 젊은이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끼리 수다를 떠는 모습이 목격됐습니다. 에펠탑 건너편에는 연인들이 나와서 애정을 표시하기도 하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자유를 만끽하는지라 표정이 다들 밝았습니다. 파리 북부의 생마르탱 운하에는 젊은이들이 대거 몰려와 맥주와 와인을 마셔대서 경찰이 와서 해산시키기도 했습니다.

봉쇄령이 풀리자 센강 변에 몰려나온 파리 시민들/AFP 연합뉴스
조깅을 하러 나온 젊은이들/손진석 특파원
봉쇄령이 풀리자 데이트하러 나온 젊은 남녀가 애정 표현을 하고 있다/손진석 특파원
에펠탑 건너편에서 그림을 파는 노점상도 봉쇄령 해제에 따라 오랜만에 다시 나왔다/손진석 특파원

날씨가 더워져서 그런지 파리 15구의 한 버블티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선 모습을 봤습니다. 테이크아웃을 하거나 배달만 하는 일부 카페·식당은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녁 8시가 되자 파리 시민들은 거리에서 의료진을 응원하는 박수를 쳤습니다. 그동안 이동 금지령이 내려 있을 때는 아파트 발코니에 나와 박수를 쳤지만 이제는 길거리에서 편하게 박수를 칠 수 있습니다.

파리 15구의 한 버블티 가게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손진석 특파원
파리 동쪽 교외도시 생망데에서 11일 저녁 8시가 되자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의료진을 격려하는 박수를 치고 있다/AFP 연합뉴스

프랑스인들은 55일만에 자유를 맛봤지만 한편으로 다시 바이러스가 확산될까봐 불안해합니다. 한창 때보다는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감염자, 사망자가 적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보건당국은 11일 감염자 453명, 사망자 263명이 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누적으로는 17만7423명이 감염돼 그중 2만6643명이 숨졌습니다. 지난주 일간 르피가로 여론조사에서 정부가 성공적으로 봉쇄령을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갖고 있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이 58%였습니다. 35%는 계속 봉쇄령을 유지하는 걸 원한다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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