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최대 여성 인권 침해" 기지촌 문제, 지방정부가 먼저 나섰다

2020. 5. 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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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최초 '기지촌 피해 여성 지원' 조례..이재명 "진상조사, 지원에 적극 나서겠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미군기지 주변에 운영되던 기지촌의 '미군 위안부'들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 미군의 편의를 위해 조성된 '기지촌'의 뒤에는 '국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성매매 여성'이라는 낙인이 찍혀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수십년의 세월을 숨죽여 살아야 했다. 대부분 70대, 80대로 고령인 이들은 더이상 피해자로 살수 없었다. 지난 2014년부터 기지촌 여성들은 국가 배상 소송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일부 곱지 않은 시선에도 시달려야 했다. 특히 '미군'과 관련된 인권 침해 사건이라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 보길 꺼려했다.

그러나 2018년 서울고등법원은 "국가의 기지촌 운영 관리 과정에서 성매매 정당화와 조장 행위, 위법한 강제 격리·수용 행위가 있었다"며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냈다. 이른바 '미군 위안부' 운영에 국가의 책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법원이 명토박은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책임 있는 공식 사과가 없다.

정부가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 경기도가 나섰다. 경기도는 지난달 29일 본회의에서 김종찬 도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을 전국 미군기지 소재 지자체 중 최초로 의결했다. 지원대상은 1945년 9월8일 미군 주둔 이후부터 2004년 9월23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기 전까지 경기도 내 미군 부대 기지촌에서 생활했던 여성들이다. 경기도와 시민단체는 이같은 피해 여성들이 300~500명 가량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조례안은 기지촌 여성들에게 △임대보증금 지원 및 임대주택 우선 공급 △생활안정 지원금 지급 △의료 급여와 간병인 지원 △장례비 지원 등을 위해 경기도가 예산 범위 내에서 나설 근거가 된다. 경기도에 기지촌여성지원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원 사업 추진을 위한 센터를 둘 수 있게 된다. 특히 국가 차원의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지자체가 먼저 적극적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취임하기 전에도 비슷한 조례안이 발의된 적이 있었으나, 당시 경기도가 '조례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대해 무산됐었다. 이번에는 이 지사가 적극적으로 나서 이번 조례안을 뒷받침했다. 이 지사는 조례안 통과를 환영하며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여성인권 침해 사례인 기지촌 여성 문제에 대한 진상조사와 지원 및 재발방지에 도 집행부가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7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지촌 여성 지원 단체와 피해 여성들을 직접 만나 이들에 대한 경기도 차원의 실태 조사와 지원을 거듭 약속했다. ⓒ경기도

이 지사는 7일 기지촌 여성 지원 단체와 피해 여성들을 직접 만나 이들에 대한 경기도 차원의 실태 조사와 지원을 거듭 약속했다. 이 지사는 경기도청 상황실에서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 관련 지원단체 간담회를 열고 "집단적 여성 인권 침해 사례로는 일본군 성노예피해자 다음으로 심각한 큰 문제로 지금까지 기지촌 피해자분들에게 너무 관심도 적고 실제적인 조사나 지원에 대해 매우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이제라도 국가 기관에 의한 방조, 또는 조장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고 피해 규모라든지 피해의 실상이나 객관적 실태들에 대해 명확한 조사들이 필요하다"며 "다시는 이 같은 인권침해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 차원에서 가능한 일들이 무엇인지 함께 논의하고 필요한 조치를 고민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최순영 경기여성연대 상임대표, 우순덕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상임대표 등 기지촌 여성 지원 단체 관계자와 피해 당사자 등이 참여했다.

최순영 경기여성연대 상임대표는 "19·20대 국회에서도 법을 제정하려 했지만 어려움에 부딪혀서 못했었는데, 경기도가 특히 이 지사님이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조례가 제정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며 "이것이 바로 지방자치의 좋은 사례라고 본다. 경기도민의 절반이 여성이고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여러 사각지대에서 차별받고 있는데 이 부분에 더욱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우순덕 기지촌여성 인권연대 상임대표는 "2002년부터 평택에서 할머님들과 함께 한지 만 18년이 됐다. 그동안 많이 좌절하고 가슴이 아팠는데 지사님이 의지가 있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조례가 제정됐더라도 실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경기도가 할머니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지사와 참석자들은 기지촌 여성에 대한 재정지원을 위해 상위법령이 필요하다며 이에 대한 공론화, 법령제정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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