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분양 하라더니..선분양보다 빠른 사전청약 부활
선분양 문제 많다며 후분양 가이드라인 만들더니
집값 불안 잠재우려 9년 만에 '사전청약제' 부활
정부가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공공택지에 사전청약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선분양을 통한 시세차익이 집값 급등을 부추긴다며 후분양을 권장해왔기 때문이다.
◆“공공택지 후분양” 무색
국토교통부는 ‘수도권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방안’에서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 사전청약 계획을 발표했다. ‘주거복지로드맵’과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계획’을 통해 확보한 택지 77만 가구 가운데 일부를 조기에 분양한다는 내용이다.
사전청약은 분양 예약과 같은 개념이다. 해당 아파트의 사업승인 이전에 공급 물량 일부를 예약받은 뒤 본청약 때 사전청약자들에게 우선계약권을 준다. 2008년 ‘반값 아파트’를 내세운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할 때 처음 도입했다가 2011년 폐지했다. 정부가 9년 만에 사전청약 카드를 다시 꺼낸 건 애써 잡은 집값이 다시 반등할 여지조차 주지 않기 위해서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동안 분양시장에 대한 정부의 기조는 정반대였다. 집을 짓기도 전에 분양하는 선분양 방식이 하자 분쟁을 일으키고 시세차익에 대한 투기수요를 낳는다며 오히려 후분양을 장려해왔다. 2017년 국토부 국정감사에서 김현미 장관이 단계적 후분양제 도입을 피력한 뒤 2018년 ‘후분양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당시 국토부는 ‘제2차 장기주거종합계획’ 수정계획을 통해 2022년엔 공공분양 물량의 70%를 후분양으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민간에 판매하는 택지에 대해서도 후분양을 하는 사업자에게 우선공급하도록 하고 기금 대출한도 확대와 금리인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료율 인하 등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고돼야 한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주거종합계획’에선 경기 의정부 고산지구 등을 후분양 시범단지로 선정했다.
그러나 정부가 사전청약제를 부활시키면서 후분양 도입의 근거를 뒤집자 정책적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개발·재건축 규제로 인한 서울 아파트 공급 공백이 오히려 집값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고 자인한 꼴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무주택자들을 막연히 기다리게 하는 것보단 조기 당첨에 따른 내 집 보유효과를 유도하려는 것”이라며 “행정상 분양일정을 앞당기면 매매시장으로 진입할 수요를 잠재우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계산”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후분양 장려 기조에서 사전청약제를 꺼낸 것에 대해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을 조기에 체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라며 “그 이상이나 이하의 의미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제때 본청약 가능할까
사전청약은 통상 본 청약 1~2년 전에 이뤄진다. 과거엔 사전예약을 한 청약자가 실제 분양을 받는 비율이 절반에도 못 미쳤다. 택지에 대한 토지보상도 하기 전에 사전청약을 받다 보니 사업 일정이 차일피일 밀린 탓이다.
LH에 따르면 2009~2010년 보금자리주택 사전청약에 당첨된 이들은 1만3398명이다. 이 가운데 향후 본청약에서 실제 계약한 비율은 41%(5512명)에 불과하다. 모집공고에서 안내했던 일정보다 본청약이 지연되면서 대기자들이 아예 계약을 포기한 것이다. 예약 당시 가격으로 계약할 수 있지만 무주택 등 입주 자격을 수년 동안 유지하기 힘든 탓이다. 2012년 12월 사전청약을 받은 하남 감일지구 B1블록(분양전환임대)의 경우 7년이 경과한 지난해 말에서야 본청약이 이뤄졌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토지보상과 택지조성 등의 절차가 끝난 곳부터 사전청약제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단지의 구체적 위치와 개략적인 설계, 예상 분양가 등의 정보도 제공하기로 했다. 내년엔 9000가구가량을 사전청약으로 공급한다. 3기 신도시 조성이 본격화하는 2022년 이후엔 물량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사전청약 일정 자체가 밀릴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2018년부터 3차례에 걸쳐 발표한 30만 가구 공급계획 가운데 부천 대장신도시와 광명 하안2지구, 안양 관양지구를 비롯한 9개 지구 5만7800가구가 아직 지구지정을 마치지 못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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