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에게 이런 말 괜찮나요?

정현권 2020. 5. 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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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오딧세이-47] 분기에 한 번꼴로 진행하는 골프모임이 있다.

고교 선후배로 구성된 모임인데 모두 나보다 고수다. 싱글 수준의 로 핸디 실력자들로 스윙과 멘탈에서 매번 많은 것을 배운다.

몇 년간 이어진 이 모임에 또 다른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경기 중 캐디와 경기 외적인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동반자들이 캐디와 별로 말을 섞지 않는다. 대화하더라도 코스, 클럽, 날씨, 로컬 룰 등 당일 골프진행과 관련한 내용 위주다. 캐디와 사적인 대화는 찾기 어렵고 동반자들과 주로 말을 나눈다.

캐디를 호칭해야 할 경우엔 반드시 'OOO 씨'라고 부른다. 여태껏 반말로 "어이, 캐디~"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멤버들은 오로지 본인 플레이에 몰입하고 캐디는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할 뿐이다. 조용한 가운데 각자의 몫에 성실하게 임하는 분위기와 이런 모습을 나는 좋아한다.

골프를 하면서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성희롱 언사는 줄었지만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성 발언을 여전히 목격한다.

"경기실에서 백을 실으며 오늘 어떤 고객을 만날까 기대 반 설렘 반의 심정이죠. 이내 지연 플레이와 막말을 하지 않는 고객이라면 좋다며 마음을 내려놓죠."

여주 소재 아리지CC 캐디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카트에서 인사할 때부터 고객의 인품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캐디가 인사하면 "반갑습니다" 하고 짤막하게라도 반겨주면 상큼하게 하루를 연다. 카트에 타자마자 대뜸 "오늘 이분들 잘 모셔야 돼"라고 말하면 왠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당연한 말인데 왜 맘이 무거워질까.

카트 전면에 적힌 이름으로 호칭하면 첫인상이 좋고 경험상 매너 좋은 골퍼일 확률이 높단다. 말의 품격에서 매너가 드러난다는 것.

요즘은 신체를 터치하거나 노골적인 성희롱 발언은 많이 없어졌다. 대신 종종 사적인 질문을 해와 감정이 혼란스럽다고 한다.

대중골프장협회에 따르면 "고향은 어디인가" "나이는 몇 살인가" "취미는 뭔가"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캐디에 따라서는 그냥 쿨하게 대답하지만 사적 영역을 노출하기 꺼리는 캐디도 있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사투리가 자신과 비슷해 자연스레 고향을 물어볼 수도 있지만 불쑥 들이대면 당황스럽다. 분위기를 훈훈하게 하려는 취지라도 상대방의 심중을 알 수 없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공적 부분과 사적 부분을 넘나드는 모호한 경계성 발언도 있다. 가령 "매너도 좋고 얼굴도 예뻐서 LPGA 진출하면 인기가 최고일 거야"라고 말하는 식이다.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울 의도이겠지만 "골프 치러 와서 굳이 캐디를 붙잡고 저렇게 말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 골프장에 오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나" "오늘 일과 후엔 뭐 하나" 등도 민감한 질문이다. 캐디 처지에선 굳이 답변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만 "왜 이런 게 궁금할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남자친구는 있나" "좋아하는 이상형은 어떤 유형인가"도 캐디에게는 도발적인 질문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꼭 헤아려야 한다. 옆에서 듣는 동반자마저 거북한데 무엇이 문제냐고 생각한다면 공감능력과 성인지 감수성에 문제가 있다.

답변을 유도하거나 강요하는 발언도 있다. "내 매너 어때? 이 정도면 베스트 아냐? 최근 이런 매너 본 적 있어?"라는 식이다. 유머스럽고 재밌는 말이지만 불필요한 잡담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예전에는 마음을 상해 경기과에 찾아와 호소하는 캐디가 많았는데 요즘은 많이 줄었죠. 경기 진행과 관련된 주제로 대화하고 경기 외적 대화 땐 상대방 입장을 헤아리면 좋겠습니다."(김태영 대중골프장협회 부회장)

캐디도 골퍼와의 대화에 유의할 점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캐디는 양성교육을 받은 전문인이어서 별문제는 없다.

간혹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캐디가 있다. 일단 무표정에 말이 없는 캐디다. 이런 유형은 말을 붙이기가 내키지 않아 라운드 내내 맘이 무겁다.

모든 것을 단답형으로 답변하는 캐디도 괴롭다. "예" "아니요"라고만 대답하는 캐디를 만나면 필드 분위기가 어둡다. 동반자 간 분위기에도 전염된다.

애매한 상황인데 OB나 해저드구역에 공이 들어갔다고 단정해 버리는 캐디도 있다. "가봐야 알겠는데 잠정구를 치고 나가면 어떨까요?"라고 골퍼에게 말하면 무난하다.

우수한 골프실력을 보유한 캐디도 골퍼가 물어보기 전에는 훈수 두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캐디가 안쓰러워 훈수를 하다가 냉랭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사례도 있다. 상황에 따라선 선의가 통하지 않는다.

"내가 약점으로 생각하는 부분을 그대로 지적하면 순간적인 모멸감에 분노가 상대방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수용할 자세가 됐는지 파악하고 조언해야죠. 왕의 신임을 얻은 후에야 간언해야 한다는 말도 있죠. 상황 파악을 못해 얼마나 많은 목이 날아갔습니까."(김기현 현정신과의원 원장)

간혹 재치 있는 캐디의 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바꿔놓기도 한다. 최근 충북 음성 진양밸리CC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반자가 티샷을 했는데 공이 멀리 OB말뚝 근처로 향했다.

가벼운 스킨스 게임을 했는데 멀리건 여부를 놓고 옥신각신했다. 공의 생사 여부가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때 남자 캐디가 살짝 끼어들었다. "혹시 이 공을 씨 없는 수박으로 처리하면 어떨까요." 순간 동반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약 공이 살았으면 그대로 치고 OB구역에 걸쳐 있으면 무벌타로 처리하는 거죠. 단 스코어는 그대로 적고 게임에서 이기더라도 상금은 못 먹는 겁니다."

구력 20여 년 만에 처음 듣는 비유였다. 무정란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캐디의 유머에 순간 긴장이 풀리고 즐겁게 라운드를 진행했다.

"경기에 임하는 진지함, 동반자와 캐디에 대한 배려, 불만족스러운 본인 플레이에 대한 접근 태도, 절제된 행동과 대화를 보면 사회생활도 참 반듯했을 거란 생각이 들죠.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옵니다."

경기도 광주 소재 남촌CC 고참 캐디에게 들은 이야기다. 사회생활이 그대로 자신의 골프에 묻어난다는 의미다.

한때 서하남 캐슬렉스CC에 가면 우리 팀에 배치되기를 내심 바라던 캐디가 있었다. 부드러운 말씨에다 노련한 진행, 적절하면서도 절제된 조언이 감동 그 자체였다.

그 골프장 캐디 사이에도 최고 인기였다고 한다. 평소의 생활태도가 본연의 일에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그 후 다른 데로 갔다는데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인정받을 것이다.

캐디는 조력자다. 부리는 게 아니라 골프를 하면서 내가 도움을 받는 존재다.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더욱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존중은 말에서부터 나온다. 캐디를 위해서가 아니라 말은 인격을 담는 그릇임을 알기에 나부터 더욱 신중해야겠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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