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울의 공업 심장 문래, 의정부 미군 기지사의 증인 빼뻘

2020. 4. 2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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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직업적 책읽기] <문래 금속가공 공장들의 문장 디자인> , <빼뻘 주름 프로젝트>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오늘은 대서울(Greater Seoul)의 서남부와 북동부에 자리한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4가와 경기도 의정부시 송산1동에 대한 책 두 권을 소개한다. 문래동4가와 송산1동에는 각각 일본에 의한 식민지 시절 말기에 형성된 영단주택(營團住宅) 단지와 한국전쟁 후 미군 기지 옆에 형성된 기지촌 '빼뻘'이 존재한다. 영단주택 단지는 현재 주거지역에서 공업지역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고, 빼뻘은 캠프 스탠리의 배후 기지촌으로 번성했다가 쇠락하고 있다. 두 지역 모두 재건축・재개발의 소문이 나돈다. 재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은 <빼뻘 주름 프로젝트 - ㅃㅃ>에 실린 다음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내 생각인데 아마 주민들도 똑같은 생각일거야. 부대가 빨리 뜨고 대학이 들어오든지 큰 병원이 들어오든지. 뭐가 탁 들어와야 동네가 살아날 것 같고. 그래야 사람 사는 동네가 되는 거지. 이건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고 완전히 빈촌이야. 빈촌도 요즘 이런 빈촌이 없을 거야. 한 십년 전, 십오 년 전에는 빈촌이 있었겠지만 이 동네가 지금 그 때 그 시절보다 못한 빈촌이에요." (110쪽)

미군 기지가 빠지고 대학·병원이 그 자리에 들어서면 옛 마을은 재개발되어서 사라질 텐데... 이 말씀을 하신 주민이 토지주·건물주인지는 모르겠지만, 재개발하면 웬만한 규모의 토지주・건물주도 그곳에 재정착하지 못하는 게 지난 수십 년 간 한국의 재개발・재건축 역사에서 확인되었다. 더욱이 이 지역에는 기지촌에서 근무하던 미군 위안부 여성들이 노후를 맞이하여 가난하게 살고 있다. 만약 실제로 재개발이 진행되면 이 분들이 어떤 보상을 받고 어디에 재정착하게 될지 걱정된다. 물론, 아직 캠프 스탠리의 이전 계획은 확립되지 않은 것 같다. 근처에는 교정시설(矯正施設)도 있기 때문에 재개발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못하리라 짐작하고 있다.
▲ <빼뻘 주름 프로젝트 - ㅃㅃ>(김현주, 조광희 지음) ⓒ빌롱잉스

위에 소개한 주민의 발언에서 보듯이 현재 의정부 빼뻘에는 슈퍼마켓과 식당 한 곳을 제외하면 기초적인 편의시설이 없다. 약국도 없고 목욕탕도 없고 마을 구석구석으로 운행하는 마을버스도 없어서, 주민들은 기초적인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대로를 가로질러 시내버스를 타고 의정부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 미군기지 병사들이 대거 평택으로 재배치되면서, 한때 클럽과 식당으로 호황을 누리던 기지 후문 주변 경기는 완전히 침체되었다.

내가 처음 빼뻘을 답사한 2018년 봄, 맛집으로 유명했다던 기지 후문 바로 옆의 '스탠리 프라이드'는 이미 폐업한 상태였다. 클럽 거리에서 조금 아래쪽에 별도로 형성되어 있는 주민들의 마을을 관통하는 골목에 있던 '스타닭'은 독특한 방식으로 튀긴 닭과 세 가지 방식으로 조리한 감자튀김, 그리고 콩나물 김치국의 조합이 인상적인 곳이었는데, 이곳도 지금은 폐업했다. 현재 빼뻘에서 영업하는 식당은 마을 입구 농협 옆의 오복식당 뿐이다. 의정부 고산지구 개발을 위해 임시로 이곳에 머무는 노동자들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 고산지구 개발이 끝나면 빼뻘 주민의 일부는 그곳에 만들어지는 아파트로 이주한다고 한다.

의정부 빼뻘이 이처럼 경제적으로 활동이 거의 정지된 상태라면, 문래동4가의 구 영단주택 지역은 반대로 소규모 공업지대, 속칭 '마치코바(町工場)'로서 번창하고 있으나, 이 일대에 대한 고층아파트 단지 개발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구역 한 가운데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등변사다리꼴을 조금 기울여놓은 모양의 구 영단주택 지역을 고층아파트단지들이 포위해 들어오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 문래영단주택 또는 문래공업지역. ⓒ김시덕

영단주택이란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을 도발한 전시체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에서 병참기지화가 빠르게 진행되자, 공업도시로 급성장한 북한지역의 함흥, 흥남, 청진, 원산을 비롯하여 경인공업지역에 위치한 군수산업체가 급증"함에 따라 "노동자의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주택영단에서 표준주택을 만들어 각 지역에 공급하여 군수산업체 노동자의 주거안정을 위해 집합주택 형태로 공급"한 주거형태다. 조선주택영단은 그 후 대한주택공사가 되었다가 현재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되었다.

영단주택은 서울의 경우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조성된 영등포지구의 문래동에 651호, 대방동에 464호, 상도동에 1067호가 건설되었고, 인천의 부평구 산곡동에 약 1000호, 남구 용현동에 1개 단지, 그리고 숭의동에 3개 단지가 각각 건설되었다." (이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단주택> 항목). 1940년대 전반기에 조성된 영단주택 구역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이 서울의 문래동 영단주택, 그리고 화상(華商) 중국집 덕화원(德華園)으로 유명한 인천의 산곡동 영단주택이다. 문래동 영단주택 지구의 한 가운데에는 ‘영단수퍼’라는 이름의 슈퍼마켓이 도시화석(都市化石)으로서 마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지만, 지난 해 여름에 폐업했다.

이처럼 대조적인 두 지역 가운데, 의정부 빼뺄에 들어간 김현주·조광희 작가는 마을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마을 역사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그 성과는 지난 해 11월에 현지에서 전시되었는데, 이 전시를 보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던 차에 전시 도록에 해당하는 책 <빼뻘 주름 프로젝트 - ㅃㅃ>이 올해 한정판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입수했다. 우편으로 책을 받은 뒤 별 생각 없이 폈다가, 그날 밤을 새서 다 읽었다. 예상 이상으로 충실하게 의정부 빼뻘의 역사와 현황을 잘 담은 책이었다. 앞으로 빼뻘이 어떻게 바뀌어갈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이 기지촌이던 시절의 역사에 대한 기록으로서 이 책은 오래 오래 읽힐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수십 개의 인터뷰 가운데, 이 지역의 경제를 움직인 미군 위안부 여성들의 운명을 전한 인터뷰 기사를 일부 인용한다.

"두레방(미군 위안부 여성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 - 옮긴이)이 오래 됐어요. 거기가 보건소인데 사실은 거기서 색시들 한 달에 한 번씩 성병 검사를 했잖아. 매독, 임질에 걸리니까. 거기서 성병 진료를 했어. (중략) 공동묘지가 아직도 앞에 있지. 여기 돌아가신 분들 많아요. 그 당시에 아가씨들이 병사하거나 그러잖아요. 자살하는 아가씨들도 많았고. 비관해서 많이 죽었어요. 나 어렸을 때 많이 봤어. 그러면 색시들이 모여 흰 상복 입고 치마저고리 입고 꽃상여 매고 갖다 묻고 그랬어요. (중략) 미군들한테 버림받은 사람들도 많았죠. 같이 미국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갈 때 미군 혼자만 싹 들어가 버리고. 자식이고 뭐고 다 팽개쳐 버리고. 양놈들이 그렇게 냉정해. 우리가 월남 갔을 때 막 내지르고 온 거나 마찬가지지. 다 똑같은 거야." (209쪽)

의정부 빼뻘의 기지촌은 동두천 보산동・생연동・광암동(턱거리마을) 등의 원조 미군기지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턱거리마을에는 최근 기지촌으로서의 마을 역사를 기억하는 마을 박물관 '샹제리에'가 개관했다. 경기도 북부에 많이 존재했던 미군 기지촌은 미군 재배치에 따라 서서히 소멸하고 있다. 기지촌과 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둘러싼 슬프고 좋았던 기억도 함께 지워지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빼뻘 주름 프로젝트 - ㅃㅃ>이나 '샹제리에'처럼 어떤 형태로든 기억을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 <문래 금속가공 공장들의 문장 디자인>(강수경 지음) ⓒ미메시스

한편 <문래 금속가공 공장들의 문장 디자인>은 주거지역이었던 이 지역에서 1970년대부터 소규모 공장을 경영해온 장인들을 인터뷰하고, 희망자들에게 공장의 문장(紋章, 로고)을 제작해주는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책에는 인터뷰가 절반, 공장의 문장 디자인이 절반 정도씩 실려 있다. 도시를 공부하는 나에게는 이 지역에서 공장을 경영해온 분들의 생생한 인터뷰가 흥미로웠다.

서울시 안의 공장 지대라고 하면 지난 몇 년 간 을지로, 성수 지역이 주목받아 왔지만, 실제로는 서울 영등포에서 인천 구도심에 걸쳐 식민지 시대부터 가동되어 온 경인(京仁) 공업벨트와 그 주변에 새로이 조성된 구로공단이 ‘공업도시 서울’의 핵심이다. 을지로의 공업지대가 주목받는 이유 가운데는, 그곳이 서울 구도심 한가운데 있다 보니 일반 시민에게 노출되는 기회가 많았고, 출판사 및 대학 예술 관련 학과의 소속원들에게 필요한 공장들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점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 한반도에서 공업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영등포를 중심으로 한 경인 공업벨트였다. 울산・여수・안산 등에 대규모 공업지대가 생긴 뒤에도 경인 공업벨트는 여전히 한국이라는 국가의 공업에서 중요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올해 초에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드러난 사실이지만, 중국 등에 생산기지를 둔 서구・일본 등의 국가는 마스크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공장이 국내에 거의 없다보니 초기 대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반해 1~3차(또는 4차) 산업, 특히 경공업과 중공업이 골고루 존재하는 현대 한국은 전방위 대응이 가능했다. 대서울의 핵심이 여전히 공업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경인 공업벨트가 그저 아파트단지를 짓기 위해 대서울 바깥으로 이전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믿는다. 현대 한국을 만들어낸 본질로서 한국 시민에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지난해부터 이 일대를 답사하고 있다. 공장 지대에 아파트가 들어온 뒤, 공장을 이전하라고 아파트 주민들이 민원 넣는 것은, 비유하자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할 수 있다. 공장을 이전할 때 하더라도, 이전 행사를 하거나 기념 표지석을 세우는 등 현대 한국을 만들어낸 주역들을 좀 더 예우했으면 좋겠다.

▲ 문래가 영단주택이던 시절의 도시화석인 영단수퍼. 2019년 여름에 폐업했다. ⓒ김시덕

<문래 금속가공 공장들의 문장 디자인>은 을지로 등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록이 부족한 문래동4가 일대 공업 지역의 역사와 현황을 담고 있어서 반가웠다. 이 책에 실린 인터뷰 가운데, 문래 공업지대의 형성 과정을 잘 보여주는 구절을 인용한다.
조양연 : 구로에서 영업 일을 하다가 좀 쉬는데, 그때 우리 사촌 형이 베어링 공장을 했거든. 사촌 형이 나더러 와서 도우라고 하더라고. 당시에는 잠깐 일 돕고 온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손에 착 잡히는 금속 느낌이 너무 좋은 거야. 그때부터 이 일을 한 거지. 청계천 회사에서 3년 정도 다니다가, 1980년대 중반까지 거기 있었어. 당시에 청계천도 개발한다고 내보내기 시작했거든요. (중략)
송호철 : 당시 청계천하고 문래동이 어떻게 달랐었나요.
조양연 : 청계천은 우선 도심 안에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공간이 협소했었지. 여기 와서 공장들이 거의 배로 늘어났다고 봐야지. 청계천에서 옛날 기술자들한테 대여섯 명씩 배웠을 거니까. 그 사람들이 여기 와서 회사에 다시 취직한 사람들도 있고, 창업한 사람들도 있고. 그러니깐 여기 와서 자기 꿈을 펼친 사람들이 많은 거지. 원래 여기는 공업단지가 크게 형성되어 있던 곳인데, 공업이라는 게 큰 덩어리만 있다고 해서는 안 되잖아요. 서포트할 수 있는 작은 기업들이 또 있어야 받쳐 주는 건데, 작은 기업들이 오면서 전체 모습이 갖춰진 거지. (중략)
송호철 : 청계천하고 문래동하고 전성기는 언제였나요?
조양연 : 청계천은 1970년대이고, 여기는 1980~1990년대지. 1960~1970년대 여기는 거의 방직 공장들이 있었지. 대한산업하고 한국타이어, 삼영화학이 있고, 종근당이 있고, 그 와중에도 소재 산업들은 다 들어와 있었으니깐. 그런 메카가 있으니깐, 기계 산업이 융성할 수 있었던 거지. 1980년대 후반부터 여기에 있던 큰 공장들은 도시에서 안산이나 바닷가 근처에 있는 공단 위주로 재편해서 내려간 거지. 1990년도 후반까지 그랬어. (208-212쪽)

이처럼 <문래 금속가공 공장들의 문장 디자인>에는 문래동4가 공업지대가 만들어진 과정이 생생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나는 그 기록에 주목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절반에는 예술가들이 공장들의 문장(로고)을 제작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이 담겨 있다. 이 다른 절반 부분에 주목해서 이 책을 읽어도 좋겠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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