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기자의 여행>느릿느릿 빨간 모노레일.. 장엄하게 펼쳐진 백두대간.. 쪼그라든 삶을 위로하다

박경일 기자 2020. 4. 2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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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가 새로 조성한 관광 모노레일이 단산 능선을 따라 오르고 있다. 오른쪽 뒤에 보이는 웅장한 바위산이 성주봉이다. 모노레일은 단산의 9분 능선(847m) 활공장까지 3.6㎞ 구간을 운행한다. 단산활공장은 문경 일대의 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특급 조망을 자랑한다. 모노레일은 당초 3월 개장예정이었는데 인접 지역의 코로나19 확산으로 미뤄져 오는 27일 개장식을 한다.
경북 팔경 중 제1경인 진남교반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고모산성. 지난달 성곽 주변에 경관조명이 설치돼 밤 풍경도 좋다.
층암절벽에 세워진 정자 봉생정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 발아래 조령천과 가은천의 물길이 합류한 수변의 풍경이 봄꽃과 신록으로 수채화를 방불케 한다.
정자 주암정. 배 모습을 한 바위 주암(舟巖) 위에 지었다. 주암은 석문구곡의 제2곡이다.

■ 문경새재 없는 문경이야기

탄광으로 번성했던 단산, 레저 관광지로 부활

최신형 모노레일, 능선따라 국내 최장 3.6㎞ 구간 왕복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바로 아래엔‘오토 캠핑장’

밤하늘 쏟아지는 은하수·별자리에 잊지못할 하룻밤

단산 전망대부터 정상까지 나무덱… 1시간 남짓 산책길

산악자전거 타고 내려오는 5.1㎞ 코스도 ‘짜릿’

옛 선비처럼 선유구곡 오솔길따라 호젓한 풍경 ‘일품’

봉생정서 내려다본 봄꽃·굽이치는 물길 그림같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주춤하면서, 이제 어떤 속도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경제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마냥 ‘거리 두기’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 한 해 중 가장 빛나는 시절에 발이 묶인 사회구성원들의 누적된 피로감도 고려해야 할 상황입니다.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행은 차츰 시작되겠지요. 그렇게 되더라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대단위 관광지 위주의 여행은 당분간 자제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기왕에 이름난 곳보다는 새로운 곳들을 찾거나, 명소에 가려져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곳을 찾아가는 여행을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미처 몰라봤던 것들을 새로 발견하는 좋은 기회로 이어질 지도 모를 일입니다. 코로나19는 과연 우리의 여행 방식과 태도까지 바꿀 수 있을까요. 새로 생긴 것과 미처 몰라 봤던 것. 아래는 경북 문경을 다녀와서 말하는 ‘문경새재 없는 문경 여행’이야기입니다.

# 문경새재가 명소가 된 까닭

지금은 거의 다 잊혔지만 백두대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경북 문경은 한때 내로라하는 탄광지대였다. 1988년까지만 해도 문경에는 41개 탄광이 있었고 거기서 7000여 명이 일했다. 문경은 그때, 인구대비 유흥업소 숫자가 가장 많았을 정도로 흥청거리는 호시절을 누렸다. 문경 탄전지대의 중심이자 상징은 단산(亶山·959m)이었다. 단산이란 이름은, 정상부근의 산세가 신선이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펼쳐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일제강점기 자원약탈의 수단으로 시작된 탄광개발은 한때 번성했다가 임금인상과 빈약한 광맥, 수입석탄과의 경쟁력 상실로 석탄산업이 저물면서 정부의 폐광 유도 정책에 문경의 탄광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문경에서 가장 먼저 문을 닫은 곳이 바로 단산광업소였다. 단산광업소 폐광을 시작으로 1994년 마지막 가은읍의 은성광업소가 채굴을 중단하면서 문경의 모든 탄광은 다 폐광됐다.

문경새재와 문경온천이 지금처럼 이름난 관광지가 된 건 폐광 이후 막대한 투자의 덕이었다. 폐광으로 성장동력을 잃은 지역 경기를 살리기 위해 관광자원 개발에 투자를 집중하고 사력을 다한 결과였다는 얘기다. 단산 정상 아래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은 그때 만들어졌다. 석탄광업소가 있던 단산에다 신종 레포츠 시설을 조성했던 것은 관광·레저도시로의 면모를 갖추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석탄산업이 저물었음을 처음 알렸던 단산이, 이번에는 레저와 여가 산업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깃발의 역할을 했던 셈이다.

단산은 사실 등산 목적지로는 매력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세는 평면에 가깝다. 계곡도 없고, 기암도 없다. 기암과 협곡의 입체적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단산 옆의 성주봉 산세와 비교해보면 초라하다 못해 비루하게 느껴질 정도다. 게다가 단산은 9분 능선쯤에다 활공장을 조성하면서 거기까지 포장도로를 놓았다. 힘겹게 오른 산 정상 가까이서 포장도로로 올라온 승용차와 맞닥뜨리는 건 얼마나 맥이 빠지는 일인가.

그럼에도 단산이 가진 훌륭한 미덕이 있다. 뛰어난 조망이다. 문경 산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단산에 오르면 소백산맥 중앙부의 험준한 산세가 장엄하게 펼쳐진다. 구릉을 다듬어 만든 활공장에 서면 산 전체가 암봉으로 이뤄진 성주봉을 비롯해 주흘산, 조령산, 백화산, 대야산, 황장산, 운달산, 포암산, 희양산, 이화령 등 1000m를 오르내리는 문경의 산과 고개가 마치 문경읍을 호위하듯 솟아있는 모습이 시야 가득 펼쳐진다. 날씨가 좋으면 속리산과 월악산, 소백산까지도 볼 수 있다. 단산은 안(內)이 아니라 밖(外)을 봐야 하는 산이다. ‘백두대간을 한눈에 조망하는 산’. 그게 바로 문경의 단산이다.

# 모노레일을 타고 최고의 전망대에 오르다

하고 싶었던 얘기는 지금부터. 단산에 ‘관광 모노레일’이 놓였다. 문경새재 리조트 부근 하부정류장에서 단산 활공장의 상부정류장(847m)까지 운행한다. 국내 최장거리인 3.6㎞의 구간을 왕복 운행하는 8인승 최신형 모노레일이다. 공사도 다 끝났고 시범운행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어른 1만2000원. 어린이 8000원. 요금도 확정해서 매표소 앞에 게시해 놓았다. 한데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로 3월로 예정됐던 개장식이 한 달 미뤄지더니, 지난 20일로 예정됐던 개장마저 인근 예천 지역의 감염확산으로 늦춰져 오는 27일 개장식을 한다. 말끔하게 단장된 모노레일이 몇 달째 하릴없이 빈 차로 오르내리며 시범운행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단산의 관광 모노레일은 국내 모노레일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 실내 공간 등도 그렇고 소음이나 쾌적감에서도 다른 모노레일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레일이 계곡이나 숲이 아니라 산 능선을 따라 놓여있어 다른 지역의 모노레일과는 달리 운행 중의 시야가 탁월하다. 고도를 높이면서 점점 시야의 폭이 넓어지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최고 42도에 달하는 가파른 경사 구간에서는 모노레일이 이동수단이 아니라 놀이기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흠이 있다면 ‘느리다’는 것. 물론 안전 때문이다. 특히 올라갈 때의 속도가 갑갑할 정도로 느린데, 가장 경사가 급한 구간에서 모노레일의 속도는 걷는 속도의 절반쯤인 시속 1.7㎞다. 3.6㎞ 구간을, 오를 때는 35분이 걸리고 내려갈 때는 25분이 걸린다. 왕복 1시간이란 얘기니까, 평균 시속으로 계산해보면 7.2㎞다.

모노레일 상부 정류장에서 내려 몇 걸음이면 활공장이다. 둥글게 구릉을 만들어 잔디를 심어 놓은 활공장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의 스케일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여기 서면 저 아래서 끌고 올라온 답답한 것들을 단번에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듯하다. 활공장이 보여주는 건 ‘풍경의 규모’다. 그게 위로와 위안으로 이어지는 건 풍경이 보여주는 거대한 크기에서 보잘것없는 자신의 존재를 깨치기 때문이 아닐까. 저 아래서 복닥거리며 노심초사하던 일이 이렇게 멀리, 또 높이 올라와 보면 실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그런 깨달음 말이다.

# 산정에서의 하룻밤… 별을 만나다

모노레일로 오르는 단산에는, 모노레일만 있는 건 아니다. 활공장에는 패러글라이딩 대회 개최를 계기로 지었다는, 휴게실 겸 전망대인 원통형의 3층 유리 건물이 있다. 코로나19로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모노레일이 개장한 뒤 카페 등으로 활용한다면 명소가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전망대 옆에는 길게 매어 놓은 그네가 있다. 해발 800m가 훨씬 넘는 높이에서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는 아찔한 그네다. 전망대에서 단산 정상까지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나무 덱도 있다. 흙길을 밟을 수 없어서 ‘과도한 편의시설’에 대한 불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분명한 건 걷기가 참 편하다는 것이다. 활공장에서 단산 정상까지는 1시간 남짓. 등산이라고 생각할 것도 없이 그저 작은 물병 하나 차고서 쉬엄쉬엄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다.

단산에는 ‘바이크 로드’도 있다. 바이크 로드는 단산의 산악자전거 코스다. 활공장에서 출발한다. 코스가 3개인데 그중에서 눈길이 가는 건 4.1㎞짜리와 5.1㎞짜리 내리막(다운 힐) 코스다. 가장 긴 5.1㎞ 코스는 출발지점과 도착지점 사이의 표고 차가 772.3m다. 자전거를 타고 이만한 높이를 단숨에 내려가는 코스니 얼마나 짜릿할까. 다운 힐 코스를 즐기겠다면 자전거를 모노레일에 실어 상부 정류장까지 옮기면 된다. 자전거 운송을 위해 한 번에 6대의 자전거를 운반할 수 있는 전용 화물용 모노레일 차량도 따로 운용한다.

활공장 바로 아래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레일 썰매장과 가족 단위 관광객을 겨냥한 캠핑장도 있다. 차량을 세우고 그 옆에 텐트를 칠 수 있는 오토 캠핑장이다. 캠핑장을 예약하면 활공장까지 차를 타고 진입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캠핑장이 숲 그늘에 있는 게 아니라 능선에 있고, 사이트 수도 16개가 전부이긴 하지만, 단산 능선의 캠핑장에서 보내는 하룻밤이 누구에게든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추억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건, 여기서 쏟아질 듯한 은하수와 별자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정 근처에서 저 아래 문경읍의 불빛을 내려다보고 밤하늘을 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거기까지 간 보람은 충분하다.

# 자연과 선비의 합작품, 문경의 구곡

이번에는 문경에서 문경새재를 빼고 얘기해보자.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대표적인 관광지를 다시 얘기하는 건 코로나19의 시대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준수하자는 차원에서도 내키지 않는다. 여행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게다가 문경새재는 알려질 만큼 다 알려져서 새삼 더 보태거나 다시 얘기할 만한 새로운 게 없기도 하다.

문경에서 문경새재를 지우고 나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매혹적인 장소는 어디일까. 이 질문을 꺼내서 내밀고 싶은 게 ‘구곡원림(九谷原林)’이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가 자신이 은거하던 중국의 푸젠(福建)성 우이(武夷)산에 아홉 굽이 별천지 경관을 정해 ‘무이구곡’이라고 이름한 이래, 조선 선비들 사이에서 전국의 명승마다 구곡 이름을 붙이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구곡의 시작은 중국이었지만, 조선의 선비들 사이에서 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이었다.

구곡이 들어서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 했다. 하나는 빼어난 경관의 산과 물, 그리고 세상과 등져 주자와 같은 성리학적 삶을 살고자 하는 선비. 문경에는 이 두 가지가 다 있었다. 그래서 다른 어느 곳보다 문경에는 구곡이 많다. 우리나라 구곡 3분의 1이 경북에 있고, 그중 5분의 1이 문경에 있다. 어디 세어보자. 가은읍의 희양산에서 내려오는 양산천 계곡에는 ‘선유구곡’이 있다. ‘선유(仙流)’이니 ‘신선이 노니는 계곡’이다. 속리산에서 내려오는 농암천에는 ‘쌍룡구곡’이 있다. 산양면의 운달산에서 발원하는 대하천 물길에는 ‘석문구곡’이 있고, 문경읍에는 ‘화지구곡’이 있다. 기록이 좀 흐리긴 하지만 ‘청대구곡’ ‘산양구곡’ ‘영강구곡’도 있다.

문경의 선비들은 수려한 공간을 찾아내서 구곡을 정했지만, 구곡이 자연경관에 대한 탐닉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자연 속에 기거하며 구곡에 몰두했던 이들은 대개 관직에서 물러났거나 아예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선비들이었다. 은거하는 그들은 구곡의 자연 속에서 공부의 답을 찾았다. 이를테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에서 세상의 순리와 마땅한 도리를 생각하는 식이었다. 구곡을 정하고 성리학적 세계를 구현하는 것은, 당시의 선비들에게 학문에 정진하는 과정이었다. 구곡을 정하고 그곳을 마음에 두고 드나드는 것을 두고, ‘경영’이라고 표현한 건 그래서다. 경치가 흐려지고 가치가 달라진 지금이야 옛사람들이 경영하던 구곡의 진정한 의미를 들여다볼 안목이 없어 그저 경관과 운치만 감상할 뿐이지만 말이다.

# 신선이 노닐던 아홉 곳의 경치

문경의 구곡은 천차만별이다. 이름난 선비가 낙향해 경영하던 구곡도 있고, 지역의 토호가 소일삼아 노닐던 곳도 있다. 내력이 수백 년을 훌쩍 넘긴 것도 있고, 비교적 근래에 이름 붙여진 곳도 있다. 경관 역시 마찬가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구곡의 수백 년 전 풍경이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로변으로 나앉은 곳도 있고, 물길이 바뀌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곳도 있고 바위가 사라진 곳도 있다. 비교적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도, 지금의 눈으로 보면 이 정도의 경관을 왜 구곡으로 삼았는지 의심되는 곳도 적잖다.

문경의 구곡은 ‘지금의 눈’으로 찾아갈 일이다. 문경의 구곡 중에서 옛 모습과 정취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그래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이 바로 선유구곡이다. 선유구곡은, 제법 큰 펜션과 별장이 들어선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물을 끼고 이어지는 호젓한 계곡의 경관이 일품이고, 이름 붙여진 아홉 개의 명소도 뚜렷하다. 게다가 1곡부터 9곡을 잇는 계곡의 오솔길을 잇고 안내판을 설치해 ‘선유동천나들길’로 정비해놓아 옛 선비처럼 뒷짐 지고 경관을 감상하며 소요할 수 있다.

선유동천나들길의 전체 코스는 의병장 이강년기념관에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돼 있는데, 그보다는 선유구곡 2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계곡으로 걸어 내려와 계곡을 끼고 있는 운치 있는 정자 학천정 앞의 제9곡 옥석대(玉석臺)를 시작으로 8곡 난생뢰, 7곡 영귀암… 등의 순서로 둘러보고 돌아오는 게 코스도 짧고 원점회귀도 할 수 있어 더 낫다. 제4곡 세심대 아래쪽 계곡을 끼고 들어선 제법 규모가 큰 리조트와 별장 몇 채가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계곡은 고즈넉한 정취가 그만이다.

# 정자에 들어 수채화 같은 봄을 보다

문경의 구곡 중에서 선유구곡 한 곳을 빼면 구곡의 경관을 온전히 다 간직한 곳은 드물다. 그러니 다른 구곡을 가보겠다면 아예 띄엄띄엄 남은 구곡의 명승을 골라서 찾아가 보는 게 더 낫겠다. 그렇게 꼭 찾아가 볼 만한 구곡의 명소 한 곳을 뽑으라면 단연 산북면의 석문구곡 2곡인 ‘주암(舟巖)’이다. 석문구곡은 과거에 합격하고도 평생 벼슬에 나서지 않은 문경의 한 선비가 300여 년 전 은거했던 곳이다.

주암은 ‘배 주(舟)’에 ‘바위 암(巖)’자를 쓰는 이름 그대로 바위의 형상이 영락없는 배 모양이다. 그 바위에서 노닐던 선비들을 기리며 훗날 후손들이 근사하게 정자를 지었으니, 바로 주암정이다. 정자는 해방 한 해 전인 1944년에 지은 것이라는데 물 위에 뜬 배 형상의 바위에 들인 정자의 운치가 훌륭하다. 혼자 보고 말았지만, 주암정은 연못 주위의 벚꽃과 복사꽃이 분분히 질 때의 아름다움이 단연 으뜸이다.

그리고 문경에서 알려지지 않았으되 지금 가면 딱 좋을 곳 한 곳 더. 한때 문경의 최고 명승으로 대접받았던 진남교반 일대의 경관을 굽어보는 층암절벽의 자리에다 세운 정자 봉생정이다. 정자는 서애 유성룡 선생이 고향 하회마을에서 한양을 오갈 때 쉬어갔던 자리에다 지은 것이다.

정자 툇마루에 앉아서 마치 액자 속에 들여놓은 그림 같은 늙은 소나무를 보는 맛도 좋고, 발아래로 조령천과 가은천의 물길이 합류해 굽이치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맛도 좋다. 저 아래 봄꽃과 신록이 뒤덮은 물길 주변의 경관이 지금 마치 수채화로 그린 그림 같다.

■ 문경과 점촌

문경에는 버스터미널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문경읍의 문경버스터미널이고 다른 하나는 점촌버스터미널이다. 문경에서 ‘시내’라고 하면 점촌을 뜻한다. 문경과 통합하기 전의 점촌은 문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번성했다. 문경은 점촌을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점촌시가 아닌 문경시가 된 건 ‘문경’의 인지도 때문이었다.

문경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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