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저유소 폭발사고와 닮은 군포 물류센터 화재 [심층분석]

오상도 2020. 4. 2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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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실화 혐의 적용이나 배상 모두 어려울 듯
21일 오전10시 10분쯤 발생한 경기도 군포시 부곡동 군포복합물류터미털 화재 현장 모습.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제공
220억원 넘는 재산피해를 낸 ‘군포 물류센터 화재’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 

경찰이 담배꽁초를 무심코 버려 건물에 불을 낸 혐의로 튀니지 국적의 근로자 A(29)씨를 22일 긴급 체포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중실화 혐의로 체포된 A씨는 전날 오전 10시10분쯤 한국복합물류 군포터미널 안의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담배꽁초를 버렸다.

경찰이 확보한 폐쇄회로(CC)TV 영상에선 A씨가 담배를 피운 뒤 이처럼 꽁초를 버리는 모습이 확인됐다. 종이상자와 나무 등이 쌓인 쓰레기 더미에선 18분 만에 불길이 피어올랐고, 건물 주변에서 불어온 강풍을 타고 옆 건물로 옮겨붙었다.

경찰은 A씨가 버린 담배꽁초 외에 화재를 일으킬 다른 요인이 없다고 판단하고 A씨를 피의자로 특정해 긴급체포했다. 영장 청구 여부는 조사가 마무리된 뒤 결정할 방침이다. 2개월간 입주업체에서 일해온 A씨는 불법 체류자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220억원 피해, 외국인 근로자 중실화 혐의 적용 힘들 듯

전날 일어난 화재로 소방 당국은 불이 난 후 한때 최고 단계인 대응 3단계를 발령했다. 밤샘 진화 작업을 벌여 이날 오전 3시45분쯤 큰 불길을 잡고, 낮 12시25분쯤 잔불을 모두 껐다. 

현행법상 A씨와 같이 중실화로 화재 등 피해를 일으킨 자는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실제 법 적용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 
지난 21일 오전 10시 35분께 경기 군포시 부곡동 군포복합물류터미널 E동에서 큰불이 났다. 소방청 제공
이번 사건은 무심코 날린 풍등으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난 2018년 10월의 고양 저유소 폭발 사고와 닮은꼴이다. 당시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인 근로자 B(29)씨도 중실화 혐의로 경찰에 긴급 체포됐지만 48시간 만에 풀려났다. 당시 여론은 B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검찰은 “풍등과 대형화재의 인과관계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고, 구속기소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앞서 경찰은 B씨가 풍등을 날려 보내는 모습이 찍힌 CCTV 화면을 공개했고, B씨도 이를 인정했다. 

당시 경찰은 공사장 방향에서 날아온 풍등이 저유지 내에 떨어진 뒤 잔디에 불이 붙어 불씨가 바람을 타고 저유소 유증기배출구로 들어가 폭발했다고 설명했다. 저유지 CCTV에 찍힌 영상에는 풍등 낙하와 잔디 발화 장면, A씨가 풍등을 날려 보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불씨가 튀는 것까지는 CCTV로 확인할 수 없으나, 잔디에 불이 붙은 시간과 폭발의 간격 등 정황으로 볼 때 A씨의 풍등이 화재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B씨는 터널공사 현장에서 일했지만 쉬는 시간을 이용해 풍등을 날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오전10시 10분쯤 발생한 경기도 군포시 부곡동 군포복합물류터미털 화재 현장 모습.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제공
◆고양 저유소 폭발사고와 닮은 꼴, 고양사고는 재판 중 

이번 군포 물류센터 화재도 상황이 비슷하다. CCTV에 A씨가 담배를 피운 뒤 꽁초를 버리는 모습과 쓰레기더미에서 불길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담겼지만 명확히 인과관계를 소명하기에는 법적 사각지대가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고양 저유소 폭발사고로 구속됐던 B씨의 경우 뒤늦게 지난해 6월 검찰에 의해 불구속기소가 됐다.  검찰은 중실화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어렵더라도 주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이 부분에 집중했다. 

의정부지청 고양지검은 당시 보도자료에서 “건조한 가을 날씨에 산림지역에서 풍등에 불을 붙여 날리지 말아야 한다”며 “그런데도 풍등을 날려 풍등이 불이 붙을 수 있는 장소로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불씨가 꺼진 것을 직접 확인하든지 안전관리자에게 상황을 알려 119신고를 하게 해야 하는 등의 주의 의무를 이행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대신 B씨와 함께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장과 안전부장을 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휘발유 저유탱크에 설치된 인화방지망이 손상되거나 고정되지 않은 것을 교체·보수하지 않고, 제초작업을 한 건초더미를 저유탱크 주변에 방치함으로써 안전관리규정 준수의무를 지키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지금도 B씨에 대한 재판은 진행 중이다. B씨는 출국이 금지된 채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21일 오전10시 10분쯤 발생한 경기도 군포시 부곡동 군포복합물류터미털 화재 현장 모습.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제공
◆ 220억원 vs 110억원…피해 보상은 보험사 떠안을 듯

220억원이 넘는 군포 물류센터 화재의 피해보상은 고스란히 보험사가 떠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불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연면적 3만8000여㎡인 건물의 절반 이상이 소실되며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강풍을 타고 화재가 쉽게 확산한 데다, 5층 건물에 쌓인 가구와 의류가 스프링클러에서 나온 물에 젖었기 때문이다. 불이 난 군포터미널 건물은 국내 대형 보험사의 보험에 가입된 상태여서 피해는 보험사가 대부분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소방 관계자는 “이번 화재는 스리랑카인 근로자 B씨가 날린 풍등으로 발화된 2018년 10월의 고양시 저유소 폭발사고와 닮은꼴”이라며 “경찰은 당시 B씨를 중실화 혐의로 긴급체포했지만 피해업체들이 배상을 받아내진 못했다”고 말했다.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에서도 저유탱크 4기와 휘발유 등 110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지만 결국 구상권을 청구하진 못했다. 관련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유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외국인 근로자의 재정 여건상 피해 당사자가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나 구상권 청구 등으로 손해를 배상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사고도 대한송유관공사가 화재 등 각종 사고에 대비한 보험에 가입된 상태여서 보험사가 대부분 보상을 떠안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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