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겹의 모순 속에, 나얼은 살아갑니다

노형석 2020. 4. 2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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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얼 개인전 '염세주의적 낙관론자']
신앙과 창작 영감의 교차
콜라주와 설치작품 전시
관람은 매일 예약 40명만
성경 말씀을 투명한 필름 막에 적어 펼친 설치 작품 <두루마리> 앞에서 이야기하는 유나얼 작가.

‘후~후우~후~후우~’

들숨과 날숨이 오가는 소리가 울린다. 장막을 친 전시실에서 가수 유나얼(나얼)이 들려준 것은 미성의 노래가 아닌 묵직한 숨결의 신호들이다.

그의 숨결을 무대로 펼친 설치 작품 <두 개의 질문과 두 개의 나무>는 신을 묵상하는 세계다. 종이 위에 찍힌 신의 말씀인 성경을 쌓아 단을 만들고, 그 위에 올린 작은 모니터를 통해 물속을 헤엄쳐가는 영상을 흘린다. 영상과 어울려 허덕이는 나얼의 호흡 소리가 존재의 한계를 드러낸다. 모니터 양옆으론 옷걸이 두 개가 보인다. 인간의 원죄를 담은 선악과나무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보속을 상징하는 생명의 나무를 상징하는 오브제들. 작가는 말한다. “처음 스노클링을 할 때 물속에서 허덕이는 내 숨소리가 들렸어요. 숨을 못 쉬면 죽는다, 나는 유한한 창조물이다, 나에게 숨을 주신 창조주가 계신다는 것을 단박에 느꼈어요.”

유나얼 개인전의 대표작 중 하나인 <두 개의 질문들과 두 개의 나무들>(2020). 작가의 증폭된 호흡 소리가 울려 나오는 티브이 모니터의 수중유영 영상을 중심으로 인간의 원죄와 그리스도의 속죄를 표상하는 두 개의 옷걸이 오브제가 배치되면서 종교적 영성의 메시지를 던진다.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멤버, 싱어송라이터이며 미술작가로도 활동해온 나얼이 기독교 신앙과 미술이 어우러진 전시 마당을 차렸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예술촌에 있는 대안공간 스페이스 엑스엑스(xx)에서 ‘염세주의적 낙관론자(Pessimistic Optimists)’라는 제목으로 차린 10번째 개인전이다. 지난 15일 오후 이곳에서 확신에 찬 유나얼과 그의 신작을 만났다. 전시 제목은 복음에 순종하며 영생을 믿지만, 세상의 죄악과 부조리에 맞서 고투하는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전시된 작품들은 나얼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신의 영성에, 혹은 창작의 열정에 휩싸여 깨알같이 적거나 정성껏 그리고 색칠한 드로잉과 글자들, 사진들의 콜라주다. 내용으로 보자면 절대자에 대한 귀의를 뜻하는 성경의 구절들, 유년 시절부터 심취한 1970~80년대 미국 흑인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사진, 아이와 청년의 이미지가 들어간 그림·글자의 모음이다.

유나얼의 드로잉 그림 <순수의 나날들 3>(2019). 유년 시절부터 심취했던 흑인문화 이미지의 단면들을 옮겼다.

전시장 중간, 두 개의 기둥 사이에 투명 비닐 막을 걸고 성경 구절을 채워 넣은 <두루마리>(The Roll)는 가장 공을 들인 작품이다. 작가는 “전시장 안 두 개의 기둥이 마음에 들어 여기서 전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연말 우연히 전시를 보러 들렀던 이곳에서 최적의 공간을 찜했고, 최두수 대표를 찾아가 먼저 전시를 제안했다고 한다. 두 개의 기둥은 전시 서문을 쓴 이문정 평론가의 표현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작가로서 두 겹의 모순 속에 살아가는 유나얼이 자신의 존재성을 전면에 드러낸 작품’이다.

절대자의 신앙심과 아티스트의 자유로운 영감 사이에서 숙성된 그의 드로잉과 설치 작품은 개신교의 전도 미술이나 신앙 간증의 표지와는 전혀 다르다. 흑인 아이들의 사진, 성경 말씀을 적은 글자들, 무명의 흑인들을 옮긴 드로잉 이미지들은 미술사적인 맥락까지 포괄한다. <블루 보이>(2020)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3)의 주인공을 손수 그린 드로잉과 경기도 송탄 미군 부대에서 흑인 병사의 초상을 그려주는 아마추어 작가의 작업 공방 ‘블루 보이 아트 갤러리’에 걸린 사진들이 콜라주돼 있다. 영화 속 장고의 파란 옷은 18세기 영국의 유명한 풍경화가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명화 <파란 옷을 입은 소년>(1770)을 명백히 흉내 내 연출한 것이다. ‘블루 보이’와 ‘블루 보이 아트 갤러리’는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시공간과 이미지지만, 작가는 타란티노의 영화와 흑인문화를 매개로 이미지적 연관성의 고리를 집어낸다.

전시장 한구석에서 흑인 솔(soul) 음악을 계속 틀어주는 사운드박스와 그 옆의 그림자 설치 작품. 초창기 서구 음반사들의 브랜드 이미지로 유행했던 축음기 듣는 개 ‘니퍼’의 상을 재현한 것이다.

“미술의 시작은 종교 예술이었어요. 신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예술의 본질을 알고 접근해갈 수 있죠. 제 작품에 성경 메시지를 넣는 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30일까지(일·월 휴관). 관람 인원은 매일 40명으로 제한되며, 관람 하루 전 전자우편(space-xx@space-xx.com)으로 예약해야 한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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