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은 천심"..'여행(女幸)시대', 1300만 여성 운전자를 잡아라

최기성 2020. 4. 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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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볼보차, 기아차, 쌍용차, 매경DB
[세상만車-141] 세계 최초의 자동차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1886년 등장한 이후 자동차는 100여 년 넘게 '남성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여성 운전자에게 "애나 돌보지 차는 왜 끌고 나왔냐", "운전 민폐 끼치지 말고 빨래나 해라" 등 험한 말을 일삼으며 무시하는 운전자들도 많았다. 2010년대 들어서도 운전에 서툰 사람을 '김여사'라고 불렀다. 운전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어도 김여사로 간주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1가구 2차량 시대, 솔로 이코노미(1인 가구 경제)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성 운전자들이 늘어나자 상황이 변했다.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 국내에서도 일부 남성 우월주의자를 제외하고는 자동차를 남성 전유물이라고 여기기 않는다.

실제로 국내 운전면허 소지자 10명 중 4명은 여성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여성 운전면허 소지자는 1976년 1만4587명으로 전체의 1.8%에 불과했지만 2009년 10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운전면허 소지자 3264만9584명 중 여성이 1371만2725명, 남성이 1893만6859명이다.

여성 1인 가구도 증가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 가구는 600만가구에 달한다. 이 중 여성 가구는 291만4000가구로 20년 전보다 128.7% 증가했다.

1가구 2차량 시대와 함께 여성 운전면허 소지자와 여성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자동차는 남성의 전유물에서 남녀 모두의 공유물로 전환됐다. 자동차 구매 결정권도 남성에서 여성에게 넘어가고 있다.

사진=한국지엠
자동차업계가 이 같은 시대 변화를 간과할 리 없었다. 자동차회사들은 여성 운전자들이 급증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여심(女心)은 천심(天心)'이라며 여성에 초점을 맞춘 기술과 사양을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여성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차를 탈 수 있고, 차를 이동수단이 아니라 여성 전용 생활공간으로 활용하도록 도와주는 기술과 사양이다.

'효리차' 신드롬을 일으켰던 닛산 큐브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즐기는 여성들을 위해 운전석 스티어링휠 왼쪽에 컵홀더를 따로 배치했다. 쌍용차 코란도C는 쇼핑백 후크, 뉴체어맨W는 뒷좌석 화장거울을 적용했다.

기아차 레이도 핸드백, 파우치 등 소지품이 많은 여성 운전자를 위해 동승석 시트 하단 수납 트레이, 대용량 루프 콘솔 등 다양한 수납공간을 갖췄다. 운전석 뒤쪽에는 신발이나 소품을 넣을 수 있는 플로어언더트레이도 구비했다.

쉐보레 스파크도 쇼핑 훅, 코트 훅, 하이힐 보관용 시트 언더 트레이 등을 곳곳에 마련했다. 르노삼성 QM3도 화장품이나 작은 가방 등을 보관할 수 있는 매직 드로어 수납공간과 팝업트레이를 적용했다.

오감을 자극해 여심을 유혹하기도 했다. 르노삼성은 차 내부에 향기를 은은하게 퍼지게 해주는 웰빙 옵션 사양인 퍼퓸 디퓨저를 SM5와 SM7에 장착했다. 시트로엥 DS3도 향수 원액을 넣어 사용할 수 있는 퍼퓸 디퓨저를 채택했다. 렉서스는 자외선에 민감한 여성을 위해 피부를 보호해주는 선셰이드 기능을 GS 등에 적용했다.

'엄마 마음'을 알아주는 편의장치도 등장했다. 볼보 XC60은 알레르기 유발·유해 물질 테스트 등을 거친 천연 쇠가죽을 사용했다. 금속 제품들도 알레르기 테스트와 니켈 유출 검사를 거쳤다. 아울러 뒷좌석에 앉는 아이가 높이를 조절해 안전벨트를 안전하게 착용할 수 있게 해주는 어린이용 2단 부스터 쿠션도 갖췄다.

레이는 슬라이딩 도어를 통해 유모차나 세발자전거를 그대로 실을 수 있었다. 피아트 프리몬트도 리프팅 쿠션 형태의 어린이용 부스터 시트를 적용했다.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도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2·3열에 탄 아이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룸 미러 위에 작은 미러를 달았다.

사진=현대차, 쌍용차, 쉐보레, 르노삼성
2010년대 중반까지 여성 전용 편의사양과 여성 전용 운전·정비 교실 운영 등으로 여심 잡기에 나섰던 자동차회사들은 최근에는 여성만을 위한 편의사양을 선보이기보다는 디자인·컬러·안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층 진화한 기술력 덕분이다.

작고 귀여운 차는 여성용, 점잖거나 역동적인 차는 남성용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무뎌지고 남성·여성 구별이 없는 유니섹스(Unisex) 트렌드가 확산한 것도 영항을 주고 있다.

또 남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차를 만들었던 과거에는 여성 소비자도 잡기 위해 돈이 적게 드는 여성 전용 편의사양을 달았지만 이제는 남녀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필요한 스마트 안전·편의사양을 다양하게 구비하는 게 낫다는 자동차 회사들의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안전·안심·안락'에 초점을 맞춘 안전·편의사양은 남성보다 여성이, 아빠보다 엄마가 더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형 SUV인 쌍용차 티볼리는 여심을 성공적으로 공략한 대표 차종으로 손꼽힌다. 국토교통부 및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집계 자료에 따르면 티볼리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으로 여성 운전자들에게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모델 1위(등록 기준) 자리를 차지했다.

여성 구매자 비율은 2017년 58%, 2018년 66.5%였다. 지난해에는 67.1%로 증가했다. 티볼리는 도심형 SUV답게 도회적이고 다이내믹한 디자인으로 여성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차선이탈 경보, 차선유지보조, 앞차 출발 알림, 부주의 운전 경보, 후측방 접근 및 충돌방지 보조 등 '급'을 넘는 안전사양으로 '안전·안심'을 중시하는 여성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운전하기 쉬운 작은 크기와 분홍색 외장으로 여성들에게 인기를 끈 '여심 폭격기 1호차' 마티즈의 뒤를 이은 쉐보레 스파크도 여성 구매자 비율이 44.4%에 달한다. 34세 이하에서는 여성 구매자 비율이 50% 이상이다.

스파크는 바디 컬러에 맞춘 엑센트 컬러 루프 등으로 2000여 가지에 달하는 익스테리어·인테리어 디자인 조합을 갖췄다. 시속 60㎞ 이하 도심 정체 구간 주행이나 주차 때 스티어링휠을 적은 힘으로도 조작할 수 있는 시티 모드는 여성 운전자 특화 기술로 손꼽힌다.

사진=DS오토모빌, 현대차, 르노삼성
현대차 소형 SUV인 베뉴도 '여심 폭격기'로 떠올랐다. 베뉴는 경차나 소형·준중형 세단 대신 SUV를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타깃으로 삼았다.

베뉴는 엔트리카(생애 첫차)·세컨드카(두 번째 자동차)를 구입하려는 밀레니얼 세대를 사로잡기 위해 10종의 외장 컬러와 3종의 루프 컬러를 조합한 11종의 투톤 루프 컬러로 총 21가지에 달하는 색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주요 컬러는 인텐스 블루, 라바 오렌지, 파이어리 레드, 크리미 그레이, 타이푼 실버 등이다.

또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1·2인 가구를 겨냥해 반려동물 전용 패키지도 내놨다. 이 패키지는 아이소픽스(ISOFIX, 유아용 시트 고정장치)에 고정시킬 수 있는 반려동물 전용 카 시트, 반려동물 하네스(가슴줄), 하네스와 연결할 수 있는 ISOFIX 안전벨트 또는 안전벨트 테더, 반려동물 승·하차 때 오염을 방지해 주는 동승석·2열시트·트렁크 커버, 반려동물 탑승을 알려주는 외장 데칼 등으로 구성됐다. 아울러 세계 최초로 적외선 무릎 워머도 적용했다. 이 전략은 여성 구매자들에게 통했다. 베뉴 구매자 중 여성 비중은 52%에 달한다.

르노삼성은 여성 소비자가 많아지는 추세에 맞춰 여성 인재들을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구 르노삼성 중앙연구소) 곳곳에 배치했다. 1000여 명에 달하는 연구인력 중 11% 정도가 여성이다. 르노삼성 전체 임직원 중 5% 정도가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성 연구인력 비율이 2배가량 많은 셈이다. 이들은 여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여행(女幸) 기술·사양을 르노삼성차에 적용한다.

여행 기술을 적극 채택한 차종이 QM3다. QM3는 프렌치 시크 스타일 디자인과 아타카마 오렌지·쇼콜라 브라운·에투알 화이트 등 패셔너블한 10가지 외장 컬러, 오렌지·화이트·블랙 루프 등으로 구성된 컬러 시스템으로 여심을 공략했다.

또 화장품과 작은 가방 등을 보관할 수 있는 매직 드로어 수납공간과 팝업 트레이, 뒷좌석 카시트에 앉은 아이와 운전석에 앉은 엄마와의 거리를 좁혀주는 시트 시스템, 소형 SUV이지만 유모차를 충분히 실을 수 있는 트렁크 공간도 여심을 사로잡는 데 기여했다. QM3의 경우 구매자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수입차 브랜드 중에서는 프랑스 출신의 DS 3 크로스백이 여심 폭격기를 대표한다. DS 3 크로스백은 에어백 8개와 능동형 사각지대 경고 시스템, 차선 이탈 방지 보조, 교통 표지판 인식·표시 등 첨단 안전사양도 기본 적용했다. 그 결과, 유로앤캡의 신차 안전도 평가 '성인 및 어린이 탑승자 보호 부문'에서 최고 등급에 해당하는 별 다섯 개를 받았다.

아방가르드한 디자인도 여심에 호소한다. 전면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한 육각형 라디에이터 그릴과 게의 집게다리를 닮은 LED 헤드램프, 상어 지느러미를 닮은 스타일링, 진주목걸이에서 영감을 받은 '1점 쇄선' 형태의 주간주행등, 다이아몬드 모양의 센터페시아 등은 예사롭지 않다. 시동을 켜면 헤드램프 속 웰컴 라이트가 분홍색으로 빛난다.

자동차업계는 구매력이 높아지고 구매결정권도 갖추게 된 여성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앞으로도 다채로운 컬러를 선보이고 '안전·안심·안락'에 초점을 맞춘 안전·편의사양도 적극 채택할 계획이다.

[최기성 디지털뉴스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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