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의 지식카페>나무 그대로 살린 '도넛 지붕'.. 유치원 전체가 아이들 놀이도구

기자 2020. 4. 14. 10: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넛 형태의 지붕 위에서 아이들이 자유로이 달리는 후지 유치원은 건물 전체가 놀이 도구다. ⓒKatsuhisa Kida
유치원의 작은 사물들은 자연의 도리를 가르친다. ⓒKatsuhisa Kida

■ 건축과 일상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풍경 - (30) 日 다치카와市 ‘후지유치원’

OECD·UNESCO가 뽑은 세계의 유치원 ~ 대학 시설 중 가장 좋은 학교… 놀면서 체험하고 몸으로 배워

원장의 교육 철학·아트디렉터의 발상 전환·건축가의 열정… ‘아이들의 큰 기쁨’이라는 교육의 본질에 일치

일본 도쿄(東京)도 다치카와(立川)시에 있는 ‘후지 유치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네스코가 뽑은 세계에 있는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는 모든 교육시설 중 가장 좋은 학교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600명에 가까운 어린이가 다니고 있는 이 몬테소리 유치원은 규모로는 일본에서 세 번째지만 단일한 건물로는 제일 크다. 도넛 형태의 지붕 위에서 아이들이 자유로이 달리게 하며 건물 전체를 놀이 도구로 만든 이 유치원은 우리나라에도 제법 많이 알려져 있다.

유치원 원장이라면 모두 아이들이 교육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러나 건축주인 가토 세키이치(加藤積一) 원장은 조금 달랐다. 몇 년 전 그를 만났을 때 원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원장실이 왜 필요하냐고, 따로 떨어진 선생님 방도 없다며 중정에서 노는 모든 아이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창 가까이에 둔 자신의 자리가 특등석이라며 자랑한 것이 기억난다. 그는 아이들은 본래 보고 만지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라나지만, 아무리 말이나 그림책으로 가을을 가르쳐도, 가을을 자기 몸으로 느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체험은 가르쳐서 알게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 유치원 건물은 벽을 없애고 칸막이도 자유롭게 둘 수 있는 하나의 커다란 공간이 돼, 한 지붕 아래의 마을이 됐으면 좋겠다는 원장의 구상에서 시작했다. 그는 유치원 건물도 풀도 나무도 모두 아이들이 성장하기 위한 도구라고 여겼다. 이렇게 보면 그는 건축가보다 더 파격적인 생각으로 교육의 본질을 공간으로 그리는 또 다른 의미의 ‘건축가’였다. 이렇게 이 유치원의 공간은 교육의 본질에 대한 원장의 생각에서 싹텄고, 이것은 건축가의 지혜로 구체화됐다.

가토 원장은 몇몇 건축가를 소개받아 새 유치원 설계를 부탁했다. 그러나 모두 아이들이 어떻게 뛰노는가에 대한 안목 없이 네모난 상자를 쌓은 건물만 제안해 오길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지어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다. 이때 소개받은 사람이 아트디렉터 사토 가시와(佐藤可士和)였다. 그렇지만 건축가가 아닌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처음에는 막막했다. 이때 사토 씨는 유치원 건물을 하나의 큰 놀이 도구라고 생각하고 ‘상황’을 설계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이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후지 유치원 설계의 핵심은 이미 이 생각에 집약돼 있었다. 그러려면 ‘지붕의 집’이라는 주택을 설계한 건축가가 좋을 것 같다며 사토 씨는 데즈카 다카하루(手塚貴晴)와 유이(手塚由比) 부부 건축가를 원장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원장은 건축가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 집에는요, 땅과 나무밖에 없는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라는 말부터 시작했다. 이에 “건물의 지붕을 놀이터로 만들면 좋겠다”며 “멋진 것은 못 만드는데, 저희가 맡아도 좋겠습니까?” 하는 건축가의 이야기에 크게 동감해 원장은 이런 분이라면 모든 것을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이 세 사람은 같은 생각을 갖게 됐다.

원장은 땅과 나무밖에 없다고 했지만, 바로 그 땅과 나무에 새로운 설계의 단서가 있었다. 2007년 다시 짓기 이전에 이 자리에는 1971년에 개원해 노후한 옛 유치원이 있었다. 이 건물은 복도를 모두 바깥에 두고 있었다. 이 집을 찾아간 날, 건축가는 원장이라면 보통 원장실에서 나오지 않는데 모든 아이가 자기 반이라며 하루 종일 바깥 복도를 오가면서 ‘아무개야, 잘 있었어?’하고 말을 걸고 있는 원장의 모습을 보았다. 이 분위기는 건축가에게 새로 지어질 집의 아주 중요한 개념이 됐다. 이때 오랜 유치원 건물에는 비가 많이 새고 있었다. 원장은 이를 보고도 우리 유치원 아이들은 새는 빗물을 아주 능숙하게 받는다며 자랑했다. 바깥 복도, 모든 학생을 보살피는 원장의 모습, 새는 빗물도 교육의 한 가지로 바꾸어 생각하는 태도는 모두 새 유치원 건물을 설계하는 데 소중한 바탕이 됐다.

옛 유치원 땅에는 아이들을 오랫동안 굽어보며 그늘을 주던 큰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었다. 개원 당시부터 자라났으니 대략 50년이 넘은 나무인데, 가장 큰 것은 둘레가 2.7m 정도고 높이는 25∼30m가 됐다. 한편 넓은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것을 본 건축가는 느티나무를 교실 안에 남기고 지붕에 그늘을 주면서, 지붕에서 빙빙 뛰어다니며 놀 수 있는 도넛 형태의 유치원을 짓자는 발상을 얻었다. 옥상을 한 번 돌면 200m가 조금 안 되는데, 잘 달리는 아이는 아침에 30바퀴(6㎞)나 돌고 보통 아이는 20바퀴(4㎞) 정도를 돈다고 한다. 한 연구자가 이렇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조사했더니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보다 3배나 많이 뛴다고 한다. 이를 보고 원장은 이 유치원에서 올림픽 선수가 나올 거라며 좋아했다.

여름에는 지붕 위가 덥고 겨울에는 추운데 지붕 위를 사용하는 건 무리가 아니냐는 비평이 있었다. 그랬더니 원장은 “당연히 여름에는 지붕 위가 덥고 겨울에 추우니까 여름에는 아침 일찍이 올라가고, 겨울에는 지붕이 따뜻해졌을 때 올라가면 된다”고 말했다. 건축주는 건축가의 발상을 제대로 해석해 주었다. 한번은 나무에 올라가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옥상 난간을 두겠다는 건축가의 말에, 원장은 난간 대신에 혹시 망을 달아 떨어지는 아이들을 받아주면 어떻겠냐고 해서 느티나무 주위에 망을 쳤다. 그랬더니 일부러 떨어지려고 그 망에 몸을 집어넣는 아이들과 서로 떨어뜨리려는 아이들이, 많을 때는 한 그루에 40명 정도가 모인다고 한다. 아이들을 지나치게 보호하지 않는다는 교육 방침이 이런 장치와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문제는 창문이다. 타원 평면이어서 넓고 미끈한 곡선을 그리는 위와 아래 인방에, 직선인 문을 열고 닫으려면 문에 달린 쇠바퀴인 호차(戶車)가 그 곡선 위에서 자유로이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6장짜리 여닫이문의 간격에서 바람이 새어 들어오지 않게 해야 하므로 고무로 문틈을 메워 등압 공간이 되게 했다. 게다가 철골 구조 지붕에 매일 600명이 달리고 행사가 있을 때는 4000명이 올라가기도 하며, 큰 지진에 의한 변동에 대비하려면, 새시 위와 문 사이를 2㎝ 정도 띄워야 했다.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디테일이 연속하는 공간을 온전하게 해결해 줄 수 있었다.

그래도 문은 항상 긴밀하게 닫히지 못한다. 이에 원장의 해석이 흥미롭다. 아이들은 바람이 들어와 춥다고 느끼면 알아서 문을 닫게 돼 있기 때문에, 문틈으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도 기밀성이 높은 아파트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큰 가르침이 된다는 것이었다. 건물 가운데에 복도를 두면 안과 밖을 구분하고 에어컨을 틀게 되지만, 이 유치원은 1년에 3분의 2는 마당을 향해 문을 다 열어젖히고 있다. 여름 방학을 빼면 1년 내내 에어컨을 틀지 않고 지낸다는 말이다.

마당을 향해 벽을 없애면 건물 전체는 연속하는 하나의 커다란 공간이 된다. 그렇게 해야 아이들이 밖에서 뛰놀다가도 안에 그대로 들어올 수 있고, 선생님들도 모든 학생을 볼 수 있다. 또한 교실에는 벽 대신에 30㎝ 모듈의 상자 모양의 나무 가구를 조립해서 칸막이를 만들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이것을 자유로이 구성하므로 교실 모양이 모두 다르다. 모두 함께하지만 모두 같지는 않아야 한다는 교육 철학이 내외부 공간에 반영돼 있다.

방을 나누는 칸막이 없이 한 공간으로 터져 있으니 옆 교실의 소리가 들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선생님들도 처음에는 이런 소음에 무척 당황했으나, 옆 교실에서 들리는 잡음이 오히려 아이들의 집중력을 키운다고 여겨 여전히 벽 없이 공부하고 있다. 조용한 집에서 공부가 안된다고 소음이 있는 도서관을 찾아가는 것을 참조해 보면 이런 생각이 맞는다.

건물 안에는 벽이 없어서 싱크대 같은 것을 붙일 데가 없다. 싱크대는 아예 건물 밖에 뒀다. 물을 그냥 흘려보내거나 필요 이상으로 수도꼭지를 틀면 밑에 있는 자갈에 물이 튀어 발이 젖는다. 이렇게 발이 젖어봐야 수도꼭지를 잠그고 물을 아껴 쓸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손이나 그릇을 씻을 때도 옥외의 수전을 자유자재로 굽혀서 최대 8명의 아이가 서로 양보하면서 얼굴을 맞대고 재갈거리며 사용하게 했다.

유치원의 둥근 마당 바닥은 일부러 울퉁불퉁하게 놔뒀다. 한번 넘어진 애들은 다시는 넘어지지 않으려 한다는 원장의 생각 때문이었다. 지붕에서 내려오는 비는 바닥에 바짝 붙은 긴 홈통을 통해 흘려버리는 게 예사지만, 여기에서는 빗물이 어떤 건지 알라고 지붕에 붙은 아주 짧은 홈통에서 빗물이 그대로 땅에 떨어지게 했다. 또한 조명도 갓 없이 전구만 200개를 사용했다. 스위치가 벽에 없고 여기저기 매달려 있는 스위치 끈을 잡아당기면 전등이 3개씩 켜지게 했다. 뭐든지 자동으로 움직이는 데 익숙한 오늘날의 아이들에게, 불편함으로써 궁리하게 하고 그렇게 궁리함으로써 자란다는 ‘오래된 미래’에 대한 그의 신념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은 노는 것이 일이고 일상이고 인생이다. 아이들은 놀이와 생활을 구별하지 않고 진지하게 논다. 그런데 유치원마다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놀라고 틀을 정해 준 놀이 도구가 반드시 있다. 그러나 후지 유치원에서는 이런 놀이 도구를 하나도 두지 않았다. 유치원에 있는 어떤 작은 장소에서나 악기를 켜고 장난을 칠 수 있으며 울퉁불퉁한 마당도, 지붕 위도 교실이 된다고 여겼다.

후지 유치원은 처음의 제안처럼 그대로 남긴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지붕을 뚫고 뻗어 있다. 나뭇가지를 피하며 건물을 만드는 것은 그런대로 간단하다. 그러나 나무를 안에 남기고 건물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어렵다. 나무뿌리는 가지가 펼쳐진 것보다 더 넓게 퍼져 있다. 그래서 이 유치원에서는 뿌리가 다치게 않게 기초를 만들고 지중보를 지그재그로 이은 다음, 나무뿌리 위에 플랫 슬래브를 쳤다. 그 결과 교실 안에는 지름 150㎜인 기둥이 모두 다른 간격으로 배열돼 있다. 바깥 형태와는 달리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이렇게 해결한 엔지니어의 마음이나, 고분을 발굴하듯이 땅을 다룬 시공자의 정성에 감탄하게 된다. 원장도, 건축가도, 구조기술사도, 시공자도, 아이들의 ‘큰 기쁨’을 위해 유치원 교육의 본질 앞에서 마음이 일치해 있다.

사람에게 어린 시절은 불과 10년 정도다. 그래서 그 안에서 배우는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고, 어디까지나 주변 환경과 사람을 잇는 도구가 되는 건물이 좋은 유치원이다. 건축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건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소중하게 여길수록 좋은 유치원 건물이 될 수 있다.

건축은 ‘큰 기쁨’에서 시작한다. 건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에 건축가 데즈카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 “건물을 인도할 때 아이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빙 둘러싸 주었는데 감동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자란 아이들이 일생토록 이 유치원을 잊지 않을 터인데, 이것야말로 건축가의 행복입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지붕 위를 빙빙 뛰어 돌거나 나무에 올라간 것을 아마도 평생토록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후지 유치원은 교육의 본질이 주는 ‘큰 기쁨’을 이렇게 가르쳐 준다. 이 사회가 우리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 용어설명

오래된 미래:‘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는 스웨덴 출신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Hodge)가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에서 삶은 불편하지만 그들은 그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음을 기술하며 붙인 이름이다. 1992년 발간된 이 책은 16년 동안 라다크의 변화를 기록하면서, 서구세계와는 너무나도 다른 가치로 살아가는 라다크 마을 사람들을 통해 사회와 지구 전체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미래’는 앞날을 뜻하고 ‘오래된’은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말인데,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현실에 대한 미래의 해결은 이미 과거에 있다는 뜻이다.

[문화닷컴 바로가기|문화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모바일 웹]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