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기본합의서 이끈 정원식 前총리 별세
전교조와 악연 '밀가루세례'
황해도 출신..3차례 평양찾아
김일성 주석과 면담하기도
적십자사 총재로도 왕성한 활동
12일 유족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신부전증을 앓아 3개월여 전부터 투병하던 정 전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께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황해도 출신인 정 전 총리는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1962년부터 같은 과 조교수로 교편을 잡았다. 그는 교육학을 전공한 대학교수로 출발해 교육행정 수장을 거쳐 행정부 2인자까지 지냈다.
국무총리로서 그는 남북기본합의서에 직접 서명한 협상 주역으로 활약했다. 총리 재직 중 1991년부터 1992년까지 2년에 걸쳐 3차례 평양을 다녀왔다. 남북고위급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로 북한 평양시를 방문하여 북한 국가 주석 김일성과 면담하기도 했다. 이 회담 결과가 바로 남북 관계에 모체가 된 남북기본합의서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이 상대방 실체를 처음으로 인정하고 점진적·단계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많은 국민은 그를 '밀가루 범벅' 수난으로 기억한다. 정 전 총리는 문교부 장관 재직 중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강경하게 대응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전교조 교사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로 전락시켜 교권을 실추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총리는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들 심정도 잘 이해한다"면서도 해직 교사들에 대한 복직 요청을 거부하고 관련자들을 강력 처벌했다.
그 여파로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됐을 때 한국외국어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던 중 대학생들에게 계란과 밀가루는 물론 오물·짱돌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 사건이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다. 사건을 빌미로 학원 민주화 투쟁은 여론에 외면당하며 동력을 잃었고 그는 국회 동의를 받아 정식 총리로 취임하게 됐다.
1995년 보수 진영을 대표해 출마한 민선 1기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당 후보로 나온 조순 전 경제부총리에게 큰 표 차이로 지며 짧은 정치 역정을 마감했다. 이후 1997년 대한적십자사 20대 총재로 취임해 이산가족 상봉과 북한 구호 활동에 적극 나서 2000년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을 성사시켰다. 대한적십자사 최초로 1998년 해외의료봉사단을 미얀마에 파견하고 1999년 국제구호요원을 유고 분쟁 지역에 파견하기도 했다. 또 혈액백 2만개를 인도네시아 적십자사에 전달하는 등 지원사업을 벌였다. 이후엔 한국카운슬러협회 회장, 한국교육학회 회장, 파라다이스복지재단 이사장, 천원 오천석기념회 회장 등을 지내며 최근까지도 활발한 사회 활동을 이어왔다.
고인이 가장 최근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18년 5월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역대 총리들을 삼청동 총리관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을 때였다. 고인은 2018년 10월에는 이인호 전 주러시아 대사,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같은 보수 원로들과 함께 '문재인 퇴진과 국가 수호를 위한 320인 지식인 선언'에 동참하는 등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 태도를 보여온 보수 원로였다. 그는 신문에 쓴 칼럼을 묶어 펴낸 책 '인간과 교육'이 1980년대에 100만권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김연주 기자 / 김금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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