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족'을 위한 언택트 랜선 컬처..코로나는 싫지만 문화 생활은 하고 싶어

박찬은 2020. 4. 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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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분야는 문화와 여행 분야일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위기’라는 세계 미술계는 많은 곳들이 휴관에 들어갔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온라인으로 공연 영상을 무료 스트리밍하고 있다. 국립국악원은 이제 유튜브로 고품질의 공연을 4K로 보여주고, 아트페어는 온라인 뷰잉룸으로 응찰에 나섰다. 학예사 온라인 투어를 진행한 국립현대미술관, 아예 ‘언택트 뮤지엄(Untact Museum)’을 내세우며 360도 VR 전시를 선보인 사비나미술관 등 ‘언택트 관람 문화’도 생겨났다. 재난 시대 심리적 방어막이 된 예술, 방콕족을 위한 언택트 컬처를 소개한다.

▶아트 바젤 홍콩의 온라인 전시 서버 다운

(위)아이폰11로 연속 촬영한 에르미타주 미술관 ©유튜브 Apple 캡처 (아래)홍대 ‘적정거리유지’ 갤러리(사진 ‘적정거리유지’ 홈페이지 캡처)
지난 3월 초, 애플은 아이폰11 프로 맥스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배터리 교체 없이 5시간 19분 28초 동안 연속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미술관의 45개 홀 전체를 4K 화질로 감상하며 애플의 새 아이폰 배터리 수명이 얼마나 긴지를 ‘예술적으로’ 체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바일이나 PC로 공연이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문화 공간들은 역설적으로 예술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재각인시킨다.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을 검색 창에 입력하면 전 세계 4곳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 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서울, 뉴욕, 런던, 파리 4곳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모은 웹 전시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홈페이지 캡처)
서울에 거주하는 김홍식, 뉴욕에 거주하는 박유아, 런던에 거주하는 신미경, 파리에 거주하는 윤애영 4명의 작가를 초대해 웹 전시를 기획한 조은정 씨는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을 ‘미술관에 가고 싶은 마음들이 만든 전시’라고 설명한다. “미술관의 휴관은 상대적으로 전시의 풍요로움을, 확산하는 감염증 소식 속에서 죽음 앞에서 예술이란,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고 전시 홈페이지 소개글에서 밝힌 그녀의 말대로 전시는 코로나19의 시간에 조성된 전시장이다. 이런 전시야말로, 그들이야말로 코로나19 시대 미술관의 평화로운 전사들이 아닐까.

홍대입구역 근처의 윈도우·온라인 듀얼 갤러리 ‘적정거리유지’는 2층에 설치된 작품을 건물 밖에서 볼 수 있다. 관람객들은 2m 이상 떨어진 노란색 발자국 위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유리창에 있는 QR코드로 작품 정보를 확인한다(4월11일까지). 50년 역사의 스위스 아트바젤은 6월 행사를 9월로 미뤘고, 아시아 최대의 미술 장터인 아트 바젤 홍콩은 3월 개최 예정이었던 행사를 취소하는 대신, 온라인 뷰잉룸을 마련, 홈페이지와 앱으로 2000여 작품을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관객들은 홈페이지에 접속하거나 모바일 앱을 통해 판매를 문의했다. 국내에서는 국제갤러리가 이우환, 박서보 등 한국 작가들과 코로나 19 사태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 회고전이 잠정 중단된 도날드 저드의 작품 등을 온라인 뷰잉룸으로 선보였다. 첫날 접속자가 몰려 서버가 다운된 아트바젤 홍콩의 온라인 방문객은 25만 명이었다(지난해 행사장을 찾은 방문객이 약 8만 명이었다). 주최 측은 내년부터 아트페어와 온라인 뷰잉룸을 동시에 오픈하겠다고 밝혔다.

▶유튜브 학예사 전시투어 진행한 국립현대미술관

코로나19로 인해 4월5일까지 휴관한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을 유튜브 채널 ‘MMCAKorea’을 통해 지난 3월30일(월) 오후 4시 먼저 공개했다. 개관 이래 최초의 서예 단독 기획전인데다, 신규 개막전을 온라인으로 선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유튜브로 미리 녹화한 90분 분량의 학예사 전시투어도 개막 첫날 함께 선공개됐다. ‘서예를 그리다 그림을 쓰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 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들’, ‘다시, 서예: 현대서예의 실험과 파격’, ‘디자인을 입다 일상을 품다’ 등 4개의 주제가 바탕. 해방 후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 12인의 작품을 비롯하여 2000년대 전후 나타난 현대서예와 디자인서예 등 서예, 전각, 회화, 조각, 도자, 미디어 아트, 인쇄매체 등 작품 300여 점, 자료 70여 점을 선보였다.
올해 신규 개막전 《미술관에 書_한국 근현대 서예전》을 온라인으로 선공개한 국립현대미술관(MMCA)
학예사 전시투어 예고영상들. MMCA 홈페이지에서 소장품 고화질 감상, 출판물 검색 등이 모두 가능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은 “코로나19로 미술관 직접 방문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온라인 중계를 통해 만나는 서예전이 새로운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외에도 유튜브로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덕수궁-서울 야외 프로젝트: 기억된 미래’ 등 10개의 전시도 공개 중이다. ‘10분 영상으로 만나는 소장품 강좌’, 올해의 작가상 2019 참여 작가 인터뷰 등의 영상도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유튜브로 학예사 전시투어 중계를 진행해온 미술관은 하반기 과천관에서 개최되는 《한국 공예 지평의 재구성 5070》전 등은 가상현실(VR) 영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를 직접 기획한 학예사가 공간을 둘러보며 작품을 설명하는 30~1시간 정도의 국영문 자막 영상은 전시를 더 실감나도록 만든다. 홈페이지 ‘소장품’을 탭하면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1000여 점을 고화질로 볼 수 있다. 구글의 ‘아트 앤 컬처’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서울, 덕수궁 전시장을 스트리트 뷰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무료 이용권 증정한 왓차, 임대료 낮춘 낙원상가

낙원 악기상가 전경, 세종문화회관 ‘힘내라 콘서트’, 격리자에게 무료 이용권 증정한 왓챠플레이
월정액 VOD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플레이’는 지난 3월 초, 보건복지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과 협력해 생활치료시설 등에 입소한 코로나19 확진자 전원과 자가격리자에게 왓챠플레이 이용권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질병뿐 아니라 오랜 격리 생활에서 오는 불안과 답답함 등 정신적인 고통도 커서, 심리적 지원도 절실한 상황이라는 것이 지원 이유.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들이 격리 상태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답답함 또한 매우 큰 고통”이라며 “격리 기간 동안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심리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왓챠는 환자들 외에도 전 국민에게 3일간 6만 편 가량의 영화·드라마·다큐멘터리·예능 콘텐츠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을 무료 배포했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일반 국민들 모두 코로나19로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 이용자들은 왓챠 앱이나 공식 SNS에 공지된 링크를 통해 ‘왓챠와함께이겨내요’라는 간단한 문구를 입력, 이용권을 다운 받았다. 박태훈 왓챠 대표는 “최근 왓챠플레이의 이용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이런 상황에서 왓챠플레이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QR코드와 함께 행정안전부의 ‘자가격리자 안전관리 어플리케이션’ 등을 활용해 이용권을 전달하는 방안을 논의했던 왓챠는 향후 추가로 지정되는 자가격리자와 확진 판정을 받는 확진자도 지원할 예정이다.

예술의전당에선 오페라 글래스, 담요, 휠체어, 유모차 등 바이러스 확산 위험 소지가 있는 물품 대여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 가운데, 환자 발생 시 오페라하우스 내 별도 공간을 유증상자에 대비한 격리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세종문화회관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단체를 지원하는 온라인 생중계 공연 ‘힘내라 콘서트’를 4월부터 매주 화·금요일 ‘네이버 TV 공연LIVE’를 통해 무료로 서비스 중이다. 한편 문화계 한켠에서는 직접적인 임대료 인하 움직임에 동참한 곳도 있다. 건물 내·외부를 주기적으로 방역해 서울시 클린존으로 인증 받은 낙원 악기 상가는 상인들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상가 임대 매장을 대상으로 상반기 중 약 4억 여 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감면한다고 밝혔다. 낙원상가 관계자는 “반세기 동안 종로를 지켜온 서울시 미래유산인 낙원상가는 지역사회에 코로나19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 위기 극복에 동참하기 위해 지원가능 한 모든 방법을 계속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다.

▶매일 온라인으로 펼쳐지는 국악공연

국립국악원의 거문고 연주자 고보석(정악단)
(오른쪽) 판소리와 레게의 만남으로 국악의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는 프로젝트 그룹 ‘노선택과 소울소스 meet 김율희’도 국립국악원 ‘사랑방중계’ 무대에 섰다. (왼쪽) 국립국악원 사랑방중계에 출연한 조엘라
국립국악원 우면당 앞에 모인 연주자와 MC. 그러나 객석에 관객들은 없다. MBN ‘보이스퀸’에도 출연했던 국악인 조엘라 씨가 ‘난감하네~’로 유명한 수궁가를 구성지게 선보인다. 화면에는 수궁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실시간 댓글 창이 함께 뜨고, 아나운서는 공연 후 댓글 반응을 함께 읽어준다. 4월25일(토)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하는 국립국악원 국악 토크 콘서트 ‘사랑방중계’의 한 장면이다. 관객들의 참여 활성화를 위해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화훼농가의 꽃다발과 함께 커피 기프티콘도 상품으로 준비했다. 국악 연주자의 공연과 함께 생생한 해설이 함께 해서 지루할 틈 없이 없다. 특히 국악을 지루하고 어렵다고 느끼는 젊은층 고객들을 위해 최근 스타로 부상한 젊은 국악인들을 초대해 온라인으로 시청하는 관객들과 함께 관람 인증 이벤트 등을 마련했다. 국악을 전공한 김필원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50분 동안 함께 만들어가는 참여형 공연으로 구성한 것도 돋보였다.
국립국악원 사랑방중계에 출연한 이재하
이번엔 다른 풍경을 보자. “요즘 코로나 때문에 힘드시죠? 종묘제례악은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음악으로 노래와 무용이 포함된 음악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보살핌으로 복을 받아 행복한 삶을 누리길 바라며 올리는 종묘제례악을 들으시면서 힘내시길 바랍니다.” 악장의 말이 끝나자 연주자 100여 명이 도열한 야외 종묘제례악이 손바닥 안에 펼쳐진다. 국립국악원이 주중 11시에 실시간 중계하는 ‘일일국악’은 소규모 실내악과 독주, 독무 등 국악을 좀 더 깊이 있게 접할 수 있는 곡목으로 구성, 연주자들이 직접 해당 곡을 소개하는 해설을 더해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확산으로 공연 활동이 줄어든 예술가에게는 새로운 공연 기회를 제공하고, 감염의 우려로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관객들을 위해 ‘해설이 있는 고품격 온라인 국악 공연’을 제공한다는 취지. 임재원 국립국악원장은 “이번의 위기를 통해 보다 다양하고 편리한 환경에서 국악을 깊이 있게 접할 수 있는 관람 문화를 꾸준히 개발하고, 향후에도 반응을 보며 관련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집에서 만나는 박물관과 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온라인 전시관, 국립중앙도서관은 전시행사를 온라인 전시관으로 구축하여 제공한다.
도서관도 코로나19에 대응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 ‘전시컬렉션’에서는 ‘염상섭 문학전’, ‘책으로 자라는 곳, 스웨덴’, ‘세책과 방각본’, ‘만화소설과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는 러시아’ 등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국립세종도서관에서 개최했던 전시를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다. 국보, 보물급 장서 희귀본, 1910~1945년 잡지 창간호 컬렉션, 한글판 딱지본 소설, 한국문학을 접한 외국인들의 독후감 등이 포함된 ‘세계 속의 한국문학’ 컬렉션 등 ‘주제별 컬렉션’을 마련, 도서정보를 쉽게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가야본성 칼과 현’ 특별전을 VR로 볼 수 있게 공개했다. 특별전 ‘핀란드 디자인 10000년’,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로마 이전 에르투리아’,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등의 전시는 VR과 동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한편 박물관은 온라인 공연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국내 최초로 박물관 내에 복합문화공간으로 오픈한 국립중앙박물관 전문 공연장인 ‘극장 용’이 바로 그 주인공. ‘더 스토리 오브 언더더씨’(4.25~6.14) 공연과 연극 ‘레 미제라블(6.18~6.28)’ 공연은 취소한 대신, 근현대사 100여 년의 역사를 품은 한국 가곡을 조명하는 기획공연 ‘이야기가 흐르는 가곡다방’을 1주일 미룬 24일(금)부터 26일(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이야기가 흐르는 가곡다방’은 단순히 곡의 나열이 아니라 가사에 담긴 의미, 가곡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 등을 함께 알아보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음악극 형태로, 한때 젊은 시인과 음악가들이 활발하게 교류했던 ‘가곡다방’ 주인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과 전쟁의 역사를 겪은 한 청년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 시대를 담아냈던 가곡이 함께 녹아있다.

모두가 사회적 거리 두기에 한창인 지금, 원할 때 아무렇지 않게 공연장에 가서 떼창을 하고, 점프를 하며 가수의 공연을 보는 페스티벌에 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상이었는지, 연인과 들렀던 주말 미술관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었는지 사람들은 새롭게 깨닫고 있다. 서로 손을 맞잡고, 다시 공연장과 미술관을 찾을 때까지, 이 소중함의 불꽃을 유지시킬 수 있을까. “이번 전시에 참여한 4인의 작가는 치열한 생의 전장에서도 결코 용기와 관용, 그리고 앞으로 나아감을 거두어들인 적 없는 이들로 알고 있다. 그들과 나 또한 결코 비켜갈 수 없는 전장인 미술관에서 갤러리에서 내가 아는 이들 작가는 결코 포기한 적이 없었다.”(‘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 조은정 기획자의 글) 재난 시대의 예술은 특별하다. 바이러스가 사라질 때까지, 온라인 문화 공간의 전장에서 평화로운 전사가 되어, 그들이 구축해둔 벙커를 마음껏 활보해보는 것은 어떨까. 마크스를 사러 약국엘 들르고, 오래 전에 사둔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신선식품 새벽 배송 홈페이지를 열어둔 지금도, 전시는 이어지고 있다.

[글 박찬은 기자 일러스트 포토파크 사진 및 자료제공 국립국악원,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국제갤러리, 낙원 악기상가, 워너커뮤니케이션, 왓챠플레이

※본 기사에 언급된 기관 및 프로그램 운영 시기는 변동될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24호 (20.04.1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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