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100년, 내가 사랑한 우리말] [26] 섬기다

소설가 최수철 2020. 4. 9.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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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소설가 최수철

글을 쓰며 살다 보면 수시로 언어유희, 그러니까 말장난에 가까운 표현들이 머리에 떠오르기 마련이다. 내 경우에, 그중 하나는 이러하다. “삶은 삶은 달걀이다.” 우리의 인생(‘삶’)과 물에 넣고 끓인 (‘삶은’) 달걀을 동격으로 처리한 문장이다. 물론 발음상 우연의 일치가 이루어졌을 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막상 써놓고 읽어 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역설적인 뉘앙스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정말 ‘삶’은 ‘삶은 달걀’ 같은 것이 아닐까. 아마도 언젠가는 ‘삶은 삶은 달걀이다’라는 제목을 가지고 콩트를 한 편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삶다'가 내가 특히 좋아하는 우리말은 아니다. 나는 '섬기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섬기다'는 어원적으로 '서다(세우다)'와 '마음' 그리고 '기르다'라는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어떤 뜻을 마음에 일으켜 세워 길러 나간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소설가 최수철

하지만 나는 그런 숨은 뜻을 알기 훨씬 전부터 이 말에 깊이 이끌렸다. 내게서 '섬김'이란 부모나 신을 성심껏 모시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우주의 진실에 경외심을 가지는 마음가짐에 가깝다. 그러려면 우선 나 자신을 섬겨야 한다. 나 자신을 섬겨서 '낮춤'과 '귀함'의 의미를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더 큰 이치를 섬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몇 년 전에 마당 가진 집을 가지게 되었을 때, 한동안 ‘섬기다’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늘과 땅에 더욱 가까워졌으니,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눈에 보이는 존재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들을 더 잘 섬겨야겠다는 심정에서였다. 그 후로 비록 명패를 달지는 않았어도, 우리 집의 이름은 ‘섬김의 집’이 되었다. 나무로 된 새집을 울타리 앞 단풍나무에 매달 때도 그 작은 집의 지붕에 ‘섬김’이라고 새겨주었다. 다만 그것은 ‘섬김’에 이르는 길이 너무도 멀고 지난하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 되새기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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