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농인(聾人)과 아인(啞人)

2020. 4. 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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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한글을 가르치다 보면 가끔 한자로 인한 오류 수정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사실 한자어로 표기하면 상당히 이해하는데 쉽다. 다만 한자어를 아는 사람에게 한정된 것이고, 외국인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단어임에 틀림없다.(예를 들어 ‘사기’라는 단어를 한글로 쓰면 무슨 뜻인 줄 모르지만 한자로 쓰면 다양한 뜻을 알 수 있다. 士氣, 沙器, 詐欺, 事記, 私記, 邪氣, 社旗 등)

지난번에 학생들과 어휘공부를 하는데 장님과 귀머거리, 벙어리 등의 단어에서 질문이 들어왔다. “장님과 맹인, 벙어리와 농아인, 귀머거리는 한자로 뭐라고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농아라고 하면 어린아이를 말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장님’은 ‘시각장애인(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요인으로 시각에 이상이 생겨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데 뒤에 존칭접미사 ‘님’이 붙어 있는데 어찌 낮춤말인가? 등이다.

우선 장님은 맹인(盲人)의 명칭으로, 이능화는 今娥時俗盲之詞 曰判數 亦曰杖林 蓋意味基杖行而賣卜者也(조선도교사 , 제22장)라 하여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점친다.’는 뜻의 ‘장님’이라고 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맹인들은 맹청을 설립하고 단체 활동을 했다. 이 맹청에서 맹인들 사이에 여러 가지 명칭이 사용되었다. 그 중형으로 보기에는 연령이 높고, 아저씨로 보기에는 연령이 낮은 손위 맹인을 '긴 장(長)'에 높임말인 '님' 을 써서 '장님'이라 불렀다 한다. 따라서 장님은 맹청 내에서 존칭으로 사용되었다(대한 맹인 역리 학회 안성균 이사와 면담). 그러나 놀림말, 저주하는 말 또는 무당의 장님 타령으로 인해 경멸하는 호칭으로 전칭되었다. 그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 또는 40~50년 전만해도 서울 경기 지방에서 맹인이 지나가면 동네 아이들이 놀다가 모여들어 맹인을 보고 '장님, 장님' 하면서 놀렸으므로, 장님이란 명칭은 오랫동안 놀림말로 인식되었다. (<임안수(1997). 맹인 명칭고>, 시각장애연구, 한국시각장애연구회) 지금은 시각장애인으로 부르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벙어리는 한자로 농아(聾啞人)라고 해야 한다. 농인(聾人)은 ‘귀머거리(청각에 장애가 있어 듣지 못하는 사람)’를 말한다. 귀먹은 사람은 말도 못한다고 하여 농인(聾人)과 아인(啞人)을 구분하지 않고 쓰기도 하지만 한자로 쓸 때는 정확하게 구분이 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인(啞人)’이고 ‘듣지 못하는 사람’은 ‘농인(聾人)’이라고 한다. 이 두 글자를 합하여 ‘농아(聾啞)’라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농아(聾兒)’와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즉 ‘농아(聾兒)’는 ‘귀 먹은 아이’를 말하는 것이고, ‘농아(聾啞)’는 ‘귀가 먹고 말을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벙어리’라는 말은 “언어장애인(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요인으로 청각이나 발음기관에 탈이 생기거나, 처음부터 말을 배우지 못하여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 고어에는 ‘버우다(벙어리가 되다)’, ‘버워리 아니 다외며(석보상절 19:6)’ 등으로 남아 있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여기서 ‘어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귀머거리(귀먹어리), 벙어리, 더두어리(말더듬이)’ 등이다. ‘버우다(벙어리가 되다, 법화경 2:168)’의 어근 ‘버우’와 ‘어리’가 합하여 ‘버우어리’가 되었다가 ‘벙어리’로 정착한 것이다. ‘귀머거리’도 ‘귀먹어리’에서 변형된 것이다.

우리말에서 농아인이라는 표현은 자주 들을 수 있는데, 아인이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농인이라는 단어로 변형되어 독자들을 어지럽히고 있다. 와전된 것이다. 한자교육을 시키지 않은 교육의 잘못이 가장 크다.

우리는 같은 말이라도 한자로 쓰면 더 높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늙은이와 노인(老人)’, ‘계집과 여자(女子)’, ‘벙어리와 아인’(啞人),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 등을 보면 한자와 한글의 차이인데도 불구하고 한자로 된 단어가 고급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사전에도 ‘벙어리’는 ‘언어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이미 우리 민족은 문화적 사대주의에 젖어 있다.

요즘은 영어나 불어를 섞어서 사용해야 문화인이라는 말도 있다. 바른 언어생활을 하기 위해서 한자교육도 반드시 해야 한다.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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