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간 피었다네, 몽글몽글 강릉 두부꽃

강릉/정성원 기자 2020. 4. 3.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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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맛] [21] 강릉 초당두부
동해바닷물 넣어 더 부드럽고 담백
60년대 시장서 팔리며 유명세 타다 음식점 20여곳 모여 두부마을 형성
지금도 맷돌에 불린콩 갈아 만들어.. 매년 관광객 300만명 찾는 명소로

강원도 강릉시 경포해변과 강문해변 사이엔 송림(松林)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시골마을이 있다. 두부 하나로 전 국민을 사로잡은 초당두부마을이다. 초당두부가 유명해지면서 동네 이름이 초당동이 됐다.

지난달 21일 오전 5시쯤 초당두부마을에 모여 있는 두부 집 23곳에서 일제히 고소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날마다 이 시간이면 물에 불린 콩을 맷돌에 갈고 콩물을 끓여 두부를 만든다. 옛 전통 방식 그대로다.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찾은 한 두부 집에선 정은숙(61)씨가 커다란 가마솥에 콩물을 끓이고 있었다. 정씨는 "잠시라도 눈을 뗐다 콩물이 가마솥에 눌어붙으면 탄내가 난다"면서 "콩물을 지켜보며 불 조절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마솥 곁을 떠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강릉 초당두부는 새벽 정성이 만든다. 이른 새벽부터 물에 불린 콩을 갈아 콩물을 내고, 몽글몽글 끓여 두부를 만든다. 동해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한 초두부는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모두부는 탱탱하다. /강릉시

콩물을 끓인 지 30분이 지났을 무렵 정씨는 가마솥 불을 끄고 응고제 역할을 하는 간수를 부었다. 초당두부는 특별한 간수를 쓴다. 동해 바닷물이다. 푹 끓인 콩물에 간수가 더해지자 가마솥엔 몽글몽글 두부꽃이 피어났다. 흔히 순두부라 말하는 초두부다. 정씨는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초두부에선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면서 "초두부를 두부 틀에 넣어 물을 빼면 모두부가 되는데, 모두부 역시 묵처럼 탱탱하다"고 말했다.

23곳의 두부 집에서 만들어 낸 두부 맛은 23가지다. 초당두부라고 불리지만 집마다 두부 맛이 다 다르다. 정씨는 "불 조절에 따라 구수함이 달라지고, 간수의 양에 따라 식감이 좌우된다"면서 "집집이 전해 오는 비법을 따르기 때문에 고유한 맛을 낸다"고 말했다.

초당(草堂)이란 이름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남긴 교산(蛟山) 허균 선생과 조선 중기 천재 여류 시인인 허난설헌의 부친인 허엽(1517~ 1580)의 호에서 따왔다. 조선 광해군 시절 강릉 부사로 내려온 허엽은 관청 뜰에 있는 샘물 맛이 좋아 "이것으로 두부를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간수로는 짠 동해 바닷물을 사용했다. 그렇게 탄생한 두부는 부드러우면서 담백했다. 맛에 반한 백성들이 두부에 허엽의 호인 초당을 붙여 초당두부라 부르기 시작했다.

지난달 21일 강원 강릉 초당두부마을에서 두부 집을 하는 정은숙씨가 가마솥에서 끓이던 콩물에 간수를 붓자 두부가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강릉시

초당두부의 대중화는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초당동 부녀자들은 강릉 중앙시장에 좌판을 펼치고 집에서 만든 두부를 내다 팔았다. 두부는 금세 유명해지면서 1980년 대 후반부터 초당동에 두부 집이 하나 둘 문을 열었다. 20곳을 넘어가면서 두부마을로 불리게 됐다. 곽수동 초당두부보존회장은 "6·25전쟁 등을 거치며 마을에서 남자들을 보기 어렵게 됐고, 여자들이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두부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면서 "이른 새벽부터 물에 불린 콩을 갈아 콩물을 낸 뒤 콩물을 끓여 두부를 만드는 전통 방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초당두부는 지역 경제에도 효자 노릇을 한다. 매년 초당두부를 맛보기 위해 초당두부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300만명이 넘는다. 관광객 한 명이 8000원짜리 순두부 한 그릇만 먹어도 연간 매출이 240억원이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초당두부를 활용한 요리법이 더욱 다양해졌다. 강릉시는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김호석 가톨릭관동대 교수·최현석 셰프와 손잡고 두부 삼합, 두부샐러드, 초당두부탕수 등 초당두부를 활용한 특선 음식을 선보였다. 모두부를 녹말가루에 입혀 튀겨 낸 두부탕수는 입 안에서 고소함을 배가시킨다. 잘 구운 두부에 제철과일을 곁들인 두부샐러드는 부드러움과 새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지난 1월엔 강릉시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하는 '관광거점도시'로 선정되면서 초당두부 명품화 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관광거점도시로 선정된 강릉시는 오는 2024년까지 국비 100억원을 지원받는다. 강릉시는 '휴·미·락'(休·味·樂, 휴식·맛·즐거움)을 갖춘 외국인 관광거점도시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초당두부마을은 미식관광의 중심지로 개발된다. 두부 마을 일대에 정비사업이 추진되며,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두부 요리법도 개발한다. 또 외국인도 두부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도록 초당두부 체험관도 새롭게 만들 예정이다. 김한근 강릉시장은 "초당두부는 강릉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음식"이라며 "두부마을을 미식 관광의 중심지로 개발해 전 세계에 초당두부의 우수성과 맛을 알려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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