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보드 지우개에 숨긴 녹음기로 노조 회의 도청한 전우정밀 관리자 징역형

김지환 기자 2020. 4. 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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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사측과 상대 노조 도청 공모한 노조 간부도 징역형

상대 노조를 견제하기 위해 USB형 녹음기로 불법 도청을 공모·실행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의 노조 간부와 사측 관리자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구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상윤)는 지난 2월7일 경북 경산에 있는 전우정밀 품질생산부 차장 권모씨에게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복수노조인 전우정밀 1노조 위원장 이모씨와 사무장 김모씨는 각각 징역 8월과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통신비밀보호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혐의로 이들을 기소했다.

금속노조 대구지부 대구지역지회 전우정밀분회가 공개한 USB형 녹음기.

전우정밀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구지부 대구지역지회 전우정밀분회(전우분회), 전우정밀 1노조가 각각 설립돼 있는 복수노조 사업장이다. 전우분회의 전신인 전우노조는 2014년 4월 설립 당시 한국노총 산하에 있다가 지난해 1월 조직형태 변경을 통해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로 소속이 변경됐다. 1노조는 2017년 1월 설립돼 지난해 2월부터 현재까지 한국노총 소속이다.

권씨는 전우노조의 잔업거부 등 집단행동을 막기 위해 전우노조의 활동 내용을 미리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명목으로 복수노조 체제에서 전우노조의 동향을 지속적으로 파악하려는 이씨·김씨와 전우노조 총회 내용을 몰래 녹음하기로 공모했다.

이들은 2018년 1월31일 전우정밀 사내 교육장에서 열린 전우노조 총회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교육장에 설치된 화이트보드 지우개 안에 USB형 녹음기를 켠 상태로 놓아뒀다. 그해 12월 교육장에서 열린 전우노조 임시총회도 같은 방식으로 도청했다.

권씨는 도청뿐 아니라 전우노조를 약화시키고 1노조를 강화하기 위한 부당노동행위도 벌였다. 권씨는 2018년 11~12월 이씨에게 “용접반 무노조원들(비조합원) 총 7명 작업하이소” “오늘 추가 (전우노조로) 넘어간 사람 이름 누구에요?” “사람들 조장님 노조에서 포용할 만한 임팩트 하나 필요할 듯 한데 생각 좀 해봐요” 등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사용자는 노조 활동에 지배·개입(부당노동행위)해선 안 되지만 전우노조 조합원 변동 상황·동향을 수시로 확인하고 노조에 소속되지 않은 직원 혹은 전우노조 조합원을 포섭해 1노조 조합원을 늘리기 위한 시도를 한 것이다.

아울러 권씨는 이씨로부터 전우노조의 집단적 잔업거부에 대한 회사의 엄정 징계를 요청하는 1노조 명의의 호소문 초안을 미리 전송받아 그 내용을 검토하기도 했다.

전우정밀 사업장 전경. 전우정밀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 대해 “이 사건 범행은 복수의 노조가 존재하는 회사에서 사업주 측 부서장과 일방 노조의 간부들인 피고인들이 공모해 상대 노조에 대한 견제를 목적으로 상대 노조의 총회 내용을 녹음하고, 부서장인 권씨가 노조의 동향을 파악하는 등으로 자주적인 노조 활동을 방해함으로써 노조의 조직 또는 운영에 개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범행이 계획적인 데다가 범행수법과 내용에 비추어 죄질이 좋지 않고, 근로자들이 자주적으로 결성한 노조의 조직을 약화시키거나 활동을 저해함으로써 헌법이 보장한 근로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침해해 그 죄책도 가볍지 않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법행을 모두 인정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는 점, 피고인들에게 동종 전과 또는 벌금형을 초과하는 전과는 없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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