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관용으로 유럽은 자살하는 중"

김환영 2020. 3. 2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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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 천국, 기독교 힘 빠져
"2050년 스웨덴 인구 20%가 무슬림"
옥스퍼드 출신 보수논객 주장
좌파 냉담, 우파 환호, 반응 갈려
유럽의 죽음
유럽의 죽음
더글러스 머리 지음
유강은 옮김
열린책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국경 없는 세계의 허구성을 드러냈다. 국경을 울타리로 삼는 주권이 엄연히 살아있다. 내가 살려면 내 나라가 ‘검역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주권에는 ‘문화주권·종교주권·혈통주권’도 포함된다.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1942~2011)는 “신(神)께서 유럽을 이슬람에 주셨다”고 말했다. 유럽이 종국에는 ‘유라비아(유럽+아라비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럽의 죽음』에 따르면 지금 살아있는 유럽인들은 생전에 생소한 유럽에서 살게 될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그런 미래를 논증한다. 2017년 영국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신생아 이름은 ‘무함마드’였다. 영국 수도 런던의 33개 자치구에서 23개 자치구는 백인이 소수다. 2050년에는 스웨덴에서 무슬림 비중이 20.5%가 된다. 같은 해 오스트리아에서는 15세 이하 인구의 50% 이상을 무슬림이 차지하게 된다. 게다가 많은 백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주지 못하는 소속감이나 확신 같은 것을 이슬람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글판 기준으로 19장 506페이지에 걸쳐, 유럽 다문화주의의 실패를 증언하는 책이다.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 유럽은 자살하는 중이다. 아니면 적어도 그 지도자들은 자살을 선택했다. 유럽인들이 이 결정을 따르기로 선택할지는 당연히 또 다른 문제다.”

헨리 표젤리(1741~1825)가 그린 ‘악몽’. 유럽대륙이 이슬람 대륙이 될 것이라는 ‘악몽’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 워트버그대학]
저자 더글러스 머리에 따르면 ‘타살’이 아니라 ‘자살’이다. 자살은 상당 부분 다문화주의 정책 때문이다. 저자는 “다문화주의는 본질적으로 반유럽 문명이다”라는 새뮤얼 헌팅턴(1927~2008)의 말을 인용한다. 유럽에서 다문화주의가 성공하고 있다는 팩트·주장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많을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실패의 근거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이민자들은 유럽 도처에서 성폭행과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 사회복지는 미래 테러리스트들에게 생활비를 대고 있다.

유럽 각국 당국자들의 예상이나 희망 사항과는 달리 이민자들은 유럽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시스템에 ‘동화’될 생각이 없다. 이민자들은 그리스도교보다는 세속주의·휴머니즘과 충돌한다. 저자가 인용하는 몇 년 전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 무슬림의 100%가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다. 52%는 동성애 자체를 불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은 ‘인종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게 두려워 경고음을 외면하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자유주의 사회는 관용 없는 자들을 관용해야 하는가.” 저자는 희망을 엘리트가 아니라 일반 국민·유권자에서 찾는다.

유럽이 수렁에 빠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자본주의의 운행 논리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노동력이 부족했다. 당국은 이주 노동자들이 유럽 경제에 기여하고 돌아갈 것이라고 봤다. 돌아가지 않았다. 유럽은 이주자 천국이 됐다.

둘째, 유럽인들은 유럽의 전통을 낳은 그리스·로마와 그리스도교의 전통에 대한 확신이 없다. 유럽 그리스도교는 영적인 영양실조에 걸렸다. 얄궂게도 저자 자신이 무신론자다. 저자는 자신이 ‘크리스천 무신론자’ ‘문화적 크리스천’이라고 말한다.

결국 ‘업보’다. 유럽의 강대국들은 세계 곳곳을 식민 지배하며 많은 죄업을 지었다. 또 인종주의자 히틀러는 죄가 없는 많은 사람을 학살했다. 유럽인은 부채의식·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지도층·지식층이 이민자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다.

이튼칼리지와 옥스퍼드대 출신인 저자는 영국에서 잘나가는 보수 논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가디언 등 주요 매체에 칼럼을 기고한다. BBC 등 TV에도 자주 모습을 비춘다. 이 책에 대해 우파와 중도파는 반응이 호의적이다. 찬사가 쏟아졌다. 좌파는 냉담하다.

이 책은 우리에게도 관련성(rele vance)이 있을까. 우리는 체류 외국인 230만명 시대에 살고 있다. 그중 상당수는 무슬림이다. 수십 년 후 우리나라에서 이슬람 신자 수가 무교·불교·개신교·가톨릭 신자를 앞선다면? ‘그게 뭐 어떻다는 말이냐’고 반응할 수 있겠다. ‘소름 끼친다’는 반응도 있겠다.

우리는 이미 더글러스 머리가 말하는 ‘죽음’을 체험했다. 조선의 엘리트가 ‘내 머리는 잘라도 내 머리카락은 한 올도 자를 수 없다’며 격렬히 저항했지만, 동아시아에서 유가지도(儒家之道)는 땅에 떨어졌다. 그 자리를 새로이 부흥한 불교, 그리스도교, 민주적 자본주의, 마르크스주의 등이 차지했다. 신분 차별이 사라지고 경제 형편이 더 좋아졌다. 또 공맹지도를 좀 더 객관적으로 찬찬히 볼 기회도 열렸다. 이러한 동아시아적 체험을 유럽의 미래에 대입해본다면 유럽인들이 반드시 절망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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