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쉰들러' 현봉학 박사의 자유·민족애 계승해야" [나의 삶 나의 길]

박태해 2020. 3. 1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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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경 '현봉학박사기념사업회' 이사장 / 영화 '국제시장' 속 흥남철수 주역 / 6·25때 미군에 北 피란민 구출 간청 / 10만명에게 자유 안겨준 '전쟁 영웅' / 방치된 윤동주 묘소 재단장 등 기여 / 1994년 美 유학 시절 인연 / '흥남철수' 생생한 증언 듣고 큰 감동 / 부모님도 당시 월남.. 깊이 있는 공감 / 강연 등 통해 숭고한 가치 알리기 주력 / 올 12월 '현봉학의 날' 지정 선포 / 대구 코로나 현장으로 달려간 의사들 '이 시대의 현봉학'이라고 칭송할 만 / 이들 중 '제1회 봉사상' 시상할 계획
(사)현봉학박사기념사업회 한승경 이사장은 13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봉학 박사님은 1950년 흥남철수작전 때 미군을 설득해 10만 피란민을 탈출시킨 전쟁영웅이다. 당시 흥남부두에 가득했던 절망과 탄식을 희망과 환희로 바꿔낸, 우리가 반드기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활약이 요즘 세대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며 ”기념사업회 활동을 통해 박사님의 숭고한 용기와 의로운 뜻을 받들어 제2, 제3의 현봉학을 배출하는 국가·사회적인 환경 조성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제원 기자
“장군, 부탁드립니다. 이대로 철수하면 저 사람들은 다 죽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2014년 개봉해 14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국제시장’ 도입부에는 미 10군단 청년 통역관이 흥남부두에 모인 피란민 철수를 미군 장군에게 간청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 속 실제 인물이 현봉학 박사(1922∼2007)다. 1950년 12월 23일 중공군에 쫓기는 피란민 10만명을 자유의 품에 안긴 이른바 ‘한국판 쉰들러’로 불리는 전쟁영웅이다. 미국 유학 시절 우연히 현 박사를 만난 후 그의 삶에 매료돼 인생 후반을 그를 선양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 이가 (사)현봉학박사기념사업회 한승경(65) 이사장이다. 피부과 의사, 특히 백반증 권위자인 그가 현 박사의 삶에 푹 빠져 활동하는 것이 이채롭다. 주변에선 그를 “시도 때도 없이 현 박사의 업적과 정신을 자랑하는 ‘현봉학 마니아’”라고 한다. 한 이사장은 “젊은 시절 알게 된 박사님의 삶을 통해 국가와 민족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됐다”며 “박사님의 삶이 내 인생의 나침반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박사님의 삶을 배워 제2, 제3의 현봉학을 나오게 하는 것이 기념사업회의 목적”이라고 강조한다.

13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숙대입구역 인근 우태하·한승경피부과를 찾아 인터뷰했다. 그의 방엔 현 박사 활동 관련 각종 서적과 포스터, 기념물 등으로 가득해 ‘현봉학 마니아’임을 증명했다. 그로부터 현 박사의 삶과 그와의 인연, 기념사업회 활동에 관해 들어봤다.
― 요즘 어떻게 지내나.

“현 박사님을 선양하는 기념사업회 일도 하면서 피부과 의사이니 환자를 본다. 요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 환자들에게 약을 충분히 지어주고 자주 오지 말라고 당부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종식돼야 할 텐데 걱정이다. 모교 연세대 의대 총동창회장을 맡고 있어 동문 의사들이 대구 현지 의료지원을 나가는데, 이를 뒤에서 돕는 일을 하며 지낸다. 수많은 의사들이 대구로 향하는 것을 보면 감동적이다. 제 눈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6·25전쟁 당시의 현 선생 같아 보인다.”

―현 박사는 어떤 분이고, 기념사업회는 무슨 일을 하나.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6·25전쟁 영웅이다. 1950년 12월 중공군 참전으로 전황이 불리해지면서 미군은 ‘흥남철수작전’을 개시했다. 그 막바지 단계에서 연합군 함정단이 수많은 피란민을 태우고 흥남 항구를 떠나 한반도 남단 거제도에 왔다. 함정을 이용해 피란길에 오른 동포가 10만명이다. 초유의 ‘인간 이동 드라마’다. 이 대서사극은 전적으로 박사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미 10군단 민사부 고문관으로 참전 중이던 박사님은 에드워드 아몬드 사령관에게 수차례 간청해 군사물자를 버리는 대신 피란민 전원을 군함과 지원선을 통해 거제도로 이송했다.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역사적 팩트다. 그런데 이 무용담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2014년 12월 영화 ‘국제시장’이 대박난 데 이어 국가보훈처에서 ‘12월의 전쟁영웅’으로 박사님을 선정하자 관심을 갖는 이가 많아졌다. 박사님은 세브란스의전 출신이다. 그래서 그해 12월 26일 연세대에서 전쟁영웅 선정 기념 축하연을 했다. 그 행사 후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의 주도로 그를 기리는 기념사업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많은 분의 노력으로 2017년 기념사업회를 설립해 제가 이사장을 맡았다. 기념서적 발간, 강연회 등을 통해 박사님의 동포애와 그가 지키려는 자유의 숭고한 가치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 박사님과의 어떻게 인연이 됐나. 철수작전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이 있다면.

“1994년 미국 토머스 제퍼슨 의대 피부과에서 연수했다. 그곳에서 박사님을 처음 만났다. 당시 이 대학에서 공부하던 숙모 소개로 만났다. 처음엔 박사님이 어떤 분인지 몰랐다. 이후 여러 차례 뵈면서 흥남철수작전 얘기를 듣고 감동했다. 제 부모님도 흥남철수작전 때 북에서 피란을 왔기 때문에 박사님에 대한 각별한 존경심을 갖게 됐다.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배에서 거제로 탈출하는 사흘간 피란민들은 선박 구석뿐 아니라 차량 밑 장갑차 위를 가득 메웠다고 한다. 공간이 협소해 앉는 것은 고사하고 선 채 사흘간 버틴 이가 많았다. 먹거리도 부족한 데다 기본적인 생리도 해결하지 못한 채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견뎌냈다. 거제에 도착하기까지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그중 1만여명이 탄 빅토리아호에선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 미군은 그들에게도 김치 1, 2, 3, 4, 5호로 명명했다. 극한 환경에서도 태어난 새 생명들은 피란민에게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게 했다. 이들은 24일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피란민으로 가득해 부산에 내리지 못하고 25일 거제에 도착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린다.”
―박사님은 자신의 얘기를 잘 하지 않았다고 저서에 밝혔는데.

“박사님은 자신의 공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당신을 ‘한국의 쉰들러’라 부르는 이들에게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것도 아니다”라며 늘 손사래를 쳤다. 파란민들의 자유를 찾는 데 도움을 준 것이 결과적으로 이들을 이산가족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셨다. 피란민 중에는 월남 후에 낯선 땅에서 어려움을 겪은 이들도 많았다. 심지어 배를 탄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었다. 많은 사람을 원치 않게 이산가족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주변에 가끔 말씀하셨다.”

―철수작전 공로뿐 아니라 업적이 많다. 병리학자로서 유명했는데.

“박사님은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산가족 만남과 통일운동에 기여할 바를 꾸준히 찾았다. 재미교포로서 1985년 미·중 한인우호협회나 1991년 설립된 국제고려학회에 적극 참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중국 연변 의과대학 명예교수로 자주 중국을 방문한 박사님은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고 감명받았다. 그후 당시 연변에 교환교수로 있는 일본인 오무라 마쓰오 와세다대학 명예교수에게 부탁해 시인의 묘를 찾게 한 일은 유명하다. 방치했던 시인의 묘소를 재단장했다. 이후 ‘윤동주 문학상’을 제정해 시인의 글과 정신이 계속 전해지도록 했다. 박사님은 원래 임상병리학자다. 휴전 후 미국으로 돌아가 컬럼비아의대와 제퍼슨의대 병리학 교수를 지냈다. 미국 임상병리학회가 주는 세계적인 권위의 ‘이스라엘 데이비드슨상’도 수상했다. 그가 몸담았던 뉴저지 뮬런버그 병원은 선생의 업적을 기려 병리학 연구실을 ‘현봉학 임상병리교실’로 명명했다. ”
― 현 박사님 동상 건립 운동도 주도했는데.

“2016년 12월 서울 중구 연세대 세브란스 빌딩 앞에 박사님 동상 제막식을 했다.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하면서 박사님의 활약이 대중에 알려지고 동상 건립 여론이 조성됐다. 건립추진위 사무총장을 맡아 연세대 재단이사회, 서울시, 중구청 등과 오랜 기간 협의해 지금의 자리에 동상을 세웠다. 연세대 동문을 상대로 모금해 2억원을 만든 뒤 국가보훈처에서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오광섭 작가의 제작으로 청년 모습의 동상을 건립했다. 동상에는 ‘자유와 인류애의 표상, 영원히 기억합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박사님에 대한 존경을 실천하는 증표다. 어려운 숙제를 끝낸 것 같아 보람이 작지 않다.”

― 흥남철수작전에 기여한 에드워드 포니 대령도 발굴 소개해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6·25 당시 흥남철수작전에서 에드워드 포니((1909∼1965) 미 해병대 대령은 박사님을 도와 피란민을 구출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미군이다. 그 역시 당시 활약에 비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인천상륙작전의 주 설계자였던 그는 포항 상륙 사전 당시 제1 기병사단의 하역과 상륙에 관한 계획을 준비하고 1만명이 넘는 병력과 2000대 넘는 차량을 포항에 상륙시켜 부산지역 방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사업회에서 박사님과 함께 포니 대령도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을 해왔다. ‘은혜를 잊지 않는 대한민국’임을 보여 주고 싶었다. 국가보훈처에서 2019년 ‘12월 전쟁영웅’으로 선정하는 데 기여했다. 사업회 차원에서 그의 자녀 등 후손들과 자주 교류하며 기념사업회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현봉학 마니아’ 이전에 피부과 의사, 특히 백반증 권위자로 유명한데.

“1980년대 제가 백반증 연구를 시작한 때만 해도 ‘백반증=불치병’이었다.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수많은 백반증 환자들을 임상하면서 2000년대 초 얼굴에 생긴 백반증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얼굴에 생기는 백반증을 6가지로 분류하는 백반증 분류법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이 분류는 현재 전 세계 피부과 의사들이 진료에 참고하고 있어 자부심을 느낀다. 쑥쓰럽지만 제가 2000년 영국 블렉웰 사이언스를 통해 출간한 ‘비틸라이고’(Vitiligo·백반증)는 세계 피부과 의사들의 백반증 교과서로 여겨진다.”
―기념사업회의 향후 계획은.

“올해 12월 세 번째 주 화요일을 ‘현봉학의 날’로 지정·선포할 예정이다. 이날 국가보훈처와 연세대 등 관계 단체 등과 협의해 박사님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열 계획이다. ‘현봉학 봉사상’도 제정해 1회 수상자를 낼 계획이다. 요즘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특히 감염자가 폭증한 대구로 달려가 구슬땀을 흘리며 환자를 돌보는 젊은 의사들이 대견하다. 이들이야말로 자랑스러운 박사님의 후배이자, ‘이 시대의 현봉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가 종료된 후 이들 중의 한 명을 선정해 시상하는 것도 생각 중이다. 당부하고 싶다. 우리 기념사업회는 문이 열려있다. 현 박사님의 정신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 특히 젊은이들은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한승경 이사장은… ○1955년 부산 출생 ○1975년 경남고 졸업 ○1981년 연세대 의대 졸업 ○1990년 연세대 의대 박사과정 수료 ○1993년 미국 뉴욕 의대 방문교수 ○1995년 미국 토머스제퍼슨 의대 피부과 임상교수 ○1998년 미국 국립 백반증재단 이사 ○1988∼1998년 연세대 의대 피부과 교수 ○1999년∼현재 우태하 한승경 피부과 원장 ○2004년 유럽피부과학회 회원 ○2007년 대한피부과의사회 회장 ○2008년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2010년∼2016년 현봉학박사 추모위원회 간사 ○2012년 대한백반증학회 회장 ○2015년 대한온천학회 회장 ○2017년∼현재 연세대 의대 총동창회장, 사단법인 현봉학박사기념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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