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를 '아륀지'로 안 쓰는 이유

정혁준 2020. 3. 1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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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혁준 기자님.

저는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멜버른 무역관에서 근무하는 최00입니다.

최00 드림

영어를 한글로 어떻게 적을지 고민한 <이코노미 인사이트> 독자분이 이메일을 보냈다.

이 때문에 2008년 이명박정부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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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1. 글 쓸 때도 사람이 먼저다

2. ‘대한’을 대하는 자세

3. ‘의’와 전쟁을 선언하라

4. ‘빵들과 장미들’이 어색한 이유

5. 갖지 말고 버리자

6. ‘것’을 줄여쓰라

7. 주어에 서술어를 응답하라

8. 쌍상에 맞춰 ‘응답하라’

9. 동사가 먼저다

10. 좋은 글은 ‘갑질’하지 않는다

11. 중언부언 말자

12. 영어 번역투에서 벗어나자

13. 일본식 표현 ‘적’을 줄이자

14. ‘감성적’에서 벗어나자

15. 동사 중복에서 벗어나는 법

16. 이제 헌법을 바꿔야 할 때

17. 잊혀진 계절은 잊자

18. 문장에 균형을 갖추자

19.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라

안녕하세요, 정혁준 기자님. 저는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멜버른 무역관에서 근무하는 최00입니다.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수출 증대를 위한 업무를 하다보니 한국 기업에서 보낸 문서를 보거나 내부에서 만든 공문과 이메일을 많이 보내게 됩니다. 관련해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 연락드립니다. 호주 Melbourne을 읽으면 ‘멜번’이라고 소리 나는데, 많은 곳에서 ‘멜버른’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맞는지 궁금해 문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최00 드림 영어를 한글로 어떻게 적을지 고민한 <이코노미 인사이트> 독자분이 이메일을 보냈다. 영어·중국어·일본어같이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말을 한글로 쓸 때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2008년 이명박정부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Orange’를 ‘오렌지’로 쓰지 말고, 원어 발음에 가깝게 ‘어륀지’나 ’아륀지’로 적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다. 잘 모르고 한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말을 적을 때는 1986년에 만든 ‘외래어표기법’을 따라야 한다.
이미지투데이
외래어 표기법은 왜 만들었나 외래어 표기법을 만든 이유는 외국어 발음을 그대로 옮겨 적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끼리 외국어를 쓸 때 의사소통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런 규칙이 없다면 우리말과 외국어 음운 구조나 체계가 차이가 커서 혼란을 빚는다. 예를 들어 ‘Doughnut’을 ‘도우넛’ ‘도너츠’ ‘도넛’ ‘도나스’ ‘노넛츠’처럼 다르게 사용한다면 글을 쓰거나 말할 때 큰 불편을 겪는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파리(Paris)를 영어로 발음한다면 ‘패리스’, 독일 뮌헨(München)은 ‘뮤니크’로 발음한다. 외래어를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사람이 참 많다. 그렇다면 원칙을 잘 알아두자. 간결하게 쓰는 게 가장 큰 원칙이다. ‘ㅣ, ㅗ, ㅜ’ 같은 단모음과 ‘ㅑ, ㅛ, ㅟ’ 같은 이중모음이 겹칠 때는 대부분 단모음을 쓴다. ‘단모음이 이중모음보다 먼저다’라고 생각하자. 텔레비젼이 아니고 ‘텔레비전’이 맞다. ‘젼’과 ‘전’은 우리말 발음으로 잘 구별되지 않아서다. 마찬가지로 리더쉽은 ‘리더십’이, 잉글리쉬는 ‘잉글리시’가, 쥬스는 ‘주스’가, 쵸코는 ‘초코’가, 레이져는 ‘레이저’가 맞다. 물론 일부 예외는 있다. 수퍼마켓이 아니라 ‘슈퍼마켓’이 맞다. 마찬가지로 영어 발음 ‘오우’는 뒤 ‘우’가 약하게 소리 날 때 ‘오’로 간결하게 적는다. PC나 노트북을 켤 때마다 나오는 ‘Window’는 ‘윈도’가, ‘Boat’는 ‘보트’가, ‘Yellow’는 ‘옐로’가, ‘Snow’는 ‘스노’가, ‘low’는 ‘로’가 맞다. 외래어 표기 5원칙은 좀더 구체적으로 ‘외래어표기법 1장’(표기의 원칙)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사람은 ‘Five’(다섯)와 ‘Pine’(소나무)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유성음 ‘V’와 무성음 ‘F’ 발음 차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어 [f] 발음을 구별하기 위해 순경음 ‘ㅸ’ 같은 사라진 옛 글자를 되살려 활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문자를 따로 쓰면 영어를 잘 쓰지 않는 사람도 새 문자를 익혀야 한다. 외래어 표기는 전문가를 위한 게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한 것이다. 굳이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어렵게 만들 필요는 없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 1장 1항에선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자모만으로 적는다”로 정해놓았다. ‘Fry pan’은 어떻게 쓸까? ‘후라이팬’이라고 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정확한 표기는 ‘프라이팬’이다. 영어 철자 ‘f’의 표기는 우리말 ‘ㅍ’에 맞춰 놓았기 때문이다. ‘ㅎ’ ‘ㅍ’를 함께 적도록 허용하면 혼란이 생긴다. ‘Fighting’은 ‘화이팅’인지 ‘파이팅’인지 헷갈리고, Fantasy도 ‘환타지’인지 ‘판타지’인지 혼란스럽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 2항에서는 “외래어의 1음운은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로 규정해놓았다. ‘워크숍’이 맞을까, ‘워크숖’이 맞을까? ‘워크숍’이 맞다. 영어 ‘P’는 ‘ㅍ’으로 쓰지만, 받침에 들어갈 때는 ‘ㅂ’으로 쓴다. ‘커피숖’은 ‘커피숍’으로, ‘헤어숖’은 ‘헤어숍’으로, ‘포토숖’은 ‘포토숍’으로 써야 한다. 영어 ‘k’도 받침으로 들어가면 ‘ㄱ’으로 적어야 한다. ‘Snack’은 ‘스냌’이 아니라 ‘스낵’으로 써야 한다. 외래어표기법 3항은 “받침에는 ㄱ,ㄴ,ㄹ,ㅁ,ㅂ,ㅅ,ㅇ만을 쓴다”이다. 프랑스 수도는 ‘파리’일까, ‘빠리’일까? 외래어표기법으로는 ‘파리’가 맞다. 우리말엔 ‘ㅋ-ㄲ/ㅊ-ㅉ/ㅍ-ㅆ’ 같이 거센소리-된소리 쌍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영어 파열음(p·b·t·d·k·g)을 우리말로 바꿀 때 어떨 때는 된소리로, 어떨 때는 거센소리로 낸다. 이 때문에 외래어표기법에선 거센소리로 쓴다는 규칙을 정했다. ‘까페’가 아니라 ‘카페’로, ‘바게뜨’가 아니라 ‘바게트’로 말이다. 외래어표기법 4항은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이다. 그렇다고 된소리를 전혀 쓰지 않는 건 아니다. 예외는 있다. ‘껌’이나 ‘빵’은 외래어지만, ‘검’이나 ‘팡’이라고 쓰지 않는다. 오랫동안 써서 익숙한 말이기 때문이다. 현지 발음하고 별 상관없는 미국·영국·태국·독일·호주 같은 나라 이름도 마찬가지다. 외래어표기법 5항은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를 따로 정한다”로 돼 있다. 그럼, 독자분이 주신 질문을 다시 살펴보자. Melbourne은 ‘멜번’이 더 현지 발음과 가깝지만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멜버른’으로 쓰는 게 맞다. 외국 사람과 만나 영어를 사용할 때는 현지 발음과 가깝게 말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과 영어로 말하거나 쓸 때는 외래어표기법에 맞추자. 그래야 많은 사람이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네이버에서 한겨레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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