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손씻기'까지 재난문자로 보내야 하나요?

전광준 2020. 3. 11.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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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번지며 일상이 된 알림음
지자체 안전안내 문자 보내도 아이폰은 긴급재난 문자로 와
시도 때도 없이 삐익~ 9일 하루만 90여개 문자 폭주
행안부 "행동수칙 보내지 마라" 지침에도 안동 등 11곳은 위생수칙 보내
마스크 쓰고 출근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10일 오전 7시4분.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ㄱ구청]코로나19 ㄱ구 확진자 발생. 상세 내용은 블로그 확인 바랍니다.” 뒤이어 오전 8시30분. 이번엔 전 국민이 같은 문자를 받았습니다. “[식약처]오늘 약국 마스크 구매 대상은 출생연도 끝자리 2, 7.” 오전 10시38분. 또다른 기초단체에서 문자가 왔습니다. “[ㄴ구청]10일 ㄴ구 거주 확진자 발생. 거주지 방역완료. 동선 파악중.”

코로나19가 번지면서 재난문자가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9일 하루 90여개의 안전안내 문자가 전국 곳곳에 발송됐고, 이달에만 안전안내 문자 1600건이 넘게 발송됐습니다. 이같은 재난문자를 두고 시민들 사이에선 다양한 반응이 나옵니다. “인터넷 접근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그 문자밖에 기댈 데가 없다”는 반응도 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울려 피로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전해지는 재난문자, 지금의 방식이 최선일까요?

우리가 평소에 받아보는 문자는 보다 정확히 말하면 ‘안전안내 문자’입니다. 행정안전부가 정한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을 보면, 재난문자는 재난의 정도에 따라 위급재난, 긴급재난, 안전안내 문자로 나뉩니다. 위급재난 문자는 공습경보나 경계경보가 있을 때 60데시벨(㏈) 이상의 알림 소리와 함께 발송됩니다.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받아볼 일이 없는 문자에 속합니다. 긴급재난 문자를 받을 일도 흔치 않습니다. 테러가 있거나 방사성물질 누출이 예상될 때 40데시벨 이상의 알림소리와 함께 발송됩니다.

현재 발송되는 안전안내 문자의 경우, 안드로이드 휴대전화에선 일반문자와 같이 알림음을 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폰은 재난문자 채널이 다양화되지 않아 ‘안전안내 문자’를 보내도 ‘긴급재난 문자’로 옵니다. ‘삐익’ 울리는 재난문자 알림음을 아이폰 사용자들이 수시로 듣게 되는 까닭입니다.

안전안내 문자 갈무리.

코로나19 확산이라는 긴급상황이 터진 만큼, 재난문자 발송이 늘어난 건 당연합니다. 문제는 양이 아닌 질입니다. 대부분의 안전안내 문자를 보내는 주체는 각 지역자치단체입니다. 재난문자 남발을 막으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총 세 차례에 걸쳐 각 지자체에 “확진자 동선 등은 적극적으로 안내하되 손 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 등 행동수칙 발송은 자제해달라”는 방침을 전했다고 밝혔습니다. 홍보 정도와 국민 피로도 등을 고려해봤을 때 굳이 안전안내 문자로 위생수칙을 알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어떨까요. 9일 하루에만 지자체 11곳이 ‘손 씻기’ 등 기초 위생수칙 내용이 담긴 문자를 보냈습니다. 6곳은 ‘확진자 없음’이라는 정보와 함께, 2곳은 개인위생 관리를 철저히 해달라는 내용만 보냈습니다. 이날 ‘확진자 없음’이라는 정보와 함께 개인위생수칙을 재난문자로 보낸 경북 안동시 관계자는 “확진자 추가 발생이 없다는 내용이 기본인데, 이렇게만 보내기 그래서 위생 수칙을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민 눈치’가 보여 별다른 정보 없이 개인위생 관리 내용만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달 22일 안전안내 문자를 보낸 뒤 이달 9일 처음으로 ‘개인위생 관리 철저’ 문자를 보낸 강원도 양양군 관계자는 “인근 속초시에서 매일 문자를 보내니까 지역 주민들이 양양군은 코로나19 관리 안 하고 손 놓고 있는 걸로 알더라. 안내를 해주면 좋겠다는 민원 때문에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속초시는 매일 ‘확진자 없음. 개인위생 철저 관리’ 안전안내 문자를 보내고 있습니다.

재난문자 대신 다른 소통방식을 택한 지자체도 있습니다. 재난문자의 경우 문자 하나당 글자수가 90자로 한정되고 기지국 단말기를 사용하는만큼 주변 지자체의 주민에게까지 불필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단 우려 때문입니다. 서울 서초구는 재난문자 대신, ‘서초구 코로나19 소식’이라는 문자를 통해 확진자가 발생할 때마다 1천자 가량 자세하게 확진자 동선을 설명합니다. 서초구 관계자는 “안전안내 문자는 인접한 5~6개 구에 함께 보내지기 때문에 구민들이 구와 관련된 정보를 선별해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자세한 이동동선 안내는 90자에 담기 어려워 따로 안내 문자를 따로 보내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경기도 성남시는 안전안내 문자에 카카오톡 채널 링크를 담아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있게 마련해 놓았습니다.

2005년 소방방재청이 각 통신사들과 재난문자 무상사용 협약을 맺었기 때문에 재난문자엔 예산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짜라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문자를 보내면 자칫 ‘긴급성’이라는 재난문자의 효용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교수(소방방재학)는 “현상 유지성 정보를 매일 받다보면 정말 중요한 재난문자가 와도 안 볼 수 있다. 시급성이 떨어지는 안전안내 문자는 최대한 발송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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