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카폴리의 세상엔 나쁜 대결 없죠"

권한울 2020. 3. 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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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된 애니메이션 로보카폴리
엄준영 로이비쥬얼 감독 인터뷰
144개국 수출의 힘은 스토리
누구나 어려울 때 도움주는
폴리·엠버같은 친구들 필요
10년전 영상 지금도 재밌다는
아들의 칭찬이 가장 기뻐
내년 시즌5 출동 기대하세요
지난 4일 서울 강남의 로이비쥬얼 본사에서 엄준영 감독이 로보카폴리 구조대 모형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한주형 기자]
"엠버, 내가 이상한 거야?" 캡은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다 몸에 진흙이 묻으면 바로 세차장으로 달려간다. 몸에 더러운 것이 묻는 게 싫어서다. 공놀이를 하던 중 세차장으로 달려가길 수차례, 더 깨끗이 씻으려고 무리하다 세차장에 몸이 끼는 사고가 난다. 캡을 구조하기 위해 출동한 로보카 구조대 엠버에게 캡은 묻는다. 자신이 이상한 것이냐고 말이다. "그렇지 않아, 캡. 하지만 더러워지는 것을 너무 신경쓰다 보면 재미있게 놀 수가 없잖아. 신나게 놀고 나서 씻는 건 어때?" 엠버의 제안에 캡은 '앞으로 그렇게 해보겠다'고 말한다. 애니메이션 '로보카폴리' 시즌2 가운데 '캡은 깔끔해' 편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이 장면에는 로보카폴리를 제작한 엄준영 로이비쥬얼 감독(부사장·44)이 자신의 큰아들에게 차마 해주지 못했던 회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수시로 신발에 들어간 모래를 터는 아들을 보고 엄 감독은 왜 아들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돌아다니는지,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했다.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회피하고자 비슷한 놀이는 참여하지 않았고 엄마는 답답하기만 했다. 만약 그때 '그럴 수 있어. 충분히 그 마음 이해해. 하지만 신나게 놀고 그다음에 씻어도 좋을 것 같아'라고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아들에게 미처 해주지 못한 그 말을 그는 엠버의 입을 빌려 캡에게 하고 있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2010년 방영을 시작해 시즌 4까지 이어지는 로보카폴리의 많은 에피소드에는 엄 감독의 추억과 아쉬움이 담겨 있다. 로보카폴리 캐릭터 탄생 10주년을 맞아 지난 4일 서울 강남의 로이비쥬얼 본사에서 엄 감독을 만났다. 올해 열아홉 살 된 큰아들이 '엄마 애니메이션은 지금 봐도 재밌어. 잘 만들었어'라고 말해줄 때 가장 기쁘다는 그는 슬하의 두 아들을 위해 로보카폴리를 만들었다. "로보카폴리를 기획할 당시 아이들이 세 살, 여섯 살이었어요. 아이들과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공격적인 특성을 유발하는 대결구도와 선악구도 콘텐츠가 많았어요. 4~6세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마음놓고 보여주고 싶은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변신 로봇, 자동차 등 남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충분히 반영하면서도 싸우기보다 누군가를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구조대'가 떠올랐다. 그가 기획해 제작한 로보카폴리는 섬마을 브룸스타운에서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을 위해 출동하는 구조대 이야기로, 경찰차 폴리와 소방차 로이, 구급차 엠버, 헬리콥터 헬리, 발명가 진 등 다섯 명의 구조대원으로 구성돼 있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 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돼 제작한 로보카폴리는 지난 10년간 144개국에 35개 언어로 방영됐다.

제작하면서 어려웠던 점을 묻자 엄 감독은 "매번 사고가 나야 하고, 사고에 이르는 과정에서 개연성이 있어야 해 그걸 찾아내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홈페이지에 '브룸스타운은 왜 그렇게 매일 사고가 생기냐'는 지적이 올라왔지만 그는 "콘셉트 자체가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사고가 나고, 이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라 사고를 안 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그의 사무실 책장에는 피규어와 동화책이 빼곡했다. 가정 형편상 미술대학 대신 성균관대 소비자가족학과에 진학했을 때도 작은 스튜디오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만드는 방법을 배우며 열정을 키웠다. 대학교 3학년 때는 창작 애니메이션 동호회에 들어가 상업용 애니메이션 시장에 발을 들였고, 여기서 함께 활동하던 지금의 남편과 1998년 '로이비쥬얼'을 창업해 우비소년, 치로와 친구들 등 인지도 있는 캐릭터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자신과 닮은 엠버를 가장 좋아한다는 엄 감독은 로보카폴리 10주년의 의미를 묻자 "작품을 만들며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저 역시 부모로서 함께 성장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로보카폴리 시즌4 방영 이후 5년간의 공백기를 깨고 오는 5월엔 '로보카폴리 쏭쏭뮤지엄'이, 내년에는 '로보카폴리 시즌5'가 방영된다. 엄 감독은 "소재 고갈도 심했고 언제까지 로보카폴리를 만들어야 하나 개인적인 고민도 있었다"며 "그 무렵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 엄마의 부재가 길었다는 것을 깨닫고 2년 반 정도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2018년 10월 복귀한 그는 "시즌5에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비롯해 다양한 연령대의 캐릭터가 등장하며 색다른 소재를 다룬다"고 했다.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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