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없다는 말 하루 1000번씩 한다"..약사도 폭발 직전

구은서/배태웅 2020. 3. 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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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마스크 1인 2장' 구매 제한 첫날..전쟁터가 된 약국
약사들 "손님들 쉼 없이 몰려와
정부 지침 확인할 틈도 없어요"
< 신분증 확인 > 전국 약국 2만3000여 곳에 마스크 중복구매 확인시스템이 적용돼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마스크 구매가 가능해졌다. 6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약국에서 약사가 중복구매 확인시스템과 신분증을 대조하며 손님의 마스크 구매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1500원짜리 마스크 사려면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고요?” “스마트폰에 운전면허증 사진이 있는데 이건 왜 인정이 안 됩니까.”

정부가 공적 마스크의 구매제한 조치를 시행한 첫날인 6일 오전 9시30분. 서울 종로5가역 인근 온유약국에서는 시민들과 약사 간 실랑이가 수차례 벌어졌다. 약사와 약국 직원들은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오늘부터 공적 마스크는 1인당 두 장만 살 수 있고, 신분증 확인을 하고 있다”고 소리쳐 안내했다.

9시35분부터 판매를 시작한 공적 마스크 100장은 10여 분 만에 동이 났다. 이날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하고 돌아간 강모씨는 “마스크가 부족해 외출할 일이 있으면 가족끼리 마스크를 돌려 쓰고 있는데 오늘도 못 구해 큰일”이라며 “주말엔 대부분의 약국이 문을 닫고 다음주 ‘5부제’가 시작되면 마스크 사기가 더 힘들어진다고 해서 걱정”이라고 호소했다.

일선 약국들 지침 몰라 혼선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벌어지자 정부는 지난 5일 마스크 수급대책을 내놓았다. 6일부터 약국, 농협하나로마트, 우체국 등에서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려면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중복 구매를 통한 사재기를 막기 위해서다. 기존 ‘1인당 5장’까지 가능했던 구매수량도 대폭 줄였다. 약국은 1인 2장, 농협과 우체국은 시스템 구축 전까지 1인 1장만 판다. 오는 9일부터는 출생연도에 따라 공적 마스크 구매일을 제한하는 ‘5부제’도 시행한다.

시행일 하루 전인 5일 오후 3시에 이 같은 대책이 발표되면서 일선 약국에서는 구매제한 지침을 제대로 몰라 혼선을 빚었다. 이날 찾은 서울 강남역 인근 약국 다섯 곳 중 세 곳은 “1인당 2장 구매제한은 9일부터이고, 지금은 1인당 5장까지 살 수 있다”고 잘못 안내했다. 약사 이모씨는 “마스크를 찾는 손님들이 약국에 쉴 새 없이 밀려들다 보니 뉴스를 보거나 대한약사회의 공지를 확인할 틈도 없다”고 했다.

종로 보령약국은 이날 오전 10시께 공적 마스크 판매 직전에야 마스크를 사러 온 시민들로부터 신분증을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듣고 확인 절차를 밟았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신분증 사진도 인정했다. 하지만 50m 떨어진 온유약국은 실물 신분증을 들고온 사람들에 한해 마스크를 판매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신분증 사진 인정 여부 같은 지침까지 마련하진 않았다”며 “약사회에서 정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2장씩 팔 물량도 없어요”

약사들은 공급량 부족이 마스크 품귀 현상을 빚은 근본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강남의 한 약국 약사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공적 마스크는 아직 구경도 못 했고 제 것도 구하지 못했다”며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공적 마스크를 약사들이 빼돌린 거 아니냐’고 따지는 손님들도 있다”고 했다. 그는 “대만은 1월부터 마스크 수출을 제한했는데 정부 대책이 늦은 감이 있다”며 “이번 수급 대책으로 상황이 나아지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찾아간 약국에는 문마다 ‘공적 마스크 없습니다’, ‘오늘분 공적 마스크 언제 들어올지 모릅니다’ 등의 안내문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공적 마스크 공급 시간과 물량이 불분명해 약사들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김모 약사는 “약사들은 폭발 직전”이라며 “하루에 1000번 정도 ‘마스크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손님의 항의를 듣는다”고 했다.

노인·어린이 마스크 쓰라더니…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인·어린이 등 건강취약계층과 그 가족들은 더욱 애를 태우고 있다. 직장인 유모씨(37)는 “유치원생 아들의 감염이 우려돼 마스크를 구하는 건데 아이를 약국에 데려가야 마스크를 살 수 있다니 말이 되느냐”며 “최소한 미취학 아동은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통해 대리구매를 가능하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 확진자와 가까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고 오염 여부를 판단해 재사용하라는 것이냐”고 했다.

정부가 노인, 어린이 등은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일반인과 똑같이 ‘1주 2장’ 사용을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마스크 사용 권고사항’을 보면 노인, 어린이, 임산부 등을 ‘건강취약계층’으로 규정하고 보건용 마스크 착용이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일회용 마스 크를 3~4일에 걸쳐 재사용할 처지에 놓이다 보니 일부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마스크에 이어 자외선 살균기가 품절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약국의 공적 마스크 판매 수량을 놓고 혼란이 생기면서 약사들 사이에서는 부지불식간에 법을 위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법조계에선 약사들이 1인당 2장씩으로 제한한 공적 마스크 수량을 더 판다고 하더라도 법적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고 보고 있다.

구은서/배태웅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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