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르기 못 잡는 새 급식시스템

2020. 3. 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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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교육부 ‘식품코드 표준화’ 위해 올 3월부터 도입… 영양교사들 “오류 많아 중단” 원해

2월10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교육부 신규 급식시스템 강행 규탄’ 기자회견.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제공

코로나19로 전국 초·중·고등학교가 개학이 연기된 상태인 지난 2월26일, 경기도 한 초등학교에서 영양교사로 일하는 정명옥씨는 3월 급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정 교사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급식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이날도 출근했다. 3월 식단 작성은 애초 겨울방학 전까지 완료됐어야 하지만, 정 교사는 그러지 못했다. 교육부가 올 3월 식단부터 도입한 새 급식시스템에 오류가 있어서, 항의 차원에서 새 급식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새 급식시스템을 강행하며 기존 급식시스템을 막았다. 결국 정 교사는 식단 작성을 못해 3월 급식분 발주가 미뤄졌다. 평소 일정이라면 이맘때 4~5월 식단을 고민해야 한다. 영양교사들의 급식 준비에는 ‘식단 연구-식단 작성-시장조사-가격 입력-품의-구매 업무-업체 선정-계약-발주-납품-검수-식품 입고-조리-배식’까지 약 14단계 과정을 거친다.

옛 시스템에서 정보 이관 안 돼 일일이 수작업

교육부는 “질 높은 식재료 사용 기반 마련과 식재료의 식품코드를 표준화”하기 위해 사업비 6억원을 들여 2015년부터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 새 급식시스템을 추진했다. 새 급식시스템은 올 3월 식단부터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와 특수학교에 도입된다.

학교 급식에 사용하는 재료는 각각 코드값과 영양량, 알레르기 정보가 있다. 영양교사들이 짠 식단 계획은 이 재료의 코드값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새 급식시스템은 코드값을 타 부처와 함께 쓸 수 있도록 표준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각 학교의 영양교사들은 기존 시스템에서 수기로 식품의 구체적 정보를 입력해왔는데, 교사마다 재료 입력 방식이 다 달라 업체와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껍질 제거’된 식품이라도, 교사마다 ‘껍질 벗긴 것’ ‘껍질 벗겨주세요’ 등 표현 방식이 다 달라 급식 식단에 관한 통계를 내기 어려웠다. 표준화로 타 부처 식품 정보와 연계하고, 식품 구매 정보 DB를 구축할 수 있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영양교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새 급식시스템에서 알레르기·영양량 등에서 오류가 많이 발견됐는데도 교육부가 도입을 강행하며 기존 급식시스템을 막아버린 탓이다. 영양교사들이 반발하는 지점은 새 급식시스템이 기존 시스템의 코드값과 호환되지 않고 정확하지 않아 영양교사들의 업무가 가중되고,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영양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양교사들에 따르면, 새 급식시스템에는 영양교사들이 기존 급식시스템에서 수년에서 십수년간 쌓아온 노하우(학생 식품 선호도, 학교 특성 등)와 식단 레시피(조리법)가 제대로 이관되지 않는다. 그래서 영양교사들은 각 재료의 29가지 속성(원산지, 재배 방법, 친환경 유무)을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 이렇게 수작업으로 입력해야 하는 식품 정보는 수천 가지, 요리도 수백 가지가 된다. 급식 담당자로서 새 학기 급식에 앞서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1년간 급식 계획을 짜고, 수업을 준비하고, 급식실 전반을 관리해야 하는데도 “백지 프로그램” 탓에 데이터 입력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전교조 영양특위 제공

땅콩호떡엔 콩 알레르기가 없다?

영양량과 폐기율에도 오류가 있다. 예를 들어 생선의 경우 마른 것과 생것의 영양량이 달라야 함에도 열량, 단백질, 칼슘, 철분 등에서 동일하게 표시됐다. 찰옥수수쌀은 전체를 먹기 때문에 폐기율이 ‘0’이어야 하는데 26%로 잡혀 있다. 폐기율은 한 재료에서 버리는 부분의 비율로, 폐기율에 따라 재료의 구매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백영숙 영양교사는 “얼마 전까진 옥수수알이 폐기율 ‘26’으로 표시됐는데, 교육부에 문제를 제기했더니 그 부분만 바꿨다. 아직 찰옥수수쌀은 못 본 모양이다. 교육부는 제기된 오류만 수정하는 식으로 땜질하고 있다. 얼마 전까진 학교 급식에 쓰지 않는 개고기, 거위간, 상어 등도 새 급식 품목으로 등록돼 있었다”고 말했다.

영양교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알레르기 정보 오류다. 각 학교들은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들에게 사전에 정보를 알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급식 식단표 메뉴마다 알레르기 유발 식품 18종을 함께 표기해왔다. 예를 들어 고추장돼지불고기의 경우 5·6·10(대두·밀·돼지고기)을 명기하는 식이다. 하지만 새 급식시스템 알레르기 정보 곳곳에는 오류가 보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영양교육특별위원회에 따르면, ‘땅콩호떡’의 경우 이름에 땅콩이 있음에도 ‘콩’ 알레르기 식품 정보가 빠진 채 1번 난류, 2번 우유, 5번 대두, 6번 밀, 13번 아황산염만 적혀 있다(위 사진).

정 교사는 우려의 말을 전했다. “돼지고기가 있는 음식이 닭고기로 표기되거나, 올해부터 새롭게 추가된 알레르기 식품 19번 잣의 경우에도 자동 표기가 안 돼 일일이 직접 입력해줘야 한다. 영양교사가 실수로 입력을 못하면 잣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에겐 치명적이다. 발견한 것만 이 정도일 뿐, 발견되지 못한 알레르기 정보 오류가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 영양교사들이 먼저 참고하는 시스템에서 발생한 알레르기 정보 오류가 자칫 걸러지지 않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입는 것이다.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해당 식품을 먹을 경우 유해작용으로 아나필락시스쇼크(과민충격)를 받기도 하는데, 2013년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우유가 든 카레 급식을 먹은 뒤 사망하기도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아나필락시스쇼크로 치료받은 19살 이하 환자 수는 2015년 250명에서 2018년 450명으로 4년 만에 1.8배 늘었다.

상황이 이러한 탓에 2월 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한 영양교사가 새 급식시스템의 문제를 언급하며 기존 급식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교육부는 알레르기 유발 정보 누락에 대해서 “새 급식시스템의 정보만 믿으면 된다는 게 아니라, 제조회사별로 가공식품에 포함된 알레르기 식품이 다르기 때문에 영양교사들이 확인한 다음 수정 보완해서 사용하라고 한 부분”이라며 “표준화된 식품코드에 알레르기 관련해서 누락된 정보가 있는 경우엔 3월 개학 전에 보완할 예정”이라고 했다.

“오류 바로잡을 때까지 도입 미뤄달라”

영양교사들은 교육부의 ‘식품코드 표준화’에는 동의하지만 현재 시스템에 오류가 많으니 학생들의 건강과 급식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새 급식시스템 도입을 멈춰달라는 입장이다. 새 급식시스템의 오류를 바로잡을 때까지 도입을 미루고 시범사업을 충분히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양교사들은 지난해부터 올 2월까지 국회와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와 집회 등을 이어왔다. 정 교사는 “지난해 11월엔 전국 영양교사·영양사의 40%인 약 4천 명이 교육부에 급식시스템 반대 서명을 제출했지만, 교육부는 다음날 기존 시스템 사용을 막으며 사업을 강행했다. 현장의 의견은 무시하는 처사”라며 “학생의 안전을 위협하는 새 급식시스템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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