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곳은 왜 없지" n년째 취업준비중.."생계비만 벌면 돼" n년째 알바중 [新인류의 新생활 백과사전]

파이낸셜뉴스 2020. 3. 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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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장미족 & 프리터족
장미족
"아름다운 내 스펙 일할 곳은 왜 없지"
n년째 취업준비중
프리터족
"자유롭게 살거야 생계비만 벌면 돼"
n년째 알바중

■장미족:겉으로는 화려한 취업 스펙을 지녔지만 장기간 미취업 상태인 구직자. 청년실업을 한탄하는 신조어.

"취업 준비한 지 오래됐어요. 곧 일할 수 있겠죠?"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한 윤준영씨(가명·34)는 '6년째 취업준비' 중이다. 윤씨는 1년간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토론대회, PR동아리 등 꾸준한 대외활동을 했다. 전공은 물론 전공과 무관한 인턴십도 6개월씩 두 번을 한 고스펙 취업준비생이다. 활동적인 윤씨는 과외 알바를 하며 모은 돈으로 짬짬이 해외여행도 다닌다. 윤씨는 "취업 뒤에는 여행도 마음대로 못 다닌다는 선배 조언에 따라 가끔 해외도 다니고 있어요"라고 했다.

윤씨는 작년 하반기부터 올 2월까지 70여개의 회사에 지원서를 제출해 2개 회사에서 면접을 봤다. 한 군데서는 합격통지서도 받았지만 눈높이에 맞지 않아 입사를 포기했다. 그는 "불안함과 조급함이 왜 없겠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쓴 돈과 노력을 생각하면 아직은 더 기다려 볼 생각이에요"라고 했다.

김보민씨(가명·32)는 석사·박사 학위까지 갖춘 소위 가방끈이 긴 취준생이다. 서울에서 대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3년 전 귀국했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실력은 물론 중국어능력 검정시험인 HSK 5급을 따는 등 언어 소통에도 전혀 문제없다. 한때 교수가 되기를 꿈꿨지만 교수 자리는 '하늘의 별따기'로 꿈을 접어야 했다.

취업전선에 뛰어든 첫 2년은 대기업만 바라보며 입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작년부터 눈을 낮춰 중소기업도 지원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면접을 보지만 여전히 최종합격은 쉽지 않다. 요즘은 자신의 고스펙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경우도 늘고 있어서다. 얼마 전 한 회사의 인사팀은 "훌륭한 역량을 갖추셨지만 저희에겐 너무 스펙이 높다. 아쉽지만 더 좋은 곳에서 일하길 기대한다"며 불합격 소식을 전했다. 김씨는 "이제는 회사에서 제 스펙과 나이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아요"라며 "박사학위를 이력서에서 빼야 하는지를 고민 중"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많은 사회초년생이 자신이 바라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청년 실업률(15~29세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의 비율)은 7.7%로 청년 실업자는 32만9000명에 달한다. 연령별 고용률도 20대 58.1%, 30대 76.7%로, 20대는 10명 중 4명이, 30대는 10명 중 2명 이상이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장미족이 늘어나며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공휴족(공모전, 자격증 취득, 인턴십 등 활동으로 쉬는 것을 두려워하는 취준생)' 등이 생겨나는 한편, 이들 중 일부는 '칩거족(학교수업 이외의 나머지 시간을 방에서 혼자 지내는 학생들)'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더 큰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지만 늦게까지 취업을 못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프리터족:'프리(Free)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로 취업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면서 딱 필요한 만큼의 생계비를 아르바이트로 충당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AM 6:00

"주거 문제만 해결된다면 프리터족으로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취업준비와 직장생활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알바를 하면서 적당히 용돈을 벌고 현재를 즐기는 '프리터족'도 늘고 있다. 취업했다가 4개월,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또 2년을 '버티듯' 일하다 퇴사한 유지성씨(가명·37)가 그런 경우다. 세 차례 퇴사를 겪은 유씨는 직장생활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판단, 퇴사해 지금은 알바생으로 일하고 있다. 더 이상의 취업준비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7년간 알바하며 생활하고 있다.

알람 소리에 깬 유씨는 반쯤 감은 눈으로 주섬주섬 옷을 입고 마스크를 챙겨 쓴다. 30분 후면 집 앞 편의점 알바를 시작할 시간이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마음은 그나마 직장출근보다는 가볍다고 느낀다. 과중한 업무와 매일 보는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이다. "알바는 위치도 내 맘대로 고를 수 있고 추가근무를 하면 시급도 확실히 챙겨 받아서 좋아요." 유씨는 업무 할당량 기복도 크지 않아 편하다며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PM 1:00

편의점 알바를 마친 유씨는 필라테스 센터로 향한다. 1년 전부터 건강도 챙길 겸 필라테스를 취미로 배우고 있다. 최근엔 지도자 과정을 이수해 자격증을 따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강사가 되지는 않더라도 배우고 성취를 느끼는 일에 재미를 붙였기 때문이다. 수강을 낮에 하다 보니 친해진 다른 수강생들은 대부분 주부다. 이들은 "언제 결혼할 거예요?" 묻지만 유씨는 "저랑 남자친구는 아이 낳을 생각이 없어서 결혼이 급하지 않아요"라며 웃을 뿐이다.

PM 3:00

집에 돌아온 유씨는 노트북을 켜고 앉는다. 오늘의 두 번째 알바는 영어학원 재택 타이핑이다. 올해 최저시급인 8590원을 받긴 하지만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장점도 있다. 주로 오후에 학원에서 연락이 오면 자료를 보고 영어 단어 시험지와 유인물을 만든다. 그리고 소요된 시간을 원장에게 알리면 된다. 영어 단어를 공부하는 효과도 있어 1석2조다.

PM 9:00

업무를 끝낸 유씨는 퇴근한 남자친구를 만나 하루를 마무리하며 수다를 떤다. 곧 이사를 가야 하는 유씨는 비싸진 서울 집값을 걱정하다가도 단순하고 합리적인 '미니멀라이프'가 좋다며 금세 표정이 밝아진다. "어떤 삶을 살든 내가 좋으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직업이 있을 때보다 다채롭고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어 오히려 재미있고 희망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유씨는 말한다.

인건비가 높은 일본은 프리터족이 수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과거 보수가 적어 프리터족으로 살아남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최저임금이 2017년(6470원)보다 32.8% 올라 8590원인 현재, 프리터족의 삶의 질은 높아지고 있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발표한 지난해 3·4분기 '알바소득지수'에 따르면 전국 평균시급은 8905원이다. 당시 최저임금인 8350원보다 555원 높다. 연령별로는 30대가 9358원으로 가장 높았고 40대(9327원), 50대(9164원)가 뒤를 이었다.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시급이 20대(8877원), 10대(8772원)의 시급보다 높은 것은 장기 프리터족에게 희소식이다. 올해 최저임금 8590원으로 알바를 했을 때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기준으로 받는 월급은 179만5310원(주휴수당 포함)이다. 여기에 4대 보험과 세금을 공제하면 실수령액은 162만832원이 된다. ming@fnnews.com 전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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