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목을 노린 자객, 형가

황희경 성균관대 초빙교수 2020. 2. 2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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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변하는 삶] 형가

[황희경 성균관대 초빙교수]

 
몇 년 전에 허우샤오시엔(侯孝賢) 감독의 <자객 섭은낭>이라는 영화가 상영됐다. ‘자객’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형가(荊軻)다. 진왕(천하를 통일하기 이전의 진시황)을 찌른 바로 그 형가 말이다. 그의 이야기는 <자객열전>에 실려 있는데 이 편은 전국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열전이다. 바로 다음 편이 진대(秦代) 인물전의 시작인 <이사(李斯)열전>이다. <자객열전>의 전체 분량은 대략 노자 <도덕경>과 같은 오천여 글자에 달한다. 사마천은 이 열전에서 다섯 명의 자객, 즉 조말, 전저, 예양, 섭정, 형가를 다루는데 형가에게 삼천여 자를 할애하고 있으므로 형가가 주인공인 셈이다. 

형가와의 만남
 
내가 <사기> 중에서 제일 먼저 읽은 곳이 바로 <자객열전> 중에 형가를 다룬 부분이다. 꽤 오래 전 일이다. 군 제대 후 복학하기까지 시간이 좀 있어 한문을 배우고 싶었다. 마침 모 연구원에서 개설한 한문강좌가 있기에 바로 신청했다. 한학자이신 이가원(1917-2000) 선생의 강의였다. 요즘도 한문을 배우려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수강생이 2명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당연히 폐강되었을 터인데, 선생은 학생도 많지 않으니 수업을 댁에서 하자고 하셨다. 감히 청할 수는 없지만 진정 바라는 바였다. 그나마 다른 한 명의 수강생은 잘 나오지 않았다. 선생 댁에서 혼자 배웠으니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교재는 선생께서 직접 편한 <대학한문신선>(大學漢文新選). 글을 쓰면서 확인해보니 소동파의 '적벽부'와 같은 다른 명문도 많이 배웠건만 유독 '형가'를 배운 기억만이 남아 있다. 제대 후 텅 빈 머리로 빠른 한문 해석을 따라잡느라 진땀을 흘리면서도 형가가 번오기를 찾아가 목을 구해오는 서늘한 대목, 형가가 궁정에서 진왕을 비수로 찌르던 박진감 넘치는 장면 등을 내가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몰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원래 천고의 문인들은 협객의 꿈을 꾸기 마련인지 형가열전을 읽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자객이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도 왠지 가슴이 뛴다. 
  
독서, 검술 그리고 술 
 
형가는 위(衛)나라 사람이다. 위나라는 공자가 천하를 주유할 때 가장 오래 머물렀던 나라다. 하지만 전국시대 말기엔 위(魏)나라의 부용국으로 이미 전락해버렸다. 형가는 독서와 검술을 좋아했다. 모국에서 등용되지 못하자 진나라의 위협 하에 놓인 조나라, 연나라를 떠돌면서 '노마드'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제후국을 떠돌면서도 맛집을 찾아다닌 것이 아니라, 늘 그곳의 호걸이나 현자들과 사귀었다. 연나라로 갔을 때 그는 개잡는 백정이나 축이라는 악기를 잘 타는 고점리와 어울려 시장 바닥에서 방약무인하게 술 마시고 돌아다녔다. 하지만 전광이라는 눈 밝은 처사는 형가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잘 대해 주었다. 

당시 연나라 왕은 무능한 인물로 "조나라의 장정들은 장평 싸움에서 다 죽고, 그들의 아이들은 아직 장성하지 않았다"는 율복의 야비한 계책을 수용하여 조나라를 공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하기는커녕 도리어 패배했다. 다섯 개의 성을 바치고 겨우 화친하였다. 국력이 거의 소진한 조나라에게조차 패배했으니 연나라의 실력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더구나 조나라 뒤에는 호랑이와 이리 같은 나라(虎狼之國) 진나라가 있었다. 이제 연나라는 "주린 호랑이(진나라)가 다니는 길목에 놓인 고기" 같고, "숯불 위에 놓인 기러기 털"과 같은 신세였다. 다급해진 연왕은 화친을 위해 태자 단을 진나라에 볼모로 보냈다. 태자 단과 진왕은 이전에 조나라에 볼모로 같이 잡혀 있었던 '인질 동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진왕은 과거 조나라에 볼모로 잡혔던 그 인물이 아니었다. 한 명은 천하통일을 목전에 둔 강대국의 제왕, 다른 한 명은 바람 앞에 놓인 등불격인 나라의 태자. 현격한 신분의 격차. 진왕은 그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 태자 단은 진나라를 몰래 탈출해 연나라로 돌아온다. 

전광과 번오기

태자 단은 복수를 다짐한다. 연왕조차도 강대국 진나라와 전쟁을 할 수 없는데, 약소국 태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무엇이 있을까? 자객을 보내는 비상한 방법 밖에 없었다. 그는 태부 국무가 추천한 전광을 찾아간다. 그는 한 때 '천리마'였지만 지금은 이미 '노둔한 말'로 변해버린 신세다. 하지만 눈만은 예리해서 평소 잘 사귀었던 형가를 추천한다. 그리고 형가를 찾아가 이런 사실을 전하고 자결한다. 굳이 죽을 필요가 있을까?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같이 싸우면 더 좋지 않을까?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달라는 태자가 말실수한 것일까?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형가로 하여금 거사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하고 격려하려는 목적이 컸을 것이다. 형가는 제 발로 태자를 찾아간다. 아니 전광을 생각하면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평소에 나를 알아준 사람에 대한 보답일 뿐만이 아니라 국가의 안위가 달린 문제였다. 

만나보니 태자 단은 다 계획이 있었다! 플랜 A: 진왕의 생포, 플랜 B: 그를 찔러 죽임. 형가는 처음엔 고사했다. 이게 쉽게 승낙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또한 승낙한다고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결국 승낙한다. 이제 문제는 진왕을 만나는 방법이다. 신중한 형가는 오랜 고민 끝에 진왕에게 줄 두 가지 ‘선물’을 떠올린다. 연나라의 지도와 번오기 장군의 목. 연나라의 지도야 태자 단에게 금방 구할 수 있지만 진나라에서 죄를 짓고 망명한 번오기 장군의 목은? 마음 약한 태자 단이 구해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형가는 번오기 장군을 직접 찾아간다. 그는 진왕을 죽일 자신의 계획을 밝히며 번오기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진나라에 남아 몰살당하거나 노비로 전락한 부모 형제의 원수를 갚고, 연나라의 근심을 없애는데 당신 목이 필요하다고. 번오기는 감사해하며 자결한다. 살아있는 목숨을 요구하는 사람이나 목숨을 흔쾌히 내주는 사람이나 모두 강렬한 사람들이다. 

실패한 형가

우여곡절 끝에 역수가에서 열린 송별회에서 형가는 비장한 노래를 부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바람소리는 소슬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가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결국 형가는 진왕을 대면하게 된다. 형가가 앞에서 번오기의 수급이 담긴 상자를 들고, 뒤에서는 조수 진무양이 지도를 든 상자를 들고 진왕에게 나아간다. 계단 앞에서 일찍이 13세에 살인한 경험이 있는 진무양도 벌벌 떠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지도가 펼쳐지자 드러난 비수(圖窮匕見)를 잡고 형가는 결국 진왕을 찌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실패한다. 

형가에 대한 평가

왜 실패했을까? 검술에만 매진하지 않고 독서와 검술을 병행했기 때문에? 태자 단이 재촉하는 바람에 형가가 역수 가에서 기다리던 친구와 함께 가지 못했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저런 원인을 거론하기도 한다. 형가를 신랄하게 비꼬기도 한다. <요재지이>의 저자 풍몽룡은 <섭정>이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평하고 있다. "진시황을 살해할 능력도 없는 주제에 너무 성급하게 떠나가 멸망을 자초한 감이 없지 않다. 진시황을 죽인다는 구실로 번오기의 머리를 함부로 베었는데 언제라야 그 원한을 설욕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천추의 한을 남겼으니 섭정의 비웃음을 받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는 다섯 자객 중에 섭정을 최고로 친다. 섭정은 자기를 알아준 엄중자를 위해 한나라의 재상 협루를 죽이는데 성공한 자다. 하지만 사마천은 성패를 가지고 영웅을 논하지 않는다. 또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의 말처럼 거사에 성공했었다면 진시황이 주인공이 되었을 텐데, 실패했기 때문에 형가가 주인공이 되었는지 모른다. "조말부터 형가에 이르기까지 다섯 사람은 이처럼 의기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의지는 분명하였고 자신의 뜻을 기만하지 않았다." 

형가는 비록 실패했지만 그가 진시황을 찌른 것은 자신을 알아준 사람에게 사적 보은을 위해서가 아니다. 또한 죽이고자 하는 목적과 죽일 대상의 급, 무엇보다 난이도가 다르다. 이 당시 진나라와 연나라의 실력의 차이는 계란과 태산에 비유할 정도였기 때문에 연나라가 진왕을 죽이려고 한 계책은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실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어차피 망할 바에야 앉아서 죽는 것보다 실패하더라도 찌르려는 의지가 고귀하다고 할 수 있다. 

<자객열전>을 끝으로 역사적 전국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현실의 전국적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언제 대동의 세계가 도래할 것인가.  

황희경 성균관대 초빙교수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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