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통보받은 대구 확진자..버스·지하철 타고 남양주까지

이진한 2020. 2. 2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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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자 수만명 추정되지만
인력부족으로 관리 사각지대
격리자 몇명인지 집계 안돼
국회 뒤늦게 처벌기준 강화

◆ 코로나 공포 / 뻥뚫린 자가격리 시스템 ◆

지난 22일 첫 확진자(241번 환자)가 발생한 대전시는 며칠째 비상이다. 이 확진자가 보건당국의 자가격리 조치 이후에도 수시로 외출한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이 확진자는 지난 20일 보건당국 통지에 따라 자가격리 조치를 받은 뒤에도 대전 동구 자양동 친구 집 근처 생활용품점과 우체국 등에 들렀다. 대전시 관계자는 "확진자가 방문한 곳이 많아 지역 내 코로나19 확산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26일 코로나19 확진자가 1200명을 돌파하면서 접촉자, 의사환자(Suspected case·코로나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 등 의무적 자가격리자가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보건당국의 자가격리 관리 시스템이 사실상 마비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터져나오고 있다. 확진자를 파악하고 이들 동선을 추적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자가격리자들에 대해서는 보건당국이 통지만 할 뿐 감시·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랴부랴 보건소 인력 충원에 나선 곳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의 성숙한 보건의식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가격리는 감염병 노출 후 잠복기 동안 이동을 제한하고 다른 사람들과 분리된 공간에 머물게 하는 '대상자 격리 조치'의 일환이다. 역학조사관의 판단에 따라 코로나19 확진자가 증상을 보였던 시기(유증상기)에 2m 안에서 접촉한 사람, 확진자가 폐쇄 공간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기침을 한 경우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람 등에 대해 지역 보건소장이 자가격리 통지서를 발부하면 '마지막 접촉일로부터 14일간' 집에서 나오지 못한다. 또 의사 소견에 따라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는 의사환자도 자가격리 대상에 들어간다.

자가격리자는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지내야 한다. 격리 기간에 필요한 생필품은 지역 주민센터에서 파악해 대신 구매하고 전달하는데 자가격리자가 단기간에 급격히 늘어나면 이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보건소에서는 하루 1회 이상 자가격리자에게 연락해 발열·기침 등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유선으로 확인할 뿐 실제로 자가격리자가 격리 장소를 이탈했는지는 제대로 체크할 방법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가격리 수칙을 위반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2일 확진 판정을 받은 15번 확진자는 자가격리 지침을 어기고 바로 아래층에 거주하는 처제 집에서 식사를 같이했다가 처제가 확진 판정을 받기도 했다. 22일에는 부산에서 첫 확진 판정을 받은 10대 남성(200번 환자)이 자가격리 권유를 무시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00번 확진자는 인근 대형마트에 잠시 들렀고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남양주시에 따르면 72세 여성이 21일 대구 서부보건소에서, 이틀 뒤인 23일 질병관리본부에서 자가격리 대상자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두 차례 받았지만 22일 대구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춘천터미널에 도착한 뒤 다시 전철을 타고 딸이 사는 남양주 화도읍에 간 것으로 파악됐다.

자가격리 대상자를 감시하기 위한 인력이 부족하고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접촉자 판별까지 시간이 걸려 자가격리자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란 사실상 역부족한 상황이다. 26일 오전 9시 기준으로 전국에 의사환자는 4만4981명으로 집계됐다.

격리 장소 이탈이 적발된 자가격리자에 대해서는 최대 300만원까지 벌금이 부과된다. 처벌이 약하다는 여론에 따라 국회는 26일 처벌 수위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하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셀프격리'에 들어간 경우를 제외하고 강제로 자가격리에 들어간 경우 정부로부터 생활지원비를 받을 수 있지만 격리장소 이탈 등 격리 조치 위반자는 적발 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편 보건당국은 고의로 확진자를 방문하거나 코로나19 확진자 동선과 겹치는 시기의 영수증을 구해 자가격리 대상자 판별을 받고 이에 따른 생활지원비를 수급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자가격리 명령서를 받아야 하는 만큼 단순 영수증만으로 생활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며 "관련 법령에 따라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보겠다"고 밝혔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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