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광주 대광여고 교사들, 스쿨미투는 무엇을 남겼나

류인하 기자 2020. 2. 2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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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전 스쿨미투공동대책위원회 등 교육·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월 6일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교사에 의한 학생 성추행과 위장전입 의혹이 제기된 모 여중·여고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 연합뉴스

2018년 4월 창문에 포스트잇으로 ‘#With You’. ‘#Me Too’, ‘#We Can Do Anything’을 붙여 스쿨미투 촉발의 계기를 만든 서울 용화여고 사건이 벌어진 지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인천 인성여고·부원여중, 대전 서대전여고, 광주 정광고·명진고·경신여고·대광여고, 강원 애니고, 부산 성모여고·사직여고 등 수 많은 학교에서 스쿨미투가 터져나왔다. 학생들은 그동안 신고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교사들의 성비위 문제를 공론화했다. 학생이 신고를 할 수 없었던 사유는 다양하다. 학교생활기록부에 불이익이 갈까봐, 다른 교사들로부터 미움을 받을까봐, 함께 동참해주는 친구를 찾기 어려울까봐, 신고를 해도 가해교사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을까봐 학생들은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그러나 용화여고 스쿨미투 이후 학생들은 적어도 피해사실을 감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쿨미투 2년이 남긴 작은 성과다.

설문조사로 남교사 절반 이상이 지목

그러나 의도치 않은 생채기도 남았다. 성폭력과 불쾌함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어 있던 교사들에 대한 문제다. 언어 성폭력으로 보기에는 애매한, 그렇다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기도 어려운 발언을 한 교사들에 대한 이야기다.

2018년 7월 26~27일 광주 대광여고는 학생들을 상대로 스쿨미투 전수조사를 벌였다. 2017학년도 2학년 12개 반 중 여교사가 포함된 교실 등 3개 교실을 제외한 9개 반 담임교사(남자)가 성비위 교사로 지목됐다. 학교는 3차례에 걸쳐 전체 40명의 남교사 중 절반이 넘는 22명(55%)을 성비위 교사로 분류했다. 그리고 이중 3명을 제외한 19명의 교사에게 직위해제 통보를 내렸다.

#학년부장이자 영어교사였던 ㄱ씨(49)는 2016년 8월 여름방학 방과 후 수업시간에 졸고 있던 피해자(당시 15세)의 여름 교복 가슴 부위 단추가 풀려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하고 다니면 남자친구가 좋아하니”라고 말한 혐의와 2017년 7월 영어수업 중 피해자(당시 17세)가 교복 안에 민소매 셔츠를 입어 비친다는 이유로 “요즘 유행이 시스루인가보다. OO야, 안이 다 보인다. 다음부터는 안 보이는 옷을 입어라”라고 말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법원은 첫 번째 혐의는 출석부를 확인한 결과, 피해자가 당시 여름방학 방과 후 수업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성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혐의 역시 “설령 그런 말을 했더라도 피해자의 교복 상태에 대해 지적하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으로 악의적이거나 가학적 성격의 발언이 아닌 점, 피해자에게 불쾌감이나 모욕감을 주는 수준을 넘어 정서적 학대행위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80명의 학생이 ㄱ교사를 위해 탄원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ㄱ씨는 2018년 8월 10일자로 직위해제 통보를 받은 지 1년 1개월 만인 2019년 9월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광여고 학교법인 흥복학원은 지난 2월 11일 ㄱ씨를 같은 학교 재단 서진여고로 인사 복귀발령을 냈다.

#같은 학교 국어교사인 ㄴ씨(58)는 2016년 3월 숙제검사 도중 피해자(당시 16세)가 질문에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어디 모자란 것 같다, 어디 아픈 애 같다”고 말한 혐의로 직위해제됐다. 검찰은 그러나 ㄴ씨에 대해 혐의없음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2016년 3월 2일은 개학일로 숙제검사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학교는 그러나 ㄴ씨 역시 설문조사에 이름과 해당 내용이 나왔다는 이유로 직위해제하고 사건을 경찰에 넘겼다.

#수학교사 ㄷ씨(60) 역시 2018년 4월 피해자(당시 16세)가 수업 시작종이 울렸는데도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천천히 걷자 “종 쳤으니 빨리 들어가”라며 막대기로 피해자의 엉덩이를 2번 툭툭 쳐 추행한 혐의로 직위해제됐다. 또 다른 피해자가 학교 건물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면서 실내에서 신는 것으로 보이는 슬리퍼를 신고 있자 “다음부터는 운동화 신고 다녀라” 하며 막대기로 엉덩이를 3번 툭툭 쳐 추행한 혐의도 포함됐다. 위계 등 추행혐의로 넘겨진 ㄷ씨에 대해 검찰은 혐의없음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학교 복직 허가하면서 별도 징계처분

학교는 이들의 복직을 허가하면서 별도의 징계처분을 내렸다. 1·2차 징계처분에 따라 ㄱ씨는 정직 1월, ㄴ씨는 정직 3월, ㄷ씨는 감봉 1월의 처분을 받았다. 무죄나 무혐의처분을 받았어도 교육청은 파면 또는 해임, 경징계로는 정직~견책 등을 학교에 요구했다. 학교는 무죄판결을 받은 교사는 정직 1~3월, 무혐의처분을 받은 교사는 감봉 1월~정직 3월 처분을 내렸다. 일부 교사들은 불기소처분을 받았음에도 해임된 경우도 있었다.

성비위로 직위해제된 이후 불기소처분을 받은 한 교사는 “나에게 ‘소청심사위원회를 가든 어디를 가든 대들지 말라’는 조언을 해준 분 말이 ‘(무혐의처분을 받고도 해임된 교사들은) 너무 학교에 대들었다.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는 것까진 좋은데 너무 억울하다고 대들었다’고 말했다”면서 “해임된 분들은 괘씸죄에 걸린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2월 17일 광주 모처에서 대광여고 ‘성비위 혐의’ 교사 6명을 만났다. 6명 중 2명은 기소돼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4명은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사안은 앞서 ㄱ~ㄷ씨의 사례와 유사했다. 복장지도·수업지도 과정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혐의 등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이제 학교로 돌아가고, 일부는 광주지방교육청 산하 공공기관 파견업무를 나갈 예정이다. 정년퇴임을 1년 앞둔 교사도 있었다. 이들은 “학교로 돌아가도 앞으로 어떻게 학생들을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교사는 “녹음기를 켜놓고 수업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광여고는 광주지역에서도 유명한 ‘명문고’로 분류된다. 여기서 ‘명문’이란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의미다. 특히 수시위주의 대입시스템 속에서 정시진학률이 수시진학률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학교다. 이 학교는 스쿨미투가 터지기 이전부터 혁신학교 지정 문제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2013년 무렵 이홍하 서남대 설립자의 사학비리를 도운 혐의로 당시 대광여고 교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광주시교육청(장휘국 교육감)은 유영식 광주교육정책연구소장을 대광여고 교장으로 파견했다. 유영식 교장은 취임 이후 대광여고가 혁신학교로 지정될 수 있도록 절차를 밟던 중 졸업생과 학부형들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접은 바 있다.

복귀 교사들 30시간 교육 받아야

광주시교육청은 “대광여고는 문제가 많은 학교였다”고 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2월 18일 전화통화에서 “대광여고는 전교생 900명 중 700여 명이 전수조사에서 비위교사를 써냈다”면서 “대광여고는 사학비리를 저지른 재단 소속 학교로 학교 문화에 특수성이 있다. 오래전부터 교사들이 문제가 되는 언행을 하고도 죄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학교”라고 말했다. ‘단순히 설문조사만으로 악의적으로 없는 사실을 만들어 적은 학생과 실제 피해를 입은 학생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었나’라는 질문에는 “700명 넘는 학생들이 설문조사 답변을 했으니 얼마나 겹치는 것들이 많았겠나. 30~40건씩 겹쳐서 진술이 나오니 크로스체크가 될 정도였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학교로 복귀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이 두려움 때문에 경찰조사를 받지 않거나 법정에 서지 않아 무혐의, 무죄가 됐을 뿐이다. 학생들은 당시 교육청에서 파견한 조사원들에게 교사들의 비위사실을 진술했기 때문에 형사벌로 무죄 또는 무혐의가 나왔어도, 행정벌로서는 징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평소 괜찮은 교사로 알려진 교사 중에도 성비위 교사로 몰린 경우가 있는데 ‘저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 자체가 피해자에게는 2차 가해를 하는 것일 수 있다”고도 했다.

대광여교 학교법인 흥복학원은 또 지난 1월 복귀하는 교사들에게 ‘성비위 징계 교직원 재발방지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총 30시간의 성인지 감수성 훈련 및 성평등한 조직문화, 피해자 공감하기 등의 교육을 이수할 것을 통보했다.

광주지역 스쿨미투는 2019년 중반 이후 잠잠해진 상태다. 스쿨미투 변론을 맡았던 광주지역 변호사들은 “8~10개월째 스쿨미투 관련 새로운 사건의뢰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쿨미투는 끝나지 않았다. 학교로 돌아가는 교사들과 남아 있던 교사들에게는 여전히 많은 숙제가 있다. 법은 무죄라고 해도 도덕적으로 무죄가 맞는지는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8년 11월 3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전국청소년행동연대 ‘날다’ 등이 주최한 ‘스쿨미투’ 집회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교육 당국의 책임있는 자세와 대책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가해교사로 분류돼 형사입건됐던 교사들은 자신의 언행에 죄가 없음을 밝히는 데에만 노력했을 뿐 자신의 언행을 돌아볼 기회는 제공받지 못한 것이 현재의 법제도가 가지는 맹점”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학생들의 인권의식·인권감수성은 매우 높은 수준인 반면 교사들의 인식은 학생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교육 문화 안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교육을 정책적으로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스툴미투 형사처벌이 능사일까

스쿨미투로 신고된 모든 사안을 형사처벌로만 가져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법조계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학교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생략된 채 지목된 가해교사를 무조건 격리하고, 사법기관으로 넘기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처벌위주의 분위기 속에서는 교사 스스로의 반성과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광주지법 형사12부(정재희 부장판사)는 지난 2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영어교사 ㄹ씨(62)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동에 대한 훈육이나 지도 과정에서 불쾌감이나 모욕감을 줄 수 있는 언사는 학교에서 쉽게 발생할 수 있을 것인데 이를 무턱대고 정서적 학대행위로 의율할 경우, 교사의 부적절하거나 비윤리적인 언사가 문제될 때마다 도의적인 비난이나 교내에서의 징계책임을 넘어 형사책임과 더불어 취업제한을 통해 교사의 신분까지 박탈할 수 있게 되므로 그 적용에 있어서 매우 엄격하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성비위 의혹 교사들 변론 강성두 변호사 “수사기관에 곧바로 넘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광주지역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변호사들 몸값이 많이 올라갔다”는 말이 퍼졌다. 스쿨미투는 서울 용화여고에서부터 시작했지만 가장 많은 성비위 교사가 적발된 지역은 인천과 광주였다.

2월 20일 기준으로 2018년 당시 전수조사로 적발된 광주지역 중·고교 스쿨미투 성비위 교사는 54명을 넘어선다(일부 학교 교육청 비공개). 이중 광주 명진고와 광주 대광여고는 각각 16명, 19명이 당시 가해교사로 분류, 직위해제됐다. 명진고는 16명 중 1명이 기소되고, 15명은 불기소 결정이 내려졌다. 반면 대광여고는 가해교사로 분류된 19명의 교사 가운데 9명이 기소됐다. 경찰조사 단계에서부터 변호사 조력을 받은 교사들까지 포함하면 광주지역 변호사 업계가 한때 ‘성업’했다는 말이 아예 빈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일도 아니다.

강성두 변호사(51·이우스)는 광주지역에서 스쿨미투 성비위 의혹 교사들의 변론을 많이 맡은 변호사 중 한 명이다. 2018년에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선정한 우수 변호사 11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강 변호사는 <주간경향>과의 전화통화에서 “대광여고 소속 일부 성비위 의혹 교사의 사건을 맡기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언론보도를 보며 ‘저런 미친X들이 다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성비위 사실이 명확한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가 섞여 있었다고도 했다.

-광주지역 스쿨미투 사건의 특징이 있었나.

“무죄판결을 받았거나 불기소처분을 받은 의뢰인들은 젊은 교사가 아니라 대부분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이었다. 내 나이대이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꼰대’들이다. 교단에 20~30년씩 섰던 교사들이 이번 스쿨미투에서 많이 성비위 교사로 분류됐다. 한마디로 학교에서 체벌하는 게 당연하던 시절을 살던 나이든 사람들인 셈이다. 우리 때만 해도 공부 못 하는 학생은 교사가 주먹으로도 때리던 시절 아니었나. 상담을 해보면 그런 의식이 내재된 분들이 많았다. ‘교육자로서 학생이 어긋나는 것 같으면 엄하게도 좀 할 수 있지’ 하는 생각 말이다.”

-정서학대·아동학대도 이번 스쿨미투에 다 포함됐던 건가.

“이런 의뢰인도 있었다. 체육교사인데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는 도중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니까 학생들이 ‘체육수업하기 싫어요’라고 한 거다. 그러면 그냥 교실로 들어가 수업을 해도 되는데, 이 의뢰인은 ‘이놈들아, 이 정도 가지고 수업을 안 하긴 뭘 안 하냐’라며 그냥 수업을 한 거다. 그 외 몇 건이 설문조사 과정에서 나왔고, 직위해제됐다가 최종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학생들에게 강압적으로 수업을 했다면 학교 차원에서 문제삼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형사처벌로 나아갈 사항인지에는 의문이 있다.”

-그럼에도 실제 성비위 교사들도 걸러진 계기가 되지 않았나.

“분명 일부 교사들은 문제가 있었던 것은 맞다. 다만 모든 교사를 동일선상에 집어넣고,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일괄적으로 직위해제를 하는 게 옳은지는 의문이다. 내부 징계는 건너뛴 채 설문지에 이름이 나온 모든 교사를 곧바로 수사기관에 넘기는 것이 과연 교육적으로도 옳은 일일까. 이에 대해서는 교육당국 스스로 차분히 고민할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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