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스포츠] 수원 팬들은 왜 '이니에스타 유니폼'을 걱정했을까

이준희 2020. 2. 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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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규정에 홈·원정팬 좌석 구분 엄격
상대팀 선수 유니폼 입었다면 원정석에 앉아야
1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과 비셀 고베의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원정석에 자리 잡은 일본 축구팬들이 경기를 기다리고 있다.

19일 수원 삼성과 비셀 고베의 경기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36·비셀 고베)의 스타성 등에 힘입어 1만7372명이 찾았다. 그러나 흥행대박에도 마음을 졸인 수원 팬들이 있었다. ‘입장객 가운데 자칫 이니에스타 유니폼을 입은 이가 수원 홈팀 응원석에 앉으면 어쩌나’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축구는 홈과 원정의 구분이 엄격한 스포츠다. 특히 축구장은 ‘홈팀’을 위한 공간. 오해와 달리 중립석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원정석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홈팀의 응원석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홈 클럽은 상대 클럽을 응원하는 관중을 위해 경기장 전체 좌석 수의 5% 이상의 좌석을 배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그 외에는 모두 홈 팬들을 위한 좌석이라는 뜻이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의 홈, 원정팀 응원석 배치도

이날 이니에스타는 비셀 고베, 즉 원정팀의 선수였다. 이니에스타의 비셀 고베 유니폼을 입은 팬뿐만 아니라, 전 소속팀 FC바르셀로나의 이니에스타 유니폼을 입은 사람도 원정석으로 가야 한다. 이는 아시아축구연맹(AFC) 규정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한 축구 팬은 “토트넘과 아스널 경기 때 손흥민의 전 소속팀 레버쿠젠 유니폼을 입고 아스널 응원석에 앉으면 안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팬들은 혹시 모를 충돌을 막기 위해 직접 홍보에 나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글을 올려 “이니에스타 유니폼을 입은 팬들은 원정석으로 가야 한다”고 알렸다. 구단도 이러한 사실을 미리 전파했고, 경기 전 수차례 안내방송을 통해 같은 내용을 공지했다. 이런 노력 덕인지 이날 홈팀 응원석에서는 이니에스타 유니폼을 입은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수원 구단 관계자는 “이 제도의 기본 취지는 불필요한 충돌을 막는 것”이라며 “이니에스타 선수의 플레이에 환호하고 싶은 팬 입장에서도, 원정석에 갔을 때 더 마음껏 경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양 팀 다 응원하지 않는 경우라면, 어디에 앉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홈팀 응원석일 경우, 상대팀 선수에 대한 응원은 지양하는 게 좋다.

이수완씨가 입고 온 바르셀로나 시절 이니에스타의 유니폼. 스페인에 가서 직접 이니에스타의 사인을 받을 정도로 열성 팬인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온 글을 보고 원정석을 예매했다.

원정석에서 만난 이니에스타 팬들은 이런 규칙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수완(22)씨는 “팬들이 올린 글을 보고, 원정석을 예매했다”며 “불필요한 갈등을 막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지키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진호(31)씨는 “주로 해외리그를 보러 다니는 편인데, 외국에서는 더 심하게 홈과 원정 응원석을 분리한다”면서 “이런 사실이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홈팀 응원석과 원정팀 응원석의 구분은 한국만의 문화가 아니다.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도 마찬가지. 잉글랜드에선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피치 사이드에 원정석을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지만,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안전 문제를 이유로 이를 거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보통 골대 뒤 경기장 한쪽 면을 원정석으로 두는 것과 달리 해외리그는 관람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외진 자리를 주는 경우도 많다.

마스크 쓰고 경기장 찾은 축구 팬들. 수원/연합뉴스

한국은 국내리그보다 국가대표팀과 해외리그의 인기가 많은 곳이다. 하지만 이런 경기는 관람이 어렵기 때문에 축구를 직접 관람하는 인원이 전체 축구 팬에 비해 적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의 인기에 비해 축구장 관람 문화도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스타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중국이나 일본도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비셀 고베 팬 하야토 유노키(21)씨는 “이니에스타 방문을 계기로 케이리그의 멋진 경기를 보러 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이니에스타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홈·원정석 구분을 무시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하라 요스케(20)씨도 “일본에도 이니에스타 팬이 많기 때문에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며 “그런 행동은 기존 팬들에게 무례한 행동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비셀 고베 팬들은 “이니에스타 영입으로 팀에 대한 관심이 늘었지만, 일부 이니에스타 팬들이 고베 선수들에게 무례한 말을 하는 등 문제를 겪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리그의 규모는 달라도, 팀을 사랑하는 팬들의 마음은 어느 곳에서나 같은 무게였다.

수원/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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