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느리게 보는 제주의 서쪽
국내 여행 일번지답게 볼거리 많은 제주를 여행하는 방법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제주올레길 걷기에서 한 달 살기까지. 제주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이번엔 며칠 동안 서쪽만 살펴보는 건 어떨까? 이호테우해변에서 환상숲곶자왈공원을 지나 중문까지, 볼거리 많고 꽃 내음 물씬 풍기는 제주 서쪽 여행을 소개한다.
제주 여행 코스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제주공항에 도착하면 제주시는 들르지도 않고 곧바로 1100도로(1139번)를 타고 달려 중문이나 서귀포에 머물다 성산일출봉 한 번 들렀다 오는 코스가 일반적이었는데,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이 개발되면서 제주 여행 풍경도 확 변했다.
변화의 주역 중 첫 번째는 제주올레길이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425㎞에 걸친 26개 코스가 만들어졌고, 해마다 길을 걷는 이들이 늘어나 5000여 명이 완주하고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완주는 못 해도 잘 조성된 제주올레길을 걷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렌터카만 생각하던 제주 여행의 색깔이 달라졌다. 두 번째는 제주로의 이주 열풍이다.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제주의 속살을 보게 된 이들이 진짜 제주의 매력에 빠져 이주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2010년부터 시작된 제주도 이주 열풍은 2010년대 중반에는 해마다 평균 1만여 명을 넘을 정도로 기현상을 보이다가 2018년부터 급하향세지만 새로운 일을 찾아 제주로 온 이들이 의욕을 갖고 시작한 사업들로 기존 제주와는 다른 스타일의 문화적 공간들이 늘어났다. 세 번째는 여행 트렌드 중 하나로 등장한 ‘한 달 살기’의 최적지가 국내에서는 제주도라는 점이다. 머물며 살아 보는 체험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제주는 한 달 정도 머물기에 환경적으로나 비용적으로 적당한 곳으로 알려졌다. 연령에 상관없이 제주에서의 한 달 살기를 위한 정보는 매일매일 급증하고 있다.
그렇게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용두암과 만장굴로 대변되던 제주는 이제 이효리가 살던 애월, 올라가 볼 만한 새별오름, 녹차밭이 아름다운 오설록티뮤지엄, 동백이 아름다운 카멜리아힐, BTS카페 공백 등 다양하고 독특한 개성의 전문적인 콘텐츠로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전과 다른 제주, 가장 먼저 봄이 오는 따뜻한 제주를 만나기 위해 이번에는 자연 풍광이 좋고 문화 시설이 많은 서쪽만 보기로 했다. 제주공항에서 출발해 일주서로(1132번)를 타고 서쪽 해안을 따라가다가 중산간서로로 중문까지 가서, 사흘째에는 평화로를 타고 제주시로 돌아오는 2박 3일 코스다.
▶#1 일주서로 따라가는 서쪽 해안 드라이브
산책을 마치고 나와 이쯤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름다운 금능해안을 지나면 이국적인 선인장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마을이 나타난다. 월령리 선인장마을이다. 바닷가에 난데없이 선인장 군락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연유를 캐 보면 멕시코에서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밀려온 선인장 씨앗이 제주의 바위틈에서 싹을 피웠는데, 제주 바위들이 바람을 막아 주니 점점 증식해서 지금의 자리를 잡았다는 것. 손바닥 모양의 선인장에서 노란 꽃이 피어 겨울이 되면 보랏빛 열매를 맺는데 이것이 건강 식품으로 유명한 백년초다. 돌담 옆에 심어 놓으면 선인장 몸체는 뱀이나 쥐가 들어오지 않게 막아주고, 열매는 소득을 올려 주니 월령리 사람들은 굴러 들어온 선인장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고개를 들어 바다를 보니 멀리 커다란 풍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정확한 이름은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지만 신창리풍차해안으로 더 알려졌다. 바람 많은 제주, 바다로 둘러싸인 섬. 바람 불어 살기 힘든 섬이지만 바람을 에너지로 바꾸기 위해 2004년에 풍력 발전기 10기를 신창리 앞바다에 설치했다. 10기의 풍력 발전기가 윙윙 돌아가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대형 바람개비 형상이라, 지나던 이들이 하나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더니 이제는 제주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포토 스폿이 되었다. 바다 위에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투명할 정도로 맑은 제주의 바닷속을 보며 제주 바다의 바람을 맞으며 걷노라면 눈도 마음도 시원해진다.
▶ #2 매화, 수선화, 유채꽃, 동백꽃 찾아가는 플라워 투어
제주의 봄을 상징하는 노란 유채꽃을 보려면 산방산으로 달려가는 것이 좋다. 1월부터 3월까지 제주 전역에서 유채꽃을 볼 수 있지만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트리는 곳이 산방산 주변이다. 용머리해안 쪽에서 유채꽃을 봐도 좋지만 덕수초등학교에서 산방산 가는 길인 사계로 114번길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노란 유채밭을 만날 수 있다. 주변에 큰 건물이 없어서 고스란히 산방산을 배경으로 유채꽃밭 인증샷을 찍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밭 안으로 들어가려면 입장료 1000원을 내야 한다.
겨우내 피어 있던 동백은 이제 서서히 쇠락해 꽃송이채 바닥에 툭툭 떨어지고 있지만 한라산 중산간 언덕의 카멜리아힐은 동양에서 가장 큰 동백 수목원답게 2월에도 여전히 동백을 꽤 볼 수 있는 곳이다. 겨울이면 6만여 평 부지에 500여 품종의 동백 6000여 그루가 꽃을 피운다. 다양한 모양과 빛깔의 동백꽃이 피어 있는 소온실과 대온실, 유럽과 아태지역 동백숲이 따로 있고, ‘소녀시대’ 윤아가 광고를 찍었다는 새소리바람소리길 등 다양한 테마로 조성된 길을 걷다 보면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 버린다. 새로 단장한 가을정원에는 바람 센 제주의 억새를 가득 심었고, 사이사이에 길쭉한 거울을 여러 개 설치해 저녁 햇빛을 받으면 눈부시게 반짝이는 억새 밭 풍광이 매력적이다.
한림공원 주소: 제주시 한림읍 한림로 300 / 운영 시간: 오전 8시 30분 ~오후 5시 30분 개표 마감
입장료: 성인 1만2000원, 어린이 7000원
카멜리아힐 주소: 서귀포시 안덕면 병악로 166 / 운영 시간: 오전 8시 30분~오후 6시 / 입장료: 성인 8000원, 어린이 5000원
▶ #3 제주의 생태를 배우는 에코 투어
중문관광단지 초입의 변전소 자리에 2019년 11월, 제주의 생태 문화를 보기 쉽게 표현한 생태 문화 복합공간인 ‘더플래닛’이 문을 열었다. 전시관은 제주에 살고 있는 멸종 위기종인 동박새와 종다리 등을 캐릭터로 만든 ‘버디 프렌즈 캐릭터 전시관’과 지구의 자연을 주제로 한 ‘생물 다양성 전시관’, 생태 과학 예술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생태 아카데미’로 구성되어 있다. 캐릭터 전시관에서는 다섯 캐릭터 인형과 제주의 자연을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상상해서 그린 ‘거멍숲 속 그림’ 그리고 팬톤 컬러칩처럼 새의 깃털을 형상화해서 만든 컬러풀한 ‘깃털숲’이 가장 인기다. ‘더플래닛’을 검색하면 깃털숲에서 찍은 아이들 사진이 무수하게 올라온다. 두 번째 전시관인 생물 다양성 전시관에는 한라산이 고향인 구상나무 이야기를 형상화한 ‘쿠살낭 이야기’ 공간, 바닷물 한 숟가락을 미세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영상과 철새들을 인도해서 함께 하늘을 나는 비행사 크리스찬 뮬렉의 영상을 상영 중인 영상관 등이 있고, 46억 년 지구의 역사 등을 인포그래픽으로 일목요연하게 표현한 공간 등이 인상적이다.
환상숲곶자왈공원 주소: 제주시 한경면 녹차분재로 594-1
운영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일요일 오전 휴무) / 입장료: 성인 5000원, 어린이 4000원
더플래닛 주소: 서귀포시 색달동 천제연로 70 /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 입장료: 성인 1만 5000원, 어린이 1만 원
▶ #4 독특한 건축물을 찾아보는 건축 투어
한라산 중산간 서쪽, 산록남로에서 만나는 성이시돌목장에도 의미 있는 건축물이 있다. 성이시돌목장은 청정 제주의 초지에서 방목해 얻은 유기농 우유로 유명한데, 요즘은 사진을 찍으러 오는 이들로 관광 명소가 되었다. 1950년대에 제주에 온 아일랜드인 맥그린치 신부는 지역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신자들과 함께 축산업을 시작하고 요양 병원을 세우는 등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고 선종했다. 이 맥그린치 신부가 고향 아일랜드에서 배운 건축 기술로 지역민들과 함께 목장에 임시 거처로 지은 집이 ‘테쉬폰’이란 이름의 건물이다. 2000년 전부터 바그다드 근방에서 지어졌던 형태의 건축물로, 텐트 모양으로 둥글게 틀을 세운 건물에 억새와 시멘트를 덧바르고 바닥에는 온수 난방까지 갖추었다. 예전에는 건축학도나 찾던 곳이지만, 160만 평의 상큼한 초록빛 초지와 빛바랜 노란 건물이 어우러진 신비한 분위기의 사진으로 일반인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입구의 목조 주택은 제주 유기농 우유와 유제품을 판매하는 카페 ‘우유부단’이다.
추사관 주소: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 운영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테쉬폰 주소: 제주시 한림읍 산록남로 53
▶#5 내 손과 혀로 경험하는 제주의 맛 체험
▷오설록티뮤지엄의 프리미엄 티 클래스
주소: 서귀포시 안덕면 신화역사로 15 / 영업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주요 메뉴: 녹차아이스크림 5000원, 그린티 클래스 1만9500원, 프리미엄 티 클래스 2만8500원
▷아날로그감귤밭의 한라봉 따기
주소: 제주시 해안마을8길 46 / 영업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 주요 메뉴: 한라봉 체험 7000원(가져가는 경우 1㎏당 6000원), 무농약 감귤주스 6500원, 텐저린라테 6000원
▶ #6 제주 서쪽 끝에서 만나는 맛집
▷바닷가 예쁜 카페, 니모메 빈티지 라운지
주소: 제주시 일주서로 7335-8 / 영업 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 주요 메뉴: 아메리카노 4500원, 아인슈페너 7000원, 레몬케이크 7000원
▷삼단찬합 도시락 맛집, 카페차롱
주소: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로 3 / 영업 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6시(월, 목 휴무)
주요 메뉴: 삼단차롱 1만9800원, 카모마일차 6000원, 플랫화이트 5500원
▷화덕 피자 맛집, 페를로
주소: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회관로 74번길 33 / 영업 시간: 오후 12시~오후 8시 / 주요 메뉴: 살시차 깔라마타 피자 2만1000원, 문어보말파스타 2만2000원, 시그니처 뇨끼 1만9000원
▶ #7 제주의 고샅길과 계곡에 자리한 조용한 숙소
▷자연 속 쉼터, 네이처트레일
주소: 제주시 한림읍 홍수암로 30-5 / 숙박료: 11만~15만 원(조식 포함)
▷비밀의 숲, 히든클리프호텔&네이쳐
주소: 서귀포시 예래해안로 542 / 숙박료: 15만 원 선부터(콤피 윈터 프로모션은 2월29일까지, 조식 등 포함 21만~24만 원)
[글과 사진 신혜연(헤이컴 대표, 콘텐츠 기획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17호 (20.02.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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