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야생동물 식습관만 탓할 일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0. 2. 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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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제공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COVID-19)와 함께 심각한 차별과 혐오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인도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천행 여객기의 승무원이 한국인에게 ‘잠재적 보균자’라는 이유로 기내 화장실 사용을 제한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런데 어떤 면에선 우리도 떳떳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국인의 중국인에 대한 차별도 만만치 않다. 드러내놓고 중국인 출입을 거부하는 식당과 상점도 있다. 중국에서는 우한 사람들이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의 야생동물 식용 전통도 도마 위에 올랐다. 야만적이고 비위생적인 음식문화가 문제라는 것이다.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우한의 화난수산물도매시장에서 식용으로 거래되는 박쥐‧천산갑(개미핥기)과 밍크에서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변종 코로나바이러스의 RNA 염기서열이 박쥐와 79.5% 닮았고, 천산갑과 99% 일치한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2003년의 사스(SARS)도 광둥성의 박쥐와 사향고양이를 거쳐서 전파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야생과의 단절은 불가능한 꿈

중국에 야생동물을 식용으로 먹는 ‘예웨이’(野味) 전통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박쥐만 먹는 것이 아니다. 뱀·도마뱀·오소리·고슴도치·밍크·사향고양이·쥐·여우·악어도 먹는다. 심지어 코브라와 같은 맹독성의 독사를 말린 백화사를 약재로 쓰기도 한다. 오죽하면 중국에서는 ‘발과 날개가 달린 것은 책상과 비행기 빼고 모두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중국의 식용 야생동물 시장 규모가 1조 7천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러 그런 먹거리를 찾아가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야생동물의 식용 전통이 중국‧동남아시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야생짐승을 잡아먹는 사냥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수단이었다. 안정적인 식량 확보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농경목축 기술 덕분에 사정이 달라졌다. 그러나 사냥은 봉건시대 귀족들의 중요한 여가활용 수단이었다. 그리스와 로마의 귀족들은 거대한 저택의 동물원에서 사육한 이국적 동물을 식용으로 썼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에서 발견된 인류가 그린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 4만 3900년 전 그려진 것으로 작고 사나운 물소(오른쪽)와, 이를 사냥하는 6명의 작은 사람들(왼쪽 작은 그림들)을 묘사하고 있다. 네이처 제공

지금도 전 세계 거의 모든 문화권에 사냥의 전통이 남아있다. 유럽의 귀족들은 여우·메추리 사냥을 즐긴다. 영어에서 야생동물의 사냥이나 사냥 고기를 ‘놀이’를 뜻하는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전통 때문이다. 

우리도 야생동물과 자연산을 중국인 못지않게 좋아한다. 뱀을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개구리 알도 수난을 겪고 있다. 전국의 야산이 불법으로 설치해놓은 ‘덫’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도시를 떠나 깊은 산 속에서 고립 생활을 즐기는 ‘자연인’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오늘날 중국인이 즐기는 예웨이도 청나라의 전통이었다. 중국에서 식용으로 쓰는 야생동물의 도축이 선진국의 위생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의 경제가 나아지면 위생환경도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이다.

야생물물의 식용이 바이러스의 중요한 전파경로가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음식 자체보다 도축과 조리과정에서의 감염 위험이 훨씬 더 심각하다. 그러나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에게 감염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호흡‧침‧배설물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전파된다. 심지어 단순접촉만으로 전파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가축과 애완동물을 기르고, 철새 관찰을 즐기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야생(野生)으로부터의 바이러스 감염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없다는 뜻이다.

환경 파괴 때문에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야생동물과의 거리는 오히려 훨씬 더 멀어지고 있다. 인간 때문에 서식처를 잃어버린 야생동물이 모두 멧돼지‧너구리처럼 도심에 출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맹목적인 환경·생태주의가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야생동물이 뛰노는 자연을 노래하면서, 돌아서서는 야생동물과의 잦은 접촉을 탓하는 자세는 명백한 자가당착이다.
  
바이러스와의 숙명적인 공생

서울대병원 감염격리병동 의료진이 음압병동에 들어가기 위해 레벨D 방호복을 착용하는 모습. 서울대병원 제공

인간의 과욕 때문에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바이러스의 출현이 부쩍 잦아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류가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멸망할 것이라고 우기는 인공지능(AI)도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던 감염성 질병(전염병)은 대부분 자연 생태계의 당당한 구성원인 바이러스·박테리아·진균·기생충 때문에 발생한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정체불명의 역병(疫病)은 인류가 극복해야 했던 가장 어려운 난제였다.

바이러스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의 세포 속에 기생한다. 우리 몸에도 다양한 바이러스가 살고 있다. 모든 바이러스가 숙주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숙주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프로바이러스도 많다. 코로나바이러스도 박쥐나 천산갑과는 평화롭게 공생한다.

바이러스는 생물종 사이의 장벽을 비교적 쉽게 넘나들면서 서식처를 확장한다. 그렇다고 바이러스가 아무 생물에나 기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숙주의 면역체계를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는 절제된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새로운 숙주의 세포로 이사할 때마다 유전적 ‘변종’을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유전적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바이러스는 언제나 폭넓은 유전적 변신이 가능하다. 바이러스에게 유전적 변신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바이러스가 생태계의 다양성을 확대시켜준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바이러스가 의도적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면역체계가 새로운 서식처를 찾으려는 바이러스의 소박한 요구를 용납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긴다. 사람의 면역체계가 바이러스에 너무 겁을 먹어서 발생하는 ‘사이토카인 폭풍’이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바이러스가 더 독해진 것이 아니다. 강한 독성은 바이러스의 지속적인 생존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인구가 늘어나고, 이동이 잦아지면서 바이러스의 감염 기회가 늘어난 것이 진짜 문제다.

인류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언제나 패배했던 것도 아니다. 우리의 면역체계만으로 바이러스를 성공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공격적인 변종 바이러스는 인간의 집단지성과 과학기술에 의해 영원히 퇴출되기도 한다. 대항해 시대에 신대륙을 초토화시켰던 천연두는 18세기 에드워드 제너가 발명한 백신 덕분에 1980년에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2002년 중국의 광둥(廣東)에서 처음 출현한 사스 바이러스도 9개월 만에 퇴출됐다.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이러스의 지나치게 잦은 변신이 문제일 뿐이다. 그렇다고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하고, 감염경로를 파악하는데 유용한 PCR(중합효소연쇄반응)을 이용한 진단 기술도 있다. 감염자를 괴롭히는 증상을 관리하는 대증요법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음압(陰壓)병실도 있고, 효율적인 방호복과 소독제도 있다. 지역감염이 심각한 지역의 국민을 안전하게 데려올 수 있는 경제력과 국력도 갖췄다. 물론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지만, 슈퍼박테리아를 탄생시킨 항생제의 부작용을 걱정할 이유는 없어졌다.

바이러스 감염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숙명적인 과제다. 외부에 노출된 바이러스는 소독제로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생물의 세포 속에 있는 바이러스에게는 아무리 효과적인 소독제도 무용지물이다. 실제로 지나치게 청결한 위생 환경이 오히려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적인 ‘위생가설’도 있다.

홍콩‧싱가포르‧태국에 이어 일본도 지역사회 감염을 걱정하고 있다. 서울에서도 감염경로가 분명하지 않은 확진자가 등장했다.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무책임한 장밋빛 전망은 함부로 믿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철저한 방역대책이 필요하다. 중국 유학생들의 대거 입국도 걱정해야 하고, 대형 크루즈선의 입항 요구에 대한 인도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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