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로리 넘어지며 30여대 '쾅쾅쾅'.. "검은 연기" 터널안 아비규환
17일 오후 5시경 전북 남원시 사매면 순천∼완주 고속도로 전주 방향 사매2터널 사고현장 앞에서 만난 A 씨는 사고 상황을 이렇게 떠올렸다. A 씨는 “차들이 계속 부딪치고, 불이 나면서 연기가 쉴 새 없이 나와 무서웠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40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견인차 기사 B 씨는 터널 내부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차량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다 큰 사고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찌그러진 차량이 도로에 널려 있고 파편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폭격을 맞은 것 같았다고도 덧붙였다.
○ 탱크로리 추돌하며 화재 발생
사매2터널에서 사고가 난 건 이날 낮 12시 23분경. 한국도로공사가 공개한 폐쇄회로(CC)TV 동영상에 따르면 질산 1만8000여 L를 싣고 전주 방향으로 가던 한 탱크로리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다 비스듬하게 넘어졌다. 이 탱크로리는 넘어지기 직전 앞에서 접촉사고로 서행하던 승용차 3대 이상을 덮쳤다.
잠시 후 사고 지점 앞에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멈췄다. SUV 운전자는 대형 교통사고를 직감하고 비상등을 켜고 후진하며 빠져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뒤따라오던 다른 탱크로리에 받히면서 앞으로 상당 거리를 밀려갔다. 이후 빠른 속도로 따라오던 또 다른 탱크로리가 앞에 멈춰선 탱크로리와 추돌했다. 두 탱크로리 사이에선 불꽃이 튀었고 불꽃은 삽시간에 번져 차량 여러 대를 태웠다. 오후 11시 현재 탱크로리 기사 등 3명이 목숨을 잃었고 43명이 다쳐 인근 전주와 남원, 임실, 광주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 유해물질 싣고 다니는 대형 트럭
경찰과 소방당국은 대설특보로 많은 눈이 내리고 추운 날씨로 터널 안 도로가 얼면서 제동거리가 길어지고 뒤따라오던 차들이 제대로 정차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후 1시 남원에는 평균 5.6cm의 눈이 왔지만 풍악산 노적봉 인근의 사매면에는 이보다 많은 눈이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터널에 진입하기 전까지 차량들에 묻어 있던 눈이 터널 안에 떨어져 일부 구간이 살얼음 상태가 됐을 수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으나 새벽부터 눈이 많이 내려 평소보다 노면이 미끄러운 상태였다”며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차량이 흔들렸다는 운전자 등의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유해물질을 싣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탱크로리 등 대형 트럭은 ‘도로의 시한폭탄’으로도 불린다. 속도를 내는 도로에서 한번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날 사고도 탱크로리가 넘어져 터널을 완전히 가로막은 채 불이 나면서 사고가 커졌다. 또 탱크로리처럼 육중한 차량은 급정차하기 어려워 앞에 가던 승용차를 쉽게 덮쳤다. 소방당국과 환경부는 사고 현장 탱크로리 차량에서 누출된 질산에 대한 수거작업을 벌였다. 질산은 산화력과 부식성이 강해 인체에 매우 유해한 물질로 알려졌으며 누출량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날 사매1터널 남원 방면에서도 승용차 등 차량 5대가 잇달아 충돌하는 사고가 났다. 사매1터널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 “눈 내리고 터널 안 미끄러워 사고 발생”
2016년 2월에도 사매2터널에선 차량 6대가 추돌해 10여 명이 다쳤다. 경찰은 당시 사고가 눈이 내리면서 터널 내 도로가 미끄러워져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또 다른 추측도 나온다. 순천∼완주 고속도로의 많은 터널 개수가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순천∼완주 고속도로 117.78km에는 38개(편도) 터널이 있는데, 들어가고 나올 때 빛의 차이 때문에 시야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올 때 터널 내부에 진입한 차량들이 오히려 속도를 내는 점도 사고 원인이 될 수 있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터널에 들어오면 외부를 주행할 때보다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외부와 달리 눈 등이 쌓여 있지 않아 운전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착각해 속도를 내면서 다중 추돌, 대형 사고로 이어지곤 한다”고 말했다.
길이 710m의 사매2터널 내부에 제연설비(제트팬)가 설치돼 있지 않아 일부에선 환기시설이 없어 구조작업이 지연됐고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도로공사 전남지역본부 관계자는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km 미만 터널은 환기시설을 설치하지 않는다. 지침이나 관련 법령에 따라 필요한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고가 난 순천∼완주 고속도로 북남원나들목(IC)부터 오수IC(양 방향·13.7km) 구간을 전면 통제하고, 인근 국도 17호선과 지방도 745호선으로 차량을 우회시켰다. 이로 인해 인근 도로는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남원=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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