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난민문제 국외 지원 활발하지만 국내 수용은 '미적' [대한민국 신인간관계 보고서]

홍주형 2020. 2. 13.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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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제주 예멘 난민 사태 이후 2년 / 난민 지난해 7080만명.. 20년새 2배 / ↑ 한국에 600명 유입 후 사회 갈등 폭발 / 여론 눈치 본 반대법 봇물.. 논의 제자리 / 난민 신청자 480여명 중 2명만 인정돼 / 한국, 국제사회서 정부·개인 후원 활발 / 심각성은 인정하면서 배타적인 태도 / 국민 세부담·범죄율 상승 이유 내세워 / "편견 아닌 사회통합적 관점 수용해야"

2019년 발간된 유엔난민기구(UNHCR)의 글로벌 동향보고서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전세계에서 7080만명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조국을 등진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20년 전의 두 배다. 직전 해인 2018년보다도 230만명이 증가했다.

한국 사회에 첫 난민이 들어온 것은 2001년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난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만든 사건은 2018년 5월 제주에 600여명의 예멘 난민이 들어오면서다. 그간 대규모 난민 유입을 경험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갈등은 폭발했다.

‘국경 통제’와 ‘난민 보호’ 가치관의 갈등은 오늘날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비교적 난민 보호에 우호적 모습을 보였던 유럽연합(EU) 국가들조차 2018년 6월 이후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예멘 난민 사태에서 보듯, 한국에 대한 수용 분담 압박도 늘어나고 있다.
2018년 5월 예멘 난민 600여명이 제주에 대거 유입된 뒤 난민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국내 난민 수용 논의 정체… 제도 미비도 문제

하지만 예멘 난민 사태 이후 한국 사회의 난민 논의는 정체 상태다. 2018년 5월 예멘 난민이 국내 유입된 직후 국내에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난민 신청 허가 폐지’ 청원이 올라와 70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후 6, 7월 국회에서 난민 반대 법안이 무더기로 발의되고, 일부 의원들은 인기 영합 목적으로 ‘난민법 폐지’ 법안까지 발의했지만 난민 문제에 대한 토론은 거기서 끝이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관계자는 4일 “한국에서 진정한 의미의 난민 논의는 이뤄진 적이 없다”며 “여론에 영합하는 난민 반대 법안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모든 논의는 그걸로 끝이었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난민 유입이 처음이었던지라 그간 난민심사제도에도 여러 비판이 제기됐다. 법무부는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 484명에 대한 심사를 거쳤지만 난민 인정을 받은 이는 2명뿐이었다. 412명은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았다. 단순 불인정은 56명, 난민신청을 철회하거나 출국했을 때 이뤄지는 직권종료는 14명이었다. 난민 인정을 받은 2명은 언론인 출신으로, 후티 반군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쓴 뒤 납치·살해 협박을 받은 경우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7년 12월 발간한 ‘난민심사제도의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불인정 사유서가 한국어로만 쓰여 있어 난민 신청자 절반 이상이 난민 불인정 결정의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정부는 또 난민 신청 심사인력 부족으로 인한 적체 현상, 이의신청 담당 난민위원회 위원의 전문성 부족 등을 보완하기 위해 인력을 확충하고 난민심판원을 운영하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인식 개선은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이다.

◆국외 난민 지원은 활발

한국 사회가 아직 난민을 직접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지 않은 것과 달리, 국제사회에서의 기여는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1951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돼 있다. 지난해 12월 17, 1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적 차원의 최초 난민 관련 회의인 ‘제1회 글로벌 난민 포럼’이 스위스 정부와 UNHCR 공동주최로 열렸다. 한국정부도 난민 포럼이 정한 6가지 중점 분야 중 하나를 후원하는 공동 후원국 자격으로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했다. 한국 정부의 후원 분야는 ‘일자리와 생계’였다. 우리 정부는 회의에서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지속 및 확대 △성폭력 대응을 위한 국제기구 사업에 1200만달러 지원 △인도적 지원 분야 민관 협력 채널 구축 △인도적 지원 개발 평화 연계 기여 방식으로 국제기구 협력사업에 5000만달러 이상 지원 △국내 난민심사 보호 및 역량 강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을 공약했다.

민간 차원 기여도 작지 않은 수준이다. 제임스 린치 UNHCR 한국사무소 대표는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개인 후원자들이 2018년 기준으로 4400만달러를 후원했다”며 “한국전쟁의 경험을 통해서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다시 삶을 건설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이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난민 지위를 신청한 예멘인들이 2018년 9월 제주시 용담동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난민 보호 패러다임 변화…“한국적 수용방식 찾아야”

이 같은 점을 고려할 때 한국사회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직접 수용하는 데는 여전히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난민으로 인정되면 정부의 전적인 경제적 지원을 받아 국민들의 세부담이 늘어난다거나, 난민 유입 지역의 범죄율이 증가했다는 등 부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경우가 많다. 난민 신청자는 입국 후 6개월간 취업 등 경제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난민법에 생계비 지원 규정을 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지원 기간은 3∼4개월이며 실제 지원받는 이들은 거의 없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성환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난민에 대해 부정적 선입관이나 편견을 갖거나, 이상주의에 치우쳐 인도적 측면만을 부각하는 것보다 사회·경제적 영향에 대해 냉정하게 분석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UNHCR는 2016년 ‘뉴욕선언’을 통해 난민 수용에 ‘포괄적 난민 대응 체계(CRRF)’를 적용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수용국 정부가 난민을 ‘사회통합적 관점’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민이 수용국에서 일하지 않고 지원만 받는 것은 수용국 국민의 반발을 일으킬 뿐 아니라 난민을 그 사회에 직접 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나 국제기구가 수용국 시설 개선 등에 자원을 투입하고 난민이 직접 일하며 자립하게 하는 접근이다. 한국사회는 이 프로그램의 대상국은 아니나 시사점이 작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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