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 이 사람..야구선수 김대원에서 배우 김기무가 되기까지 [인터뷰]

이유진 기자 2020. 2. 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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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야구선수 출신 프런트 장우석 역을 맡은 배우 김기무가 지난 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 열혈 시청자라면 이 인물 때문에 여러 번 주먹을 쥐었을지 모른다. 드림즈 스카우트 팀장 고세혁(이준혁)의 오른팔에서 사장 권경민(오정세)의 특보로 돌아온 장우석 말이다. 선수연봉 고과기준 자료를 빼돌리거나, 미계약자 포지션을 유출하는 등 ‘스파이’로 활동한 장우석은 극의 막바지 “자부심이 있으신 분이 왜 명백히 야구가 훼손되는 것을 옆에서 돕고 계십니까”라는 단장 백승수(남궁민)의 말에 마음을 돌린다.

미움을 사는 캐릭터이지만 장우석이란 인물에 어딘지 공감하게 되는 건, 역할을 맡은 배우 김기무(42·본명 김대원)의 남다른 이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앙고·고려대를 거쳐 프로야구팀 한화이글스 1군 선수에까지 이름을 올린 야구선수였다. 하지만 야구를 그만두고 스물 아홉의 나이에 세종대 영화예술학과에 입학했다. 야구선수 김대원에서 배우 김기무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를 지난 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저 낙하산이에요.” <스토브리그>에 출연한 계기를 묻자 김기무는 털털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작가님이 야구선수 출신인 저를 추천했다고 들었다”며 “야구선수 경력이 실제로 연기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선수 시절 봤던 프런트의 모습을 회상하며 연기를 했어요. 한편으로는 그들이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 하는 것도 있었어요. ‘쟤를 빨리 잘랐어야 하는데’ 그런 것?(웃음)”

김기무는 중앙고·고려대를 거쳐 프로야구팀 한화이글스 1군 선수에까지 이름을 올린 야구선수였다. 하지만 입단 2년 만에 야구를 그만두고 스물 아홉의 나이에 세종대 영화예술학과에 입학했다. 김기남 기자

야구선수 경력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연기로 쌓아올린 이력은 ‘야구선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뛰어넘는다. 2008년 연극 <눈섬의 노래>로 데뷔했고, 2014년 연극 <나우 고골리>로 서울연극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나우 고골리>에서 자폐증이 있는 40대 공무원을 연기한 그는 “상이라도 받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리고 공교롭게 상을 받고 일주일 뒤 드라마 오디션에 합격했다.

tvN 드라마 <삼총사>를 시작으로 안방극장에 얼굴을 비치기 시작했다. 강한 인상 탓에 주로 악역을 맡았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는 이름이 특수강간범이었어요. 주로 동물 이름이 많았죠. <마녀의 법정> 포주 장어 역, 영화 <황제를 위하여> 우럭 역 등등.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 코믹한 조폭 황현동을 연기했고요.” 실제 성격은 “낯을 가린다”고 했다. “수줍음 많고요. 딸들이랑 노는 거 좋아해요. 친한 분들은 되게 귀엽게 보세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한 야구가 싫어진 건 고등학생 때였다. 그는 “나이가 먹어가면서 스포츠가 제 성향과 안 맞다는 걸 느꼈다. 승패를 가려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많았다”며 “다들 너무 열심히 하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게 저는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빨리 그만둬야지 생각했다”고 했다. 가출도 여러 번 했다. 고3 땐 서울예술대학교 원서를 몰래 썼다 아버지에게 들켜 크게 혼났다. “아버지의 꿈은 제가 무조건 고려대 야구부를 가는 거였어요. 야구를 잘하긴 했던 것 같아요. 결국 고대를 갔고, 대학교 입학 전 이미 한화이글스에 지명이 됐어요.”

한동안 야구는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연예인 국가대표 야구단 활동도 하며 조금씩 야구에 다시 흥미를 느끼는 중이다. “나이가 제일 많은 배우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김기남 기자

그렇게 아버지의 꿈은 이뤘지만, 입단 2년 뒤 팀에서 방출되면서 자의반 타의반 야구와는 결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계 일’을 하고 싶다는 제2의 꿈을 심어준 것도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영화사 쪽 일을 하셔서 어렸을 때도 개봉도 안 한 영화 비디오 테이프가 집에 쌓여있었어요. 개봉을 하기도 전에 그 영화들을 먼저 봤어요. 그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처음엔 영화감독을 꿈꿨다. 그러다 군대 동기가 던진 ‘너는 얼굴이 배우상’이라는 한 마디에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야구가 맞지 않는 옷이라면 연기는 편한 옷이다. “야구를 할 땐 9회말 2아웃에 1대0으로 지는 상황에서 타자로 나가는 그런 중압감, 혼자 오롯이 느껴야 하는 그 기분이 너무 싫었어요. 연기를 할 땐 다른 배우들로부터 뭔가를 받고 있다는 기분이에요. 공중에 뜬 것 같고 제일 편하죠.” 그가 지금처럼 오롯이 자신의 길을 걷게 된 데까지는 뮤지컬 배우인 아내 김윤지와 장인인 원로배우 김진태 등 숨은 조력자가 많았다.

선수 시절 팀메이트였던 한화이글스 정민철 단장은 특히 <스토브리그> 흥행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출연을 확정한 뒤에 민철이 형이 단장이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형에게 대본을 설명하며 ‘이거 형 얘기 아니냐. 이 드라마 대박나면 형도 대박날 것 같은데?’ 했더니 ‘아냐. 이 운은 내가 널 줄게’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말 하나 하나가 좋은 기운을 더해준 것 같아요.”

한동안 야구는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연예인 국가대표 야구단 활동도 하며 조금씩 야구에 다시 흥미를 느끼는 중이다. 야구단에는 마찬가지로 한화이글스 출신인 배우 윤현민 등이 함께 하고 있다. 이제는 스스로 걸어온 길을 가끔 되돌아보는 여유도 생겼다. 그의 남은 목표는 무엇일까.

“연기를 하기 위해서 건강한 것. 그리고 연기를 하기 위해서 나쁜 짓 안 하는 것이고요. 궁극적으로 나이가 제일 많은 배우가 되는 게 제 꿈이에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즐겁게 살다보면 그렇게 돼 있지 않을까요.”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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