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이기고 정상의 자리 오른 4명의 록커

홍장원 2020. 2. 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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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오브락-142]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난리다. 확진자가 곳곳에서 출몰하며 대한민국 국민 동선을 좁히고 있다. 모임 취소가 잇따르고 일부 학교는 개학을 연기할 판이다. 예정됐던 행사도 속속 취소되는 분위기다. 기침이라도 한번 하면 이내 따가운 눈길이 내려와 박힌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무신뢰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훈훈한 스토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록음악이 시끄럽고 정신없고 때로는 사탄에 영혼을 판 것 같은 이미지를 주는 것 맞는다. 하지만 뜯어보면 이 세계도 사람이 사는 동네.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는 미담이 곳곳에 있다. 이번 스쿨오브락 시리즈에서는 여기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본다.

사실 특히 외국에서 록을 하는 사람들이 유독 마약이랑 친했던 것이 사실이다. 마약 때문에 고생한 사람도 많고, 끝내 목숨을 내놓은 사람도 적지 않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 오래오래 음악 생활을 하는 뮤지션은 귀감이다.

하지만 이번 회에서는 마약 얘기는 빼놓고 가기로 한다. 사례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완전히 궤가 다른 케이스다. 진정한 인간 승리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1. 릭 앨런-데프 레퍼드(Def Leppard)

1977년 데뷔한 데프 레퍼드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 밴드 중 하나다. 멜로디가 말랑말랑하다며 '팝메탈' 밴드 취급을 받고 골수 록팬 사이에서 평가절하당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전설적인 밴드다.

당대 아이언 메이든과 함께 영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밴드로 꼽히는 인기 밴드였다. 10대 시절 멤버들은 영국 시골 셰필드에서 밴드생활을 시작했다. 작은 술집을 전전하며 꿈을 키우던 시절에 이들은 눈물젖은 빵을 먹으며 우정을 다졌다. 한 성질하는 보컬리스트 조 엘리엇이 거리에서 매니저를 구타하는 사건을 벌이며 이들은 고향에서 쫓겨나다시피 했고 절박한 마음에 미국 진출을 시도하는 걸로 전화위복을 하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81년 나온 두 번째 앨범 하이 앤드 드라이(High and Dry), 1983년 세 번째 앨범 파이로마니아(Pyromania)가 미국에서 입질이 왔다. 이제 이대로만 가면 미국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는 수순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엄청난 사고가 터진다. 미국에서 금의환향해 고향으로 돌아온 직후 드러머 릭 앨런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왼쪽 팔 전체가 날아갔다. 다들 알다시피 드럼은 두 발과 두 손으로 친다. 외팔이 드러머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다. 리더인 조 엘리엇(Joe Elliott)을 필두로 밴드가 새 드러머를 뽑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들은 앨런의 재활을 기다리며 밴드 생활을 접는다. 이제 막 인기 밴드로 발돋움하는 시작점이었다. 사실 남은 멤버의 안위만 생각한다면 드러머는 교체하고 가는 게 맞는다. 남은 멤버들이 열심히 활동해 돈을 벌고 그걸로 막내(엘리엇이 가장 나이가 어렸다) 생계를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활동한다면 크게 부담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밴드는 "당신이라면 식구가 사고로 팔을 잃었다고 집에서 내쫓겠나"라고 일갈하며 앨런과 함께 간다.

그리고 멤버와 앨런은 한쪽 팔과 두 다리로 연주를 할 수 있는 특수 드럼을 제작한다(한쪽 팔이 없는 대신 페달을 여러 개 놓아 발로 팔을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앨런은 피나는 연습 끝에 정상적인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1년 안에 증명했다. 하지만 빠른 템포의 속주가 난무하는 기존 음악 스타일에 앨런이 완전히 젖어들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들은 앨런을 위해 좀 더 말랑말랑하고 늦은 박자에 팝 멜로디가 유려한 쪽으로 아예 밴드 색깔을 이동한다. 그렇게 5년간 준비한 끝에 나온 1987년 앨범이 히스테리아(Hysteria)다. 여기서 빌보드 톱100 싱글 7곡이 쏟아진다. 전작의 성공을 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앨범이 된다.

2. 김혁건-더 크로스

잘 알려진 대로 김혁건은 더 크로스의 초대 보컬이다. 돈 크라이(Don't Cry)라는 명곡으로도 아직까지 회자된다. 샤우팅을 질러댈 때 최고 3옥타브 시까지 치솟는 그의 전성기 성대는 그의 목소리를 둘러싼 호불호를 떠나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음악 인생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금에야 이 노래가 불멸의 명곡 취급을 받지만 노래가 나왔을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곡의 원곡 주인공이 한 명 더 있을 정도다.(김경현)

우여곡절 끝에 원년 멤버 이시하와 다시 앨범을 준비하던 중에 김혁건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녹음을 마친 늦은 밤 오토바이를 타던 그는 불법 유턴하던 차와 충돌해 목뼈가 부러진다. 전신마비였다. 당연히 다시는 노래를 할 수 없었다.

무수한 자살 시도를 이겨낸 그는 엄청난 용기와 첨단 기술의 도움으로 다시 노래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온몸이 마비돼 복압을 유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는 배에 압력을 가해 복압을 높여주는 장비를 개발한 방영봉 서울대 교수팀의 도움으로 차츰 장비를 이용해 본인 목소리 내기에 익숙해진다.

이제 그는 깔끔한 성악 발성으로 노래를 매우 잘 부르는 엄청난 보컬로 진화했다(박기영과 부른 'The Prayer'를 대표곡으로 꼽을 수 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끝내 다시 무대에 오른 그의 집념과 노력에는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3. 김응윤-블랙홀

블랙홀은 리더 주상균을 필두로 '깊은 밤의 서정곡' 등 명곡을 내놓은 한국 록밴드다. 블랙홀이라 밴드 이름을 지은 이유는 블랙홀처럼 음악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겠단 의도였다. 김응윤은 이 밴드를 거쳐간 드러머였다.

그는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키가 153㎝로 작고 초등학교 학생이라 봐도 무방한 조막손을 가지고 태어나서가 아니다. 정신지체가 있었다. 그의 지능은 초등학교 범위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하늘은 그에게 천부적인 박자 감각을 내려주었다. 악보를 보지 못했던 그는 드럼 악보를 통째로 외워버리는 괴력(초등학생 지능임을 감안하자)으로 블랙홀의 정식 멤버가 된다. 공연 때마다 무지막지하게 쳐대는 드럼솔로로 각광받으며 꽤나 인기도 누렸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감정의 기복이 심해 멤버들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상황도 종종 겪었다고 한다.

그는 5세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음악학원을 찾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약 6개월간 학원을 다닌 그는 이후로는 독학으로 주로 연습을 했다. 그런데도 실력을 갈수록 일취월장, 10대 초반에는 누구를 가르칠 정도의 실력이 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어눌하던 그였지만 스틱만 잡으면 눈빛이 매서워졌다.

미성년자 시절부터 밤 업소를 돌아다니며 돈을 벌기 시작했고 17세에는 블랙홀의 리더 주상균을 우연히 만나 멤버에 합류한다. 주상균은 김응윤을 이용하지 않고 어엿한 멤버의 일원으로 인식해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 당시 그를 다룬 스토리는 인간극장 등에 소개되며 전국적 관심을 끌기도 했다.

4. 이혁-전 노라조

록보컬 이혁 역시 남모를 아픔이 있다. 어린 시절 사고로 혀의 일부가 잘려나가는 사고를 겪었다고 한다. 가끔씩 그가 새는 발음을 보여주는 것은 이와 관련이 깊다고. 그런데도 주눅 들지 않고 꾸준히 연습해 한국을 대표할 만한 보컬 자리에 오른 그의 노력은 인정받아야 한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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