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해남 사대부 윤이후가 8년간 쓴 '지암일기' 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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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이 있었다. 일식 때문에 재계(齋戒·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을 멀리함)했다. 정월 초하루여서 업무를 보지 않았다."
해남 윤씨 사대부 지암(支菴) 윤이후(1636∼1699)는 1692년 1월 1일 일기를 이렇게 시작했다.
하영휘 성균관대 교수와 문숙자 서울대 객원연구원, 김영두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이문현 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등 연구자 8명이 2013년 11월부터 격주로 세미나를 열어 번역한 성과물인 '윤이후의 지암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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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일식이 있었다. 일식 때문에 재계(齋戒·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을 멀리함)했다. 정월 초하루여서 업무를 보지 않았다."
해남 윤씨 사대부 지암(支菴) 윤이후(1636∼1699)는 1692년 1월 1일 일기를 이렇게 시작했다. 이날 윤이후 근무지인 전남 함평에는 아침에 안개가 짙게 끼었고, 늦은 아침부터 바람이 불면서 어두워졌다.
그는 이날 일기에서 "읍내를 상촌과 하촌으로 나누어 대나무를 하나씩 들고 다투어 관아 문을 들어가는데, 남녀노소가 일제히 나와 승부를 겨룬다"며 세속의 관례를 소개했다.
남인 출신인 윤이후는 이때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699년 9월 9일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 그 책이 바로 '지암일기'다.
해남 녹우당이 소장한 지암일기 완역본이 출간됐다. 하영휘 성균관대 교수와 문숙자 서울대 객원연구원, 김영두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이문현 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등 연구자 8명이 2013년 11월부터 격주로 세미나를 열어 번역한 성과물인 '윤이후의 지암일기'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있는 복제 파일을 저본으로 삼았는데, 1692년 1∼7월 부분은 마모가 심해 완벽히 옮기지 못했다.
윤이후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지만, 일가는 유명하다. 조부가 고산 윤선도이고, 아들이 공재 윤두서다. 윤두서는 나중에 종가 형인 윤이석에게 양자로 보냈다. 지암은 1689년 증광문과에 급제해 1691년 함평현감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이듬해 2월 관직에서 물러나 해남 팔마 농장으로 갔다.
윤이후 작품으로는 '일민가'(逸民歌)라는 가사가 알려졌다. 지암일기에 실렸는데, 그는 관복을 벗을 때 심정을 "세상이 날 버리니 나도 세상 버린 후에/ 강호에 임자 되어 일없이 누웠으니/ 어즈버, 부귀공명이 꿈이었던 듯하여라"라고 노래했다.
지암일기는 당대 정치·경제·사회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윤이후가 일기를 집필할 무렵인 숙종 20년(1694) 갑술환국이 일어났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집권한 남인이 폐비 민씨 복위를 꾀하던 정파를 제거하려다 화를 입고 정권이 교체된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남인이 남해안 섬으로 유배됐는데, 지암은 그들과 교류하면서 마음을 살폈다.
아울러 지암일기에는 17세기 말 조선에 닥친 재난이 기록됐다. 그는 1696년 4월 일기에 "길을 떠난 후 나주 위로는 보이는 참상이 더욱더 심하다. 논값이 1섬(15말) 혹은 2섬에 불과한 경우가 많고, 사람값은 1섬에도 못 미친다. 죽은 사람도 이루 셀 수가 없다"고 적었다.
또 윤이후는 점쟁이·의원·장인·악사·가수·걸인·노비에 대해 묘사하고, 자신이 받은 선물도 기술했다. 예컨대 1693년 8월 9일에 곡성현감에게 부채 6자루를 받았다고 했는데, 이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를 글로 남겼다.
역자들은 일기를 충실히 번역하는 한편, 일기에 등장하는 인물 180여 명을 간략히 설명한 소사전과 고지명 600여 곳의 현재 위치를 정리해 수록했다. 윤이후 가계도와 지도도 실었다.
너머북스. 1천272쪽. 5만8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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