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전염병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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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질·괴질.
공포를 부르는 말이다.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공포의 전파속도는 그만큼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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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7년, 1435년. 함경도에 역질이 번졌다. 하필 군사 요충지인 육진의 회령·경원에. “1만명이 죽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함경도 관찰사 정흠지, 병마도절제사 김종서, 회령부사 이징옥을 탄핵하는 상소는 줄을 이었다. 두 곳에서 숨진 사람은 3200명이었다. 당시 그곳 인구를 따지면 적은 수가 아니다. 한 집 걸러 한 집꼴로 사망자가 발생했을 성싶다.
그 역질이 평안도·강원도로 번졌다는 기록은 없다. 왜? 과거의 전염병은 사람의 왕래가 드문 탓에 지역적으로 제한되는 특성을 띤다. 그렇지 않은 예도 있긴 하다. 14세기 중엽 유럽을 휩쓴 흑사병. 당시 유럽인 다섯 명 중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은 다르다. 광속으로 퍼진다. 중국 베이징에서 우한까지 직선 거리는 약 1000㎞. 고속철을 타면 4시간이면 닿는다. 하루 생활권이다. 중국 내 ‘우한 폐렴’ 확진환자는 발병 40일 만에 3000명에 육박한다. 2002년 사스(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 때보다 훨씬 빠르다. 공포의 전파속도는 그만큼 빠르다. 그렇다고 백신·치료제 개발 속도가 빨라진 것도 아니다.
공포는 경제로 번진다. 경제활동을 얼어붙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노정은 국내총생산(GDP) 통계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02년 겨울에 번진 사스는 이듬해 여름까지 이어졌다. 2003년 성장률 2.8%. 2002년 7.2%, 2004년 4.6%와 비교하면 성장률은 반 토막 났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국내 발병한 2015년 성장률도 2.6%에 불과하다. 전염병의 충격은 관광·외식업부터 멍들게 한다. 이어 소비도 급감한다. 외출조차 꺼리는 판에 소비가 불붙을 턱이 없다. 우한 폐렴에 왜 주가가 곤두박질하는 걸까. 어두운 내일의 경제가 빤히 내다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금을 살포해 겨우 2%로 끌어올린 성장률. 올해는 어찌 될까. 일자리가 없어 작은 가게라도 열어 생계를 꾸리려는 수많은 자영업자들. 그들은 또 어찌 될까. 걱정만 쌓이는 정월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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