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최저임금 일괄 적용" 북유럽 복지국가들과 마찰, 왜?

조일준 2020. 1. 1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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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데어라이엔 위원장 "품위 있는 삶 보장해야"
"고급 인력 '동유럽→서유럽' 두뇌유출도 심각"
덴마크·핀란드 등 "노사협상 모델 침해할 우려
최저임금이 되레 임금 낮추는 기준 될 수도"
EU, 절대값 대신 중간임금의 60% 확보 목표
"최저임금 상향은 사회적 시장경제에도 도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집행위원장이 12일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사진에는 안 나옴)를 만나 발언하고 있다. 브뤼셀/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연합이 회원국들의 최저임금 기준을 일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북유럽의 일부 고임금 국가들이 우려를 표명하며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우려’의 이유가 ‘최저임금 제도화에 따른 임금 상승과 경영 부담’이 아니라, 외려 반대로 유럽연합 차원의 최저임금 설정이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국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14일 회원국 공통의 최저임금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첫 단계로 자문기구를 발족한다. 지난달 공식 취임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공약한 핵심 사업 중 하나다. 앞서 지난해 7월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집행위원장 지명자(당시)는 승인 투표를 앞두고 유럽연합의 비전을 제시한 연설에서 “모든 풀타임 고용 노동자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저임금을 받아야 한다”며 “(회원국들의) 상이한 노동시장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 공동의 ‘최저임금 틀’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주로 동유럽 국가의 고급인력이 고임금 일자리를 찾아 서유럽 국가로 빠져나오는 ‘두뇌 유출’을 막기 위해서도 역내 공통의 최저임금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법정 최저임금 없이 노사협상으로 임금을 정하는 모델이 확립된 일부 국가의 의원들이 유럽연합 집행부의 방안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2일 보도했다. 유럽연합의 ‘개입’이 되레 자국의 단체교섭의 전통과 구속력을 저해하고 임금 수준을 낮출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현재 유럽연합 28개 회원국 중 위 덴마크·스웨덴·핀란드 등 북유럽 3국을 비롯해 이탈리아·키프로스·오스트리아 등 6개국은 법정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페테르 후멜고르 덴마크 고용부 장관은 밑바닥 임금을 받는 유럽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에 동의한다면서도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각국의 전통과 잘 작동하고 있는 임금 결정 모델을 존중하는 방식이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악마는 디테일(세밀한 사항)에 있는 만큼, 집행부의 제안서가 우리의 노사 단체교섭 모델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헨리 린드홀름 핀란드 식품산업노조연맹 사무국장도 “동유럽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이 아니라 유럽연합 전체에 대한 일괄 적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최저임금 수준(2019년 1월 기준). 유럽연합 통계국

덴마크는 현재 평균 시급이 43.5유로(약 5만5900원)으로 유럽 최고 수준이며, 가장 낮은 급여를 받는 사람들도 최소 15유로(약 1만9300원)를 받는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노동자들도 노사 단체교섭을 통해 그와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보장받고 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도 대부분 단체교섭의 혜택을 누린다. 그런데 법정 최저임금이 도입될 경우 사용자들은 노사 합의보다 낮게 책정되는 최저임금을 급여 기준으로 삼고 임금 인상을 외면할 것이라고 반대론자들은 지적한다. 단일한 기준의 최저임금 일괄 적용이 고임금 노동자에 대한 임금 하향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들 나라가 유럽 공통의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자국이 적용해왔던 단체교섭 방식은 예외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회원국들의 소득과 물가, 임금 수준이 서로 다른 가운데 공통의 최저임금 기준을 설정하는 것도 난제다. 예컨대, 현재 룩셈부르크의 법정 최저임금이 한 달에 2071유로(약 266만2500원)에 이르는 반면, 불가리아는 286유로(약 36만7700원)에 불과하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역내 최저임금의 절대값을 정하지 않는 대신, 해당국 중위임금(최고값부터 최저값까지 순서를 매겼을 때 한가운데 있는 수치)의 최소 60%를 최저임금으로 확보하도록 하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니콜라스 슈미트 유럽연합 고용 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에 “(최저)임금의 기준을 올리는 것은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여 더 놓은 수준으로 끌어모을 수 있으며 유럽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촉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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