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없애는 음악' 음파 기술로 작곡한다

조승한 기자 2020. 1.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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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수 박사는 음파를 쏘아 미세먼지를 잡는 기술을 개발했다. 동아사이언스DB

이효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융합공정소재그룹 박사가 ‘미세먼지 잡는 음악’을 선보이며 미세먼지를 잡는 기술 경쟁에 도전장을 냈다. 음악 속 음파가 미세먼지를 때려 서로 뭉치게 하는 방식으로 사람 몸에 침투하기 힘들 정도의 큰 덩어리로 만드는 기술이다.

그래핀 연구가 ‘음파’ 미세먼지 제거 연구로 이어져 

이효수 박사는 미세먼지와 전혀 관련 없는 연구를 수행하던 도중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육각형 탄소 덩어리가 얇은 판을 이루는 차세대 소재인 그래핀을 연구하기 위해 라만 분광기로 측정하는 도중 파장에너지에 의한 매질 내 입자거동을 생각하게 되었다. 라만 분광기는 물질에 레이저를 쏘아 일어나는 진동으로 성분을 파악하는 장치다. 

이 박사는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공기라는 매질 속에 떠다니는 미세먼지가 빛 파장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서로 부딪히며 뭉치게 하는 방식으로 제거하는 원리다. 먼지를 모으면 두 입자가 가까이 붙었을 때 서로를 약하게 끌어당기는 힘인 ‘반데르발스 힘’이 발생해 뭉치기 쉬워진다는 기존 연구들도 있었다.

이효수 박사가 실험을 위해 개발한 장치다. 양쪽 스피커에서 음파를 쏘면 미세먼지가 음파에 의해 움직이다 다른 미세먼지와 부딪히며 뭉쳐진다. 동아사이언스DB

연구팀은 빛 대신 파동의 다른 형태인 음파를 활용했다. 20헤르츠(㎐·주파수의 단위)에서 50㎐ 사이의 음파를 활용했다. 사람 귀에 들리는 가청주파수는 약 20㎐~20k㎐ 사이다. 사람에 따라 20㎐까지도 들을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낮은 주파수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 박사는 “20㎐ 이하는 배멀미와 같은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고, 고주파수는 반려견과 반려묘 등 애완동물들에게도 영향이 있을 수 있어서 20~50㎐를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기술 성능을 검증했다. 강한 저음을 내기 위해 새로 고안한 어쿠스틱 액추에이터를 챔버 양쪽에 달고 챔버에 초미세먼지(PM2.5) 200~2000 마이크로그램(㎍·100만 분의 1g)을 넣었다. 미세먼지가 가득 들어차 있는 챔버 속에 음파를 가했더니 5분 내로 PM2.5의 40%가 제거됐다. 서로 뭉치며 더 큰 입자로 변해 아래로 가라앉으며 사라진 것이다. 이 박사는 “포집 기술과 연결하면 작은 입자보다 큰 입자를 포집하는 게 쉬워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필터 교체 공기청정기 한계 극복...응용 분야 확대 가능

이효수 박사가 미세먼지 측정기가 달린 장비를 조절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DB

기존에 미세먼지를 잡는 기술은 대부분 필터에 공기를 통과시키는 방식이다. 하지만 필터를 매번 갈아줘야 하는 문제가 있다. 또 필터를 달면 공기를 빨아들이는 모터 등 추가 장치가 필요하다. 반면 이 기술은 미세먼지를 뭉치게 해 제거하는 기술이라 다른 장치를 갈아줄 필요 없이 어쿠스틱 액추에이터만 공간에 맞춰 설치하면 된다. 또한 어쿠스틱 액추에이터는 IoT통신연결이 가능해 환경조건에 따른 스마트제어가 가능하다.

매질을 떠다니는 입자라면 모두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불이 났을 때 시야를 가리는 연기도 공동주택에 달린 어쿠스틱 액추에이터로 잡을 수 있다. 미세먼지뿐 아니라 최근 또 다른 환경 문제로 떠오른 물속 미세플라스틱도 제거할 수 있다. 이 박사는 “물에서도 마이크로비즈를 활용해 실험해봤더니 서로 뭉쳐 아예 붙어버리는 현상(소성변형)까지 나타났다”며 “계속 부딪히며 발생한 힘과 표면열에 의해 원래 형태를 잃을 정도로 강하게 뭉친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이 기술을 공동주택과 터널 같은 공공시설에 활용할 계획이다. 상자 속이 아닌 야외처럼 넓은 공간에서도 음파를 조정하면 미세먼지를 잡을 수 있다. 이 박사는 “외부 구조에 따라 데이터만 있다면 음파를 자유자재로 변경하며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 1월부터 인천 뿌리산업기술연구소 테니스장에 설치해 실증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테니스장은 규격화가 되어 있다 보니 최적의 기술을 찾는 데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음파로 미세먼지를 잡는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배경은 한켠에 일렉기타를 여럿 전시해놓은 이 박사의 연구실에서 엿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렉기타를 쳤었고, 80년대 강한 락음악을 좋아한다고 한다. 감성소재부품연구센터 센터장이기도 한 이 박사는 음파로 미세먼지를 잡는 기술도 음악과 결합하면 미세먼지를 잡는 환경음악이 나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음악을 작곡하고 그 원곡의 주파수를 낮춰 동시에 출력하면 미세먼지를 잡는 음악이 된다”며 “작곡가와도 미팅을 몇 차례 나눴다”고 말했다. 

가청주파수에 가까워 음파가 들릴 수도 있는 만큼 음악을 위에 덧씌우면 사람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깨끗한 공기도 마실 수 있는 셈이다. 이 박사는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 영화관이나 공연장에서도 미세먼지 잡는 영화나 음악이 흘러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효수 박사의 연구실 한켠엔 앰프와 기타가 여럿 전시돼 있다. 음파로 미세먼지를 잡는다는 아이디어는 이곳에서 탄생했다. 동아사이언스DB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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