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정보조사지에 내 학력은 왜 써야 하나요

이혜인 기자 2020. 1. 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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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입원 환자 진료 결정 기초 자료…민감한 신상정보까지 요구
ㆍ간호사들, 너무 많은 항목 부담…보험사에 정보 유출 우려도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왜 제 최종학력을 말해야 하나요?”

30대 남성 ㄱ씨는 얼마전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부모의 연락처와 아이의 입원 경위 등을 묻던 간호사가 ㄱ씨의 직업과 종교, 최종학력까지 물은 것이다. 간호사는 ‘간호정보조사지’(사진)를 작성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ㄱ씨는 “내 최종학력이 고등학교 졸업인 것이 흉은 아니지만 말하기 망설여졌다”며 “아이 간호와 상관없는 내 종교·학력까지 말해야 한다는 점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입원한 환자와 보호자의 기본 정보가 담기는 간호정보조사지는 간호사와 의사 등 의료진이 입원기간 동안 환자 진료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주소·전화번호 등 기본적인 신상정보와 고혈압·암 등 가족병력이나 과거병력 등이 담긴다. 진료과목이나 병원 규모에 따라 필요로 하는 간호정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간호정보조사지에 담길 항목은 병원 측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문제는 교육수준이나 소득수준 등 진료와 크게 상관없는 민감한 신상정보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 온라인 서식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간호정보조사지 양식을 보면 교육수준을 ‘무학, 초졸(퇴), 중졸(퇴), 대졸(퇴) 이상’ 등으로 세분화해놓은 경우도 있다.

대한간호협회의 조정숙 홍보위원장(서울대병원 간호본부장)은 “종교 같은 경우 수혈 거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물을 필요성은 있다”면서 “하지만 직업이나 교육수준 같은 사회경제적 상태는 예민한 질문이라 답변을 거부하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대병원은 2018년 간호정보조사지 항목이 많아 업무에 부담이 된다는 간호사들의 의견을 반영해 단기입원을 하는 병동에 한해 항목수를 89개에서 57개로 줄이기도 했다.

김혜림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사무국장은 “규모가 큰 병원에서는 주기적으로 항목을 점검하면서 점차 필수적인 항목만 적도록 정비하고 있지만, 작은 병원에서는 그렇게 하기 힘들어서 간호사들이 너무 많은 항목 때문에 과업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민감한 환자 개인정보가 너무 쉽게 보험회사에 넘어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보험사는 수술이나 입원비용을 청구한 가입자에게 진단서 등과 함께 간호정보조사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한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모든 경우에 다 청구하는 것이 아니라, 허위청구가 의심될 경우에만 재차 확인하기 위해 청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의 이상윤 책임 연구위원(의사)은 “진료목적을 위해서 환자에게 자세한 정보를 의료진이 요구하는 것과 이 자료를 보험사가 확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환자가 보험사에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포괄적 동의’만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건건이 동의를 받지 않으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평화당 김광수 의원은 “간호정보조사지에 기왕증(환자가 지금까지 경험해본 병) 등을 적어내는 항목이 보험사 등에 제공될 수 있는 점은 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민간기업에 제공된다는 점에서 시급히 고쳐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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