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영혼의 북녘' 파주로
파주로 가는 길은 얼룩져 있다. 길이 너무 많은 것은 길이 없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길을 좋아해서 늘 길을 향해 집을 내고, 정주해서 살 때조차 길을 향한 동경을 품는다.
벽제로 가는 길은 꽃가게가 많다. 세 번째 ‘여행’ 끝에 다육식물을 판다는 화원에서 산호 선인장을 샀다. 벽제천 지나 용미리 묘지로 통하는 옛날 길은 왕복 2차로 상처투성이다. 옛날에는 제법 흥했을 법한 모텔이며 음식점을 잠깐 스치는 사이에 길은 터널로 통한다. 이제부터 파주다.
파주는 넓고 새로운 꿈으로 가득하다. 2차로 길은 4차로로 넓어진다. 금촌, 광탄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법원읍이 여기서부터 15㎞라고 쓰여 있다. 산야는 이곳에서 완연히 북쪽 냄새를 풍긴다. 산은 낮지만 그래도 들은 서울보다 넓다. 석재를 다루는 가게가 있다. 군부대 담벼락이 나타난다. 나는 여기서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는 곳으로 돌아든다. 운허 스님 계시던,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 용암사다.
이불입상(二佛立像)이란 쌍석불이다. 옛날 고려 13대 선종 임금이 셋째 부인에게서도 아이를 낳지 못했는데, 어느 날 공주가 꿈을 꾸었다. 지금 절이 선 곳에 도 닦는 사람 둘이 나타나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임금이 사람을 보내서 알아보니 거기에 사람은 없고, 큰 바위가 서 있었다. 석공을 시켜 석불 둘을 새기니 곧 오늘의 쌍석불이다.
두 부처는 밑에서 보면 우뚝하고 올라가서 보면 웅장하다. 소원을 빌면 들어 줄 것 같다. 이제 길은 광탄을 지난다. 앞으로 가면 법원이요, 오른쪽으로 가면 발랑리다. 파주의 땅이름은 지금은 다 한자어가 됐지만 원래는 순우리말이다. 내가 지금 가는 웅담리도 옛날에는 곰시라고 했다.
창고가 많다. 드문드문 공장도 있다. 제3209부대 지나 길은 점점 더 전방으로 향한다. 산 고개 위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법원읍이다. 파주와 양주 사이 고속도로를 내고 있다. 임진각으로 가는 길도 왼쪽으로 보인다. 율곡 선생 유적지는 당분간 가지 않기로 한다. 옛날 이름 ‘술이홀’을 딴 길 표지가 보이는 삼거리에서 제1570부대 쪽으로 우회전을 한다. 언젠가부터 외진 길이 좋아졌다.
600번 버스가 앞장을 선다. 군용트럭이 털썩거리며 달려온다. 제3273부대 앞, 흑인 아저씨가 600번 버스에서 내린다. 이제 사거리에서 나는 전곡 방면으로 곧장 올라간다. 1570부대는 방공중대다. ‘술이홀로’는 아직도 계속된다. ‘넘어말’이라는 버스정류장 표지판 보이고 두포리라고 쓰여 있는 삼거리에서 곧장 위쪽으로 계속 간다. 나지막한 고개가 하나 나오고 이 아래 웅담리가 있다. 지금은 파주에서 가장 볕이 안 드는 곳이다.
파평산 미타사를 스쳐 지나 제5978부대를 지나 고개를 내려가면 웅담리다. 제7296부대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 직천리 방향, 웅담교회가 서 있고, ‘201’ 커피숍이 군인면회소를 대신하는 동네다. 보건소도 있다. 곰시 마을이다. 웅담교가 있고 웅담 2리 마을회관이 있고, 웅담 정미소가 있다. 미니스톱도 있고, 메밀냉면집도 있고, 유경헤어도 있고, 웅담철물도 있다. 두리두리식당도 있고, 전주식당도 있고, 한아름 식당도 있다.
겨울이니까 화목 난로만 하나 있으면 책과 함께 이 겨울 따뜻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 그렇게 밉상스러워 보이던 창고가 벌써 정이 든 것 같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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