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로 다시 소환된 '홍콩 누아르'의 전설..추억을 적신다 [뮤지컬 '영웅본색'의 비밀]

배문규 기자 2020. 1. 9.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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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뮤지컬 <영웅본색>은 LED 패널로 구현한 무대를 선보인다. 이야기 전개가 조금 산만하지만, 배우들의 열연이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을 무대 위로 소환한다. 빅픽처프로덕션 제공

“홍콩의 야경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 하지만 오래 못 가니 아까워.”

영화 <영웅본색>에선 만신창이가 된 주윤발(마크)의 쓸쓸한 대사 너머로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아른거린다. 뮤지컬 <영웅본색> 무대에서도 고층빌딩이 즐비한 홍콩의 야경 파노라마가 처음 관객들을 맞는다. 귀에 익은 인트로 음악과 함께 극이 시작된다. 세트 전환이 이뤄지나 싶었는데, 아니다. 무대 상하좌우를 가득 채운 건 오로지 LED 패널.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영상으로만 꾸민 뮤지컬 무대다.

뮤지컬 <영웅본색>은 홍콩 누아르의 전설인 동명의 영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의 화제성과 함께 기존 뮤지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무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무대에는 1000장이 넘는 LED 패널을 이은 세트가 ㄷ자 대형 아치 3개, 뒤편에 1개, 4m짜리 위아래 이동형까지 총 7개 설치돼 있다. 무대를 꽉 메운 LED 패널은 홍콩의 밤거리부터 위조지폐 작업장, 교도소, 부둣가 등 수십 개의 공간으로 변모하며 원작의 장면을 ‘영화보다 더 영화같이’ 재현한다. 흔히 울트라HD라 불리는 4K 고화질 화면 덕분이다. 소도구들이 등장하지만,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1초 매직을 이뤄내자.” 왕용범 연출과 이엄지 무대디자이너, 송승규 영상디자이너가 <영웅본색> 무대를 만들며 세운 목표다. 무협지를 방불케 하는 영화 속 감각적 영상을 기존 뮤지컬처럼 해서는 도저히 재현할 수 없었다. 이엄지 디자이너는 “세트 전환 시간이 늘어지면 원작의 느낌을 깰 수 있고, 영화 1·2편을 하나로 합치다보니 장면 수가 너무 많아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영상을 활용하면서 기존과 전혀 다른 무대가 가능해졌다. 무대 중앙의 문을 드나드는 것만으로 엘리베이터에서 술집으로 시공간이 옮겨가고, 액션신에서 감상적인 비 내리는 장면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시점’의 도입이다. 이 디자이너는 “눈높이에 고정된 무대 세트와 달리 영상은 고층건물을 올려다보는 뷰 등 여러 각도로 접근할 수 있다”며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유기적 연출도 시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극중 아성의 노래에 맞춰 군무가 펼쳐지는 장면에선 옵티컬아트를 연상시키는 배경 위로 인물의 얼굴이 떠다닌다. K팝 뮤비가 떠오를 정도다. 송승규 디자이너는 “등장인물의 욕망이나 부조리한 느낌을 무대 위 배우와 싱크를 맞춰 시각화했다”며 “배경이 배우보다 돋보일 수 있어 조심스러웠지만, 영상 덕분에 다양한 효과를 시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이다보니 우여곡절도 많았다. 겨울이면 행사가 많아 영상업체들의 최성수기인데 LED 패널을 대량 조달하느라 애를 먹었다. 일반적인 무대 세트를 제작하는 경우보다 비용도 훨씬 더 들었다고 한다. 배우들이 세트 사이를 뛰어다닐 정도로 공연장 소대(무대 뒤편 공간)가 좁아 소품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그래도 “많은 제약이 큰 가능성으로 다가왔다”고 이 디자이너는 말했다. “관객들에게 빛의 도시인 홍콩의 야경을 선물하는 게 목표였어요. 개인적으로 풍림각 총격 신을 영화 <킬빌>을 떠올리며 만들었는데요. 뮤지컬에선 마크가 어떻게 싸우는지 직접 확인해보세요.” 한전아트센터에서 3월22일까지.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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