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교육 10살부터 ③] 변종대출에 빠지는 20대·저소득층.. '금융문맹자' 주요 타깃

송기영 기자, 2020. 1. 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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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학자이자 1987년부터 2008년까지 4회 연속 미국 연방준비이사회(FRB) 의장을 역임했던 앨런 그리스펀(Alan Greenspan)은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금융문맹이 더 무섭다”고 했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지적하면서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처럼 금융문맹과 금융당국의 부실한 관리,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가 겹치면 나라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금융사고가 터지기도 한다. 한국 역시 2003년 신용카드 사태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13년 동양그룹 사태, 지난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등 여러 금융사고로 겪으며 수십조원의 사회적 비용을 지출했다.





전문가들은 금융문맹이 국가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적잖은 사회적 비용이 소요되고, 소비 주체인 가계의 자산이 줄어 내수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금융문맹은 양극화와도 얽혀 있다. 금융문맹이 많은 계층은 취약계층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국민의 금융역량 향상은 가계 소득 향상과 국가 경제의 안정적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학 교수는 “여러 노력에도 여전히 우리 국민의 경제 역량은 미흡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이로 인한 비용은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다”며 “국민 개개인의 경제·금융 이해력 수준과 합리적 선택 역량의 향상은 개인의 경제 수준 개선은 물론 국가 경제의 안정적 성장에도 도움을 준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김모(28)씨는 3년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가전 내구제대출(나를 구제하는 대출)’이라는 변종대출을 알게 됐다. 자신의 명의로 냉장고나 안마의자 등 고액의 가전제품을 렌탈하면, 곧바로 수백만원의 현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자 대신 월 2만~3만원의 렌탈료만 꾸준히 내면 되니 크게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급전이 필요했던 김씨는 이런 방식으로 총 500만원을 대출받아 사용했다. 3년 후 냉장고 렌탈 기간이 끝나자 문제가 터졌다. 렌탈 업체는 냉장고를 반납하지 않을 경우 300만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5년을 계약한 안마의자는 제품 수거가 안되면 450만원을 지불해야 했다. 대출 업체는 연락이 되질 않았다.

김씨는 곧바로 경찰서를 찾았으나, 대출업자들은 김씨의 명의로 렌탈한 제품을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판매하고 잠적한 지 오래였다.

이런 금융사기 피해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금융사기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사회 초년생까지 주로 20~30대 청년층이 범행 대상이 된다. 청년층에 그만큼 ‘금융문맹’이 만연하다는 방증이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 서초경찰서 수사관은 “김씨처럼 대출금을 받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보통은 제품만 넘기고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며 “청년들에게 저리로 대출해주는 정부 자금이 많은데, 인터넷 검색 몇번으로 손 쉽게 대출을 받으려다보니 이런 대출 사기에 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금융사기인 보이스피싱의 경우 20·30대 피해금액이 매해 증가하고 있다. 2016년 637억원이었던 20·30대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은 2017년 768억원, 2018년 915억원으로 증가했다. 대출빙자형 사기 역시 20~30대의 피해금액이 늘고 있다. 2018년 20~30대 대출빙자형 사기 피해액은 544억원으로 2017년(391억 원)보다 39.1% 늘었다. 이들 연령대의 피해액은 60대 이상(453억 원)보다 오히려 많았다.

젊은 계층이 금융사기에 노출될 경우 여러 부작용을 가져온다.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큰 빚을 떠안고 취약계층으로 전락하거나, 최악의 경우 금융 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출사기 설계자들이 주로 직장이 없거나 신용이 낮으면서 금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20대 청년을 대상으로 ‘원라인 대출’, ‘직장·재직·급여통장 세팅 가능’ 등 문구로 현혹한다”며 “SNS를 통해 주로 정보를 얻는 청년들의 특성에 맞게 이런 사기범들은 주로 온라인에서 활동한다”고 했다.



선진국은 금융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안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은 학교 교육에 금융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한국은 수차례 대형 금융사고로 수십조원의 사회적 비용을 치른 바 있지만, 금융교육은 아직 뒷전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2011년 저축은행 사태로 치른 사회적 비용은 26조 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4만100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2013년 동양증권 기업어음(CP) 사태는 피해금액만 1조7000억원으로 저축은행 사태 피해금(4000여억원)의 4배에 달한다. 지난해 발생한 DLF 사태의 피해액도 7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의 금융교육은 입시교육에 밀려 늘 뒷전이다.



이런 문제는 2년마다 실시되는 금융이해력 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인의 금융이해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한국은행과 금감원이 2018년 8~9월 두 달간 만 18~79세 성인 2400명을 대상으로 금융이해력 조사를 진행한 결과, 평균 점수는 62.2점을 기록했다. 이는 OECD 평균(2015년 64.9점)을 밑도는 수치다. 지난 2016년 조사에서는 66.2점을 기록해 OECD 회원국 평균(64.9점)을 소폭 웃돌았었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과 젊은계층에서 금융이해도 점수가 특히 낮게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계층에서 금융이해도가 낮게 나온다는 것은 양극화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연령대 별로 30대가 64.9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18~29세 등 젊은 계층은 금융행위 및 금융태도에서 각각 58.4점, 57.7점으로 전체 평균(59.9점·61.3점)을 하회했다. 금융행위는 저축 등 금융상품 선택 행위를, 금융태도는 소비와 저축에 대한 선호도 이해 수준을 각각 측정한다. 18~29세 계층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금융상품 선택에 소극적이고, 저축보다는 소비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금융산업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금융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18~29세의 젊은 계층은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저소득층과 노년층 등 취약계층의 금융이해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소득수준별로 월소득 250만원(연 3000만원) 미만 응답자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58.0점으로 월소득 420만원(연 5000만원) 이상 응답자 65.6점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소득이 낮을수록 금융지식이 부족해 이 상태가 지속되면 양극화가 더 심화될 수 있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 교육을 받아야 할 금융소비자 대부분은 금융 교육에 무관심하고, 잘못된 투자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금융소비자 중 매우 낮은 금융 이해력을 보이는 비율도 30%에 달해 이들이 과도한 위험 혹은 사기에 노출되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백종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부의 양극화가 금융서비스 접근에서 소외되는 금융 양극화로 이어지고 다시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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