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냄새와 페로몬에 대한 우리 뇌의 '극단적인 융통성'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19. 12. 3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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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0.6%가 후각망울 없이도 전혀 문제 없이 냄새를 잘 맡을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발견됐다. 한편 생쥐의 페로몬 감지 메커니즘도 최근 명쾌히 규명됐다. 참고로 사진 속의 설치류는 생쥐(mouse)가 아니라 쥐(rat)다. 사이언스 제공

2019년 한 해도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일 뿐 아니라 2010년대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2010년 여름 ‘과학카페’ 연재를 시작해 10년 동안 매주 한 편씩 에세이를 쓰다 보니 어느새 453회에 이르렀다.

2010년대의 마지막을 멋진 글로 마무리하기 위해 미리 준비했어야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대신 필자가 좋아하는 주제인 후각 관련 연구결과 두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해야 할 것 같다. 10년을 마무리하는 글로는 무게감이 좀 떨어지는 것 같지만 나름 흥미로운 구석은 있다.

냄새를 감지해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후각계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왼쪽 비강 위쪽의 네모 부분을 확대한 오른쪽 그림을 보면 후각상피(아래 주황색)에 있는 후각수용체뉴런(olfactory receptor)에서 위로 뻗은 축삭이 사상판(벌집뼈. ethmoid bone)에 뚫린 구멍을 통과해 후각망울(사상판 위쪽)에서 통합돼 뇌로 전달됨을 알 수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왼손잡이 여성 20명 가운데 한 명꼴

먼저 하나는 국제학술지 ‘뉴런’ 2020년 1월 8일자에 실릴 논문으로(지난 11월 6일 학술지 사이트에 미리 공개됐다) 정상적인 후각을 지닌 여성의 0.6%에서 후각망울(후구)이 없다는 뜻밖의 연구결과다. 먼저 후각 정보가 전달되는 경로를 잠깐 살펴보자.

좁은 동굴 입구를 들어가면 넓은 공간이 나오듯이 양 콧구멍을 지나 안쪽에도 ‘비강’으로 불리는 꽤 널찍한 공간이 있다. 비강의 천정에 동전만한 넓이의 후각상피가 있고 여기에 후각수용체세포(뉴런) 4000만 개가 존재한다. 각 뉴런에서 뻗어 나온 축삭은 바로 위에 있는 후각망울에서 모여 정보가 정리된 뒤 대뇌의 후각피질로 전달된다. 

교통사고처럼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뒤 후각을 상실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는 데 후각상피 에서 후각망울로 가는 뉴런의 축삭이 끊어진 결과다. 후각상피와 후각망울 사이에는 사상판으로 불리는, 메밀면을 뽑는 기구처럼 구멍이 뚫려 있는 얇은 뼈가 놓여 있다. 사고 충격으로 사상판이 손상되면 구멍을 지나가는 연약한 축삭이 망가진다. 

한편 선천적으로 냄새를 못 맡는 사람들도 드물게 존재하는 데, 후각망울이 존재하지 않는 게 원인인 경우가 있다. 후각망울로 가는 길이 끊어지거나 후각망울 자체가 없을 경우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으로 당연한 얘기다.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의 연구자들은 왼손잡이 여성들의 후각 능력과 뇌 구조의 관계를 보는 실험을 진행하다가 뜻밖의 발견을 했다. 비교군인 정상 후각 능력을 지닌 여성 20명 가운데 두 명의 뇌에 후각망울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후각망울은 뇌의 한 조직으로 좌우 한 쌍이 존재하고 사람의 경우 야생 블루베리만한 크기다. 따라서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쉽게 볼 수 있다.

후각망울 주변 뇌의 자기공명영상 데이터로 왼쪽 위는 비교군인 정상인으로 후각망울 한 쌍(점선 네모 안)이 뚜렷하게 보인다. 왼쪽 아래는 선천적 후각상실인 사람의 뇌 이미지로 후각망울이 없다(화살표). 이스라엘 연구자들은 정상 후각을 지녔음에도 후각망울이 없는 여성 두 명을 우연히 발견했다(오른쪽 위와 아래)

깜짝 놀란 연구자들은 이게 예외인지 보편적인 현상인지 알아보기 위해 일란성 쌍둥이가 다수 포함된, 정상 후각을 지닌 1113명의 뇌 이미지가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조사했다. 그 결과 남성 507명은 모두 후각망울을 지니고 있었지만 여성 606명 가운데 3명에서 후각망울이 없었다. 이 가운데 한 명이 왼손잡이였다. 추가로 구한 수십 명의 데이터에서도 후각망울이 없는 왼손잡이 여성을 한 명 찾았다.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정상 후각을 지닌 여성의 0.6%에서 후각망울이 없었고 특히 왼손잡이일 경우 확률은 4.25%나 돼 20명에 한 명꼴이었다. 왼손잡이 비율이 15% 내외이므로 왼손잡이일 경우 오른손잡이에 비해 후각망울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10배나 되는 셈이다. 

한편 후각망울이 없는 여성 3명 모두 일란성 쌍둥이가 있었고 이들은 모두 후각망울이 있었다. 후각망울의 존재 여부는 유전자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또 하나 이상한 사실은 쌍둥이 세 쌍 모두 후각망울이 없는 쪽의 후각 테스트 점수가 오히려 더 높다는 점이다(각각 110 대 86, 110 대 97, 111 대 98). 비유하자면 이 없이 잇몸으로 음식을 더 잘 씹어먹는 셈이다.

후각망울이 없음에도 냄새를 맡는 데 문제가 없는(심지어 평균(100)보다 테스트 점수가 높다!)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5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태아 발생 과정에서 후각망울이 뇌의 다른 부위에 만들어진 결과일 수 있다. 물론 이미지 데이터에서는 자리를 벗어난 후각망울을 찾지 못했지만 이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두 번째로 형태가 꽤 바뀐 후각망울이 뇌의 다른 부분에 존재할 가능성이다. 이 경우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세 번째로 후각망울이 제 자리에 있는데 크기가 너무 작아 MRI로는 보이지 않은 것이라는 설명이지만 개연성은 낮다. 네 번째로 삼차신경(trigemianl nerve) 등 다른 화학감각 신경이 후각망울을 대신해 냄새 정보를 전달하는 가능성이다. 끝으로 사람에서는 후각망울 없이도 냄새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별도의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다섯 가지 가능성 가운데 어느 하나도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정상 후각인 여성에서만 후각망울이 없는 사례가 나오는 이유도 궁금하다. 또 왼손잡이일 경우 그럴 확률이 10배나 높아지는 것도 미스터리다. 이에 대해서도 아직 뚜렷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페로몬 정보 전달 메커니즘 규명

최근 생쥐의 페로몬 감지 메커니즘이 명쾌히 규명됐다. 콧구멍을 통해 비강으로 들어온 페로몬(pheromone) 분자는 서비골기관(vomeronasal organ)에 있는 서비골뉴런(vomeronasal neuron) 말단의 수용체(receptor)에 결합해 신호를 발생시킨다. 왼쪽 네모 부분을 확대한 그림이 오른쪽에 묘사돼 있다. 사이언스 제공

다음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12월 13일자에 실린 논문으로, 생쥐에서 페르몬을 감지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연구결과다. 페로몬은 같은 종 사이에서 주고받는 신호분자로, 짝짓기를 비롯해 여러 행동을 유발한다. 페로몬은 후각수용체가 아니라 비강 바닥의 서비골기관(vomeronasal organ)에 있는 서비골수용체(vomeronasal receptor)가 감지해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자들은 생쥐의 서비골기관에 존재하는 서비골뉴런에서 페로몬 신호가 전달되는 메커니즘을 명쾌하게 밝혔다. 서비골뉴런 세포막에 있는 서비골수용체에 페로몬 분자가 달라붙으면서 신호가 발생해 전달된다는 것이다. 대단한 결과임에도 언론이 거의 다루지 않은 건 아마도 사람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포유류임에도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가 사람에서 재현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은 사람이 좀 더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인데 이 경우는 그 반대다. 사람에서는 페로몬을 담당하는 서비골기관 자체가 있느냐 여부가 여전히 논란이고 설사 존재하더라도 서비골뉴런이 없기 때문에 기능을 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후각도 사람에서 많이 퇴화된 상태다. 일반 냄새분자를 감지하는 후각수용체유전자의 경우 생쥐는 무려 1100개인 반면 사람은 400개가 채 안 된다. 페로몬을 감지하는 서비골수용체는 더 심하다. 서비골수용체는 크게 V1R과 V2R로 나뉘는데, 생쥐의 경우 V1R유전자가 200여 개이고 V2R유전자도 100개가 넘는다. 반면 사람은 온전한 V1R유전자가 고작 5개 남았고 V2R유전자는 모두 퇴화했다.

그런데 서비골뉴런이 없는 상태에서 서비골수용체유전자가 존재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페로몬을 통한 의사소통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면서 쓸모가 없어진 관련 유전자들이 퇴화했고 그 과정에서 용케 아직까지 구조가 온전한 유전자 다섯 개가 남아있는 것 아닐까. 수천 년 전 고고학 발굴지에서 가끔 깨지지 않은 토기가 발견되는 것처럼 말이다.

생쥐의 페로몬 감지 메커니즘 규명에 대한 해설을 읽다가 문득 ‘후각망울이 없는 여성들’ 논문이 떠올랐다. 무려 400가지가 되는 후각수용체의 정보가 모이는 허브가 사라져도 멀쩡하게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불과 5개인 서비골수용체의 정보를 처리하는 데 서비골기관이나 서비골뉴런이 꼭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여전히 페로몬을 감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서비골기관 없어도 페로몬 맡을 수 있을까

1958년 스위스 향료회사 퍼메니시의 화학자들은 자스민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꽃향기가 나는 분자 헤디온을 창조했다. 흥미롭게도 정작 자스민에는 헤디온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2015년 인간의 페로몬수용체가 헤디온에 반응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fragrance laboratory 제공

인간의 서비골수용체유전자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다가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하나 발견했다. 지난 2015년 학술지 ‘뉴로이미지’에는 실린 논문으로, 서비골수용체유전자 5개 모두 후각상피에서 발현하고 그 가운데 하나인 VN1R1은 헤디온이라는 향기분자를 감지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서비골기관이나 서비골뉴런이 없어도 서비골수용체가 후각계를 통해 기능할 수 있다는 말이다.

헤디온(hedione)은 1958년 스위스의 향료회사인 퍼메니시의 화학자들이 개발한 분자로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구조임에도 자스민이 연상되는 고급스러운 꽃향기가 난다. 그래서 분자 이름도 ‘쾌락’을 뜻하는 그리스어 ‘헤돈’에서 만들었다. 오늘날 여성용 향수와 화장품에 들어가는 향료의 처방에 헤디온은 약방의 감초로 쓰이고 있다. 

연구자들은 VN1R1이 감지하는 자연의 분자인 인간 페로몬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아직 실체는 모른다). VN1R1이 우연히 구조가 비슷한 헤디온에도 반응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헤디온을 맡았을 때 뇌는 일반 냄새가 아니라 페로몬을 맡았을 때처럼 반응하지 않을까.

앞서 말했듯이 일반 냄새는 후각수용체뉴런이 감지해 정보를 뇌의 후각피질로 전달한다. 반면 생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 따르면 페로몬은 서비골뉴런이 감지해 정보를 뇌의 시상하부로 전달한다. 시상하부는 다양한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이므로 말이 된다. 만일 VN1R1이 페로몬을 감지한다면 그 정보도 후각피질이 아니라 뇌하수체로 갈 것이다.

연구자들은 비교를 위해 장미 향기의 주성분으로 역시 향수나 화장품 향료로 널리 쓰이는 PEA를 선택했다. 향기를 맡을 때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데이터를 얻어 분석한 결과 기대가 사실로 드러났다. PEA가 아니라 헤디온을 맡았을 때만 뇌하수체가 활성화된 것이다. 한편 후각상피는 PEA와 헤디온 모두에서 활성화됐다. 

시상하부(hypothalamus)는 장미향의 주성분인 PEA를 맡을 때는 잠잠하지만 자스민향이 연상되는 헤디온(HED)을 맡았을 때는 활성화된다. 이는 서비골(페로몬)수용체인 VN1R1가 헤디온을 감지해 시상하부로 신호를 보낸 결과로 보인다. ‘뉴로이미지’ 제공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헤디온이 VN1R1뿐 아니라 후각수용체에도 결합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VN1R1이 감지한 정보는 뇌하수체로 전달돼 페로몬 신호에 대한 반응(행동)을 유도했을 것이고 후각수용체가 감지한 정보는 후각상피로 전달돼 우리가 ‘자스민 향기’로 인식하게 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헤디온에 대한 뇌하수체의 반응은 성별에 따라 차이가 크다는 사실도 페로몬 가설에 힘을 실어줬다. 헤디온을 맡았을 때 여성이 남성에 비해 뇌하수체가 훨씬 크게 활성화됐다. 

사람도 페로몬을 이용해 무의식적인 의사소통을 함을 시사하는 많은 연구결과가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필자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건 이를 관장하는 서비골기관의 존재 여부가 여전히 논란 중이고 설사 있더라도 퇴화한 흔적 기관으로 기능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각 기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관이라고 여겨졌던 후각망울이 없는 여성들도 아무 문제 없이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발견은 필자에게 페로몬 감지 역시 서비골기관이 없이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실제 2015년 이런 결과가 발표됐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냄새와 페로몬의 정보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뇌의 ‘극단적인 융통성’은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실의 상당 부분이 그저 ‘고정관념’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멋진 사례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필자소개

강석기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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