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美 제조업 상징 도시, 첨단 전기차 연구 허브로 부활한다

유진우 기자 2019. 12. 2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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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벨트’의 상징과도 같던 쇠락한 공업도시가 첨단 전기차 연구의 허브로 거듭난다.’

한때 미국 중서부의 대표적인 철강도시 중 하나였던 오하이오주(州) 영스타운(Youngstown)이야기다.

미국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2017년 오하이오주 영스타운자동차 제조공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영스타운은 제조업으로 융성했다가 세계화와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여파로 쇠락한 이른바 중·북부 ‘러스트벨트(Rust Belt)’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영스타운은 인근 피츠버그·클리블랜드와 함께 미국 3위의 철강도시였다. 풍부한 석탄과 오대호로 바로 이어지는 운하, 도시를 가로지르는 머호닝강에 넘치는 풍부한 수자원은 영스타운을 미국 최고의 부자도시로 이끌었다. 1870년대부터 100년간 미국이 제조업 호황기를 구가하는 내내 영스타운은 그야말로 미국 산업의 심장부로 불릴만 했다.

그러나 높은 인건비와 강성 노조 탓에 1970년대 이후 이 지역 제조업체들은 문을 닫았다. 아니면 비용이 저렴하고 날씨도 좋은 남부와 서부, 이른바 선 벨트(Sun Belt) 지역으로 이전해 갔다.

동시에 영스타운은 부자도시는 커녕 쇠락한 산업지역이자 미국 제조업의 몰락을 상징하는 마을로 전락했다. 한때 16만 명에 이르던 인구는 8만2000명(2017년 기준)으로 줄었고, 가구 중간소득은 2016년 기준 연 2만 4448달러(약 2840만원)까지 떨어졌다. 인구 6만5000명 이상의 미국 도시 가운데 최저수준이다.

그런데 최근 이 러스트 벨트가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면서 영스타운에 새로운 서광이 비치고 있다. AP통신은 26일(현지 시각) ‘40년전 철강 도시로 이름을 날렸던 영스타운이 이제 전기차 연구·생산 허브(hub)로 거듭날 준비를 마쳤다’고 전했다.

AP에 따르면 2년전 영스타운을 떠났던 GM은 이달 초 이곳에 세계 최대 규모로 전기자동차 배터리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예상 고용인원만 1100명에 달하는 대형 공장이다. 영스타운에서 차로 20분만 달리면 나오는 로즈타운에는 내년말부터 전기트럭이 생산될 예정이다.

죽어가던 도시에 활기가 돌기 시작하자 이 지역 대학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영스타운주립대는 전기차 산업일꾼을 위한 커리큘럼을 별도로 마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미 자리잡고 있던 3D프린팅 관련 기업과 자동차 연료 첨가제 기업들은 전기차 배터리 관련 사업으로 사업 방향을 틀기로 했다.

팀 라이언 미국 하원의원(민주당·오하이오)은 "영스타운은 쇠퇴 일로를 걷던 굴뚝 산업에 너무 오랫동안 집중했다"며 "전기차 관련 산업에 개발 단계부터 일찍 참여하는 것이 그동안 영스타운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라이언 의원 말처럼 영스타운이 추구하는 부활 모델의 밑바탕에는 기존 산업과 연관된 새로운 산업을 찾아내고, 저렴해진 건물 등 생산시설을 새로운 용도에 맞게 재활용하는 전면적인 변신이 자리 잡고 있다.

영스타운에서 차로 40분 떨어진 옆동네 애크런시가 이 모델을 적절히 활용한 대표적인 예다. 타이어 산업의 메카 격이었던 애크런시는 미국 자동차 산업이 뒷걸음질치면서 쇠락했다가 최근 미국 폴리머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고분자 화합물인 폴리머는 금속 표면 가공, 전기전자, 나노 산업 등 고부가 가치 산업에 활용되는 첨단 소재다.

애크런시는 ‘애크런 폴리머시스템스’, ‘애크런 표면기술(Surface Tehnologies)’같은 폴리머 기업을 육성하는 한편 애크런대에 폴리머트레이닝센터에 학자 120명과 대학원생 700명을 유치해 관련 기술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쇠락한 도시에서 값어치가 떨어진 스산한 대형 공장부지 역시 역설적으로 새로운 산업을 수용하는 최적의 요람으로 탈바꿈했다. 러스트 타운 일대 공장 지대는 2009년 금융 위기 직후 사람들이 떠나고 일대 마을 전체가 ‘유령 도시’처럼 변했다. 범죄가 일어나도 목격하거나 신고할 사람이 없는 무법천지에 가까웠다. 그러나 신사업을 크게 펼치려는 기업들에게는 약간 손보면 다시 쓸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으면서, 상대적으로 싼값에 활용 가능한 넓은 공간과 숙련된 인력이 주변에 널린 ‘알짜 부지’였던 것.

정치적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각 당 후보들이 이 지역 민심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는 점도 영스타운을 포함한 러스트 벨트 도시를 살리는 긍정적인 힘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17년 GM이 철수를 결정하자 영스타운을 직접 방문해 예비 실업자를 향해 "고향을 떠나지 마라, 공장은 다시 문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3년 후, 트럼프 대통령 말대로 영스타운에는 새 공장이 문을 열었다.

GM 구조조정을 지휘했던 알릭스파트너스 테드 스텐저(Stenger) 시니어파트너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동성(mobility)은 생물 생태계처럼 먹이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며 "파산은 실패가 아니다. 다시 일어서고 개선하는 산업 사이클 속 한 단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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